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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길
이름 : 김박민
2012-02-28
<세월에 관한 시 모음> 김시종의 ´세월´ 외 + 세월 세월은 휘발유로도 지워지지 않는, 페인트 얼룩도 지운다. 수석(壽石)에 묻은 페인트 얼룩, 기름걸레로도 안 닦이더니… 마당에서 몇 해 비를 맞게 했더니, 언제 지워진 줄도 모르게 말끔히 지워졌다. 세월이 지우는 게 어이 얼룩뿐이랴? 돌 같이 단단한 마음도 세월 앞엔 모래성이다. (김시종·시인, 1942-) + 세월 마당에 민들레 꽃씨 내려앉는 소리도 들었다 싹을 틔우는 뿌리들이 땅바닥을 갈라뜨리는 소리도 들었다 담벼락에 구름 지나가는 그림자도 보았다 밤새도록 닫힌 문을 흔들다 가는 바람의 얼굴도 보았다 (김석규·시인) + 세월이 질투하는 풀밭에서나 나무 밑에서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손을 잡는다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있으면 세월은 칼을 들어 끊으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칼 맞지 않으려고 손을 숨긴다 숨긴 손 위에 낙엽이 떨어지고 숨긴 사랑에 흰 눈이 내린다 (이생진·시인, 1929-) +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시인, 1926-1956) + 가는 세월 나를 유혹하는 그대의 빛깔에 깊은 정 젖어 드는데 무정한 세월아 아서라 꽃잎 떨구지 말아라 너는 어이해 내 빈 가슴속에 둥지도 틀지 않고 새처럼 훌쩍 날아가 버리는가 발 동동 구르며 서러운 이별로 가는 세월아 이리와 술 한잔 받고 쉬었다 가거라 (서문인, 시인, 1962-) + 세월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것이 끊임없이 흐르고 오고 가고 오고 가고... 나는 또, 어쩌다 한 세월 저당 잡혀 흐르게 되었을까 물은 물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나는 나대로 흐르니 세월이야 가던 말던 내 알 바 아니지 암- 내사 모르지 (김점희·시인) + 그렇게 세월이 있었네 눈뜨면 그대 없는 빈 방 눈감으면 그대 곁에 있는 나 그대와 나 사이엔 그렇게 세월이 있었다. (남경식·사진작가 시인, 1958-) + 세월 빈 수레 굴러가듯 무심한 세월은 잘도 간다 일상의 부스러기들 온갖 곳에 뿌려두고 그냥 지나쳐 가질 않는다 이것도 참견하고 저것도 간섭한다 세월은 꿰매고 덧 꿰매도 질질 새는 바가지 같은 것 언제 깨질지 모를 오지 그릇 같은 것 세월은 너무나 서둔다 발정 난 수캐처럼 너무나 앞서 간다 (김해룡·시인) + 세월 집사람은 두 달에 한번 병원엘 간다 일년에 여섯 번 어김없이 병원엘 가야한다 달랑 혼자인 우리 아이도 두 달에 한번 병원엘 간다 일년에 여섯 번 병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우리집 세 식구 중 두 사람이 병원에 다닌다 한때는 한 달에 한번씩 다녔으나 이제는 두 달에 한번씩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윤고영·시인) + 세월 뒷산 계곡 작은 연못 잔잔한 물결 위에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다 무심한 세월은 깊은 가을을 지나 득달같이 달려나가고 나는 그 세월에 목이 매여 질질 끌려가고 있다 동행하려면 열심히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아둔함에 게으름에 세월은 저만치 앞서서 달려나가고 나는 끌려만 가고 있네. (이문조·시인) + 세월 파뿌리가 일렁인다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잔주름이 이마를 할퀸다 꾸짖지도 않았는데 어깨가 시리고 뻐근하다 심하게 사랑을 하지도 않았는데 눈이 침침하다 황사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마누라가 무섭다 가까이 오라 하지도 않았는데 (반기룡·시인) + 세월 흐르는 것이 어디 강물뿐이랴. 잡히지 않는 것은 안개뿐이 아니다 골백번도 더 맹세했던 그 사람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등을 보인다. 