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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벼락에 맞아 죽은 제왕

편집부  |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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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중국 역사상 포학했던 통치자를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하(夏)의 걸(桀), 상(商)의 주(紂)”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나쁜 황제가 있었는데, 그는 