떠나버린 사랑은 핥으면 핥을수록 쓰디쓰고 지나 온 세월은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어지럽다. 내 마음은 평생을 그 자리인데 네 몸은 한순간에 멀리 가 있다. (정성수·시인, 1945-) +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사랑하는 사람들만 무정한 세월을 이긴다 때로는 나란히 선 키 큰 나무가 되어 때로는 바위 그늘의 들꽃이 되어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온 산과 들이 비워진다 해도 여윈 얼굴 마주보며 빛나게 웃어라 두 그루 키 큰 나무의 하늘쪽 끝머리마다 벌써 포근한 봄빛은 내려앉고 바위 그늘 속 어깨 기댄 들꽃의 땅 깊은 무릎 아래서 벌써 따뜻한 물은 흘러라 또 다시 겨울이 와서 세월은 무정타고 말하여져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벌써 봄 향기 속에 있으니 여윈 얼굴로도 바라보며 빛나게 웃어라 (나해철·의사 시인, 1956-) + 좋은 세월을 기다리며 이 진흙 세월이 가고 나면 언덕너머에서 기다리던 꽃밭 세월이 활짝 꽃 피우고 걸어 와 내게 손 내밀어 주겠지 갈라진 발바닥에 채이던 돌부리도 피 흘리던 이마 닦고 돌아서서 환한 이빨로 붉은 사과를 깨물겠지 따뜻한 온돌에 누워 지지고 싶은 허리가 비행기 날아간 언덕 너머로 자꾸만 쏠리는 저녁 아련한 석양에 취해 술잔을 비운다 궂은 날이면 아려오는 삭신이 마흔 고개 넘기면 씻은 듯이 낫겠지 기다리면 좋은 세상 무동 타고 오겠지 (강영환·시인, 1951-) + 세월 한 올 한 올 느는 새치 속에 내 목숨의 끄트머리도 저만치 보이는가 더러 하루는 지루해도 한 달은, 일 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바람같이 멈출 수 없는 세월에게 내 청춘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으리 그래도 지나온 생 뒤돌아보면 후회의 그림자는 길어 이제 남은 날들은 알뜰살뜰 보내야 한다고 훌쩍 반 백년 넘어 살고서도 폭 익으려면 아직도 먼 이 얕은 생 깨우칠 수 있도록 세월아, 너의 매서운 채찍으로 섬광처럼 죽비(竹 )처럼 나의 생 내리쳐다오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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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는 그 후자라는 겁니까?"롤레인은 고개를 저었다."정확하게는 몰라. 하지만 네 원한이란 걸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해. 너는 직접적으로 당했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발 생한 상황의 피해자에 불과하거든. 그 모든 것을 휘안토스의 잘못이 라 생각하기에는.....좀 곤란하지 않니?""아키의 일만은 아닐텐데요.""역시 마찬가지야. 너와 아키는 대등한 관계고, 네게 아키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었잖아."루첼은 슬슬 기가 막히기 시작했다."너무 하신다는 생각 안 하십니까?""아니. 자켄이나 나에게는 물론 문제의 격이 틀리지. 나한테 그런 제안이 들어오면 말하는 녀석을 당장에 두꺼비로 만들어서 뱀과 결 혼시켜 버릴 테니까."결국 루첼은 머리에 열이 오르고 말았다."교수님....정말 중요한 문제는 잊고 계시는 듯 한데, 저는 이제 스물 둘이고, 교수님과 연구생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 황에....다른 나라로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좀 곤란하지 않습 니까?""물론 네가 케올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 리 난무하고, 케올레스 가 너를 제자로 맞이할 정도로 간 큰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 역시 알아. 또한, 네가 아직 배울 것이 널렸다는 것도 알고있고.""아시니 다행입니다. 그러니 암롯사 왕의 마법사 밑으로 들어가느 니, 차라리 베넬리아 최고 마스터 밑에 계속 있는 것을 택하겠습니 다.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멀리 본다면 이 쪽이 훨씬 더 낫잖아 요.""내가 부탁한다면 어쩌겠어?""네에?""말 그대로다. 상황 같아서는, 내가 직접 암롯사로 가고 싶지만......유감스럽게도, 내 호주머니 안의 울피온의 백색 열쇠 때문에 나는 이 나라 말고 다른 나라에 봉사 할 수 없어. 그러니 나 대신 가 달 라는 말이야.""교수님....""지난번에 악튤런과 만났겠지? 또, 그가 델 카타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 지도 알고 있겠지?""하지만 그는 최고마스터는 아니잖습니까.""그래, 서른이 될 때까지 제 아무리 최고 마스터의 수염을 뽑아 놓 을 정도로 펄펄 뛰는 녀석이라 할 지라도 열쇠의 문을 수호하는 다 섯 명의 마스터 직에 머물러야 하지. 하지만 새로 즉위한 칼리토 왕 의 마법사 자리는 아직 비어있고, 그건 나이가 어찌 되든 간에 상관 없어."".....네?""아직 젊은 네게, 또 외국인인 네게 국가 기밀을 펑펑 퍼 줄 수는 없는 게 유감이야. 하지만 조만간 암롯사에서 그 악튤런 파노제를 감당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고, 케올레스로서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는 게 문제지. 하지만 너라면 분명 승산이 있어.""그게 말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으십니까."롤레인은 방긋 웃었다."너는 마법은 아직 미숙하지만, 싸우는 법은 아주 잘 알고 있잖아.승산은 충분해."저건 욕이다, 하고 루첼은 생각했다."좀 복잡한 이야기를 하자면, 베넬리아에서 바라는 것은 툴칸과 파 노바로 향하는 나셀 해가 한 나라의 손에 떨어지지 않는 거야. 그런 관문이 한 나라 손에 들어간다면, 관세는 엄청나게 불어나고.....무역 으로 먹고사는 베넬리아 같은 경우에는 치명타지. 심지어, 델 카타 는 사이러스에 의해 나셀의 함대 대부분이 가라앉기 전 까지 그들 배가 아니라면 그 해역을 통과하지도 못하게 했고, 그 운송료로 어 마어마한 돈을 챙겼었지. 사이러스가 나셀 해를 장악했을 때도 그리 상황이 낫지는 않았다. 제일 맘 편했던 것은 사이러스가 델 카타를 치고 올라갔을 때였어.""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상선 쪽에서 보호받기 어려워지지 않습니 까.""그건 괜찮아. 보호세를 암롯사나 델 카타에 냈다면 그 책임은 보호 세를 받은 측에 있거든. 로메르드의 배라면 모를까, 베넬리아는 행 여나 손해라도 가지 않을까 눈 벌겋게 뜨고 있는 해양 강국이야. 해 적들의 습격이 몇 번 이어진다면 베넬리아 쪽에서는 '상선 보호' 명 목으로 해군들을 보낼 지도 모르거든. 실제, 내전으로 신경 쓰지 못 하게 되어 델 카타에 빼앗기게 된 하실론 섬은 베넬리아의 것이기 도 했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둘 다 해적 소탕은 성실하게 할거야.""결론은?""네가 델 카타가 우세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롯사로 가 주어야 한다는 거지.""그리고....제가 좀 힘들 것 같으면, '스승' 자격으로 오실 생각이시 죠?""물론."루첼은 이제 슬슬 집히는 게 있었다."아무래도 그 녀석....분명 이걸 노리고 저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 같 습니다.""아마 네가 권호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게 웬 횡재냐 했을 걸.""......."모든 것을 체념한 루첼은 허망하게 답했다.".....그렇겠군요." ***********************************************************작가잡설: ......유부남인데도 여기저기서 추파를 받는 인기 만점의 루 첼 군...-_-;; 일단은 계속입니다. ^^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30장 *************************************************************** [겨울성의 열쇠]제139편 첫 번째 잔#2 *************************************************************** 컴컴한 꿈-지독한 악몽이었고, 악몽이 늘 그렇듯 제대로 깨지도 못했다. 양파 껍질 벗기듯 눈을 뜨면 또 다른 꿈이 고약한 장난을 토해내고, 그것 에서 버둥거리며 벗어나면 또 다른 악몽이 튀어나온다.컹, 컹--뒷골을 울리듯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온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 다.몸이 여기 저기 욱신욱신 거리고, 미열에 들떠 어지럽고 혼미하다.덤불에 뒤엉키고 늪 속에 갇힌 듯 한 걸음 옮기기조차 힘들 지경이 었다.그러나 다른 것은 휘감아 돌리기라도 하듯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 다. 훤하고 둥근 달은 하늘을 달리듯 가로지르고, 구름은 물살처럼 빠르게 검은 하늘위로 흐른다. 개 짖는 소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치달아 오고, 곧바로 그 크고 흉악한 이빨에 꽉 물려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그 개의 뒤를 따르는 키가 훌쩍 크고 팔 다리가 긴 기이한 사냥꾼 들의, 그 검은 강철의 장갑을 낀 손이 어둠 속에서 철그럭 댔다. 그 들이 손에 쥔 쇠사슬이 질질 끌리며 짐승 울음같은 소리를 스르릉 스르릉 냈다. 숨고 싶었지만, 둘러보니 텅 비고 광활한 황야 한 가 운데였다. 얼어붙은 물웅덩이가 달빛을 반사했고, 흉흉하게 말라붙 은 잿빛 덤불들이 바람에 흔들린다.아무 데도 숨을 곳이 없고, 잔인한 만월의 달은 아킨을 남김없이 드 러내고, 맞서 싸울 방법이라고는 주먹 뿐. 아마도 그들을 향해 한번 휘둘러보고는 결국에 그 이에 갈기갈기 찢겨져 뼈와 살점이 튀고 내장을 쏟아낼 것이다....외쳐보고도 싶지만, 이 작은 짐승의 울부짖음을 누가 들어줄까.허허 로운 황야에는 차가운 달빛만이 쏟아지고, 무심한 검은 새와 잔학한 들짐승들만이-오로지 그 매정한 것들만이 아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킨이 끝장나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순간, 갑자기 머리끝까지 확 밝아지는 듯 톡 쏘는 향취가 코를 쿡 파고들었다."-!"눈이 번쩍 떠지며, 램프를 흐릿하게 밝힌 방안으로 아킨은 쏟아지듯 돌아왔다."눈 떠. 아주 크게-"옆에 있던 유제니아는 그렇게 말하곤 들고 있던 자그만 약병의 코 르크 마개를 쿡 집어넣었다.아킨은 그녀가 하라는 대로 눈을 크게 떴고, 아직 꿈속을 헤매는 듯 흔들리던 시야가 차츰 정리되기 시작하며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머리는 어지러웠고, 몸 여기저기가 쿡쿡 쑤셨다. 아직 미열 에 들떠 있었지만, 땀에 흠뻑 젖어 있어 오히려 오싹오싹했다.유제니아는 가방 안에 그 약병을 집어넣고는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차가운 수건으로 아킨의 이마를 닦아주기 시작했다."어떻게....된 거지?""아침에 일어 나보니 옆에서 아키가 끙끙대고 있더라고. 흔들어도 안 깨어나기래....약을 좀 썼지.""아침?"아킨은 고개를 돌려 활짝 열린 창밖을 보았다. 그러나 유제니아의 말과는 달리 하늘은 아직 캄캄하기만 했다.유제니아가 어깨를 으쓱했다."구름이 잔뜩 껴서 아직도 밤 같은 거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는 벌써 뜬 것 같은 걸."그리고 멀리서 쿠릉--하고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쏟아지던 비 는 그쳤지만, 금방이라도 세차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유제니아의 하얀 수건이 이번에는 젖은 목덜미의 땀을 훔쳤다. 무엇을 뿌렸는지 수건에서도 희미하고 상쾌한 향기가 풍겨왔고, 기분도 점점 가라앉 아 갔다."고마워."유제니아가 피식 웃었다. 그 얼굴을 보니, 방금 전의 그 피와 살점 의 진흙탕에서 뒹구는 듯한 끔찍한 기분도 찬찬히 흩어지는 것 같 았다. 문득 전날 밤의 일이 생각나고, 그 조용하고 편안한 기분도 기억난다......"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지, 유제니아?"유제니아는 금방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한달 정도 된 것 같아.""한달...?"되묻던 아킨은 그것이 꽤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름이 되 기 이틀 전에 유제니아와 만났고, 이제 내일이나 내일 모레 정도가 되면 보름이 될 것이다. 그러니 한 달이라는 말은 거의 정확한 것이 다.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 옆에 있는 유제니아는 아주 오 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 자켄 정도는 아닐 지라도 적어도 오랫동 안 옆에 있어주었던 것 같고, 그러니 옆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한...그런 느낌이다.세르네긴에게 들었던 것은 꽤 되었다. 그 때는 그저 비현실적일 정 도로 너무나 먼, 그러나 한번은 가져 보고 싶었던 그런 존재였다.그저 귀엽고 사랑스런 여동생을 가지고 싶었던 건 아니다. 세르네긴 의 조용한 웃음을 보며 아킨이 느꼈던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행복. 편안함...또한, 고요한 평화와 함께 언제나 옆에 머물러 줄 소 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그것이 세르네긴에게는 있었고, 아킨은 그 런 그의 행복을 가지고 싶었다. 소중한 상대가 있고, 그 상대에게도 그가 소중하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기에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편안한 행복을 말이다.그러나 문제는 그 때에는 세르네긴을 통해서 그것을 보았듯, 지금은 유제니아를 통해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꿈, 막 연한 기대 속에 구체화 시켜 버린 헛된 희망이었다. 어린 시절 그토 록 휘안토스가 되기를 갈망했던 것처럼, 이제는 세르네긴같은 그런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바보 같은 생각이다.세르네긴에게 유제니아가 그런 존재라 할 지라도 나한테도 똑같이 다가올 리 없는데. 이것이야말로 누군가가 공들여 완성해 놓은 것을 채 가려는 짓 밖에는 안 되는데......정말 그럴 생각도 없고, 가능할 거라 생각할 정도로 바보도 아니다.그러나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아킨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세르네긴에게 죄스런 일이었다. 부러워하는 것도 좋지만, 그 것을 가로채고 싶어하는 건 죄다."아키? 왜 그래?""아니....그냥. 저기, 베이는 어디 있지?""올라오지 않았으니......1층에 있을 거야.""그래."아킨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달아오르듯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기 위해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로 다가가, 무심코 비에 축축하게 젖은 거리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여관 문을 나서는 베이나트를 발견한 것은 그 때였다. 처음에는 그저 바깥바람이라도 쐬려고 나왔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 었다. 그러나 아킨은 이내 그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그는 어깨에 짐을 매고 있었고, 소매 자락과 부츠의 끈도 단단히 매 두고 있었다."베이-! 어디 가는 겁니까!"아킨이 외치자, 베이나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저 희미하게 웃고는 아무 말 하지 않더니, 다시 앞을 보고 거리로 나섰다. 혹시 나 하는 불안감에, 아킨은 그대로 뛰쳐나가 1층으로 날아가는 듯한 속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직은 텅 빈 1층의 홀에서 아킨이 발견한 것은,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자켄이었다.아킨은 자켄을 흔들었다."자크, 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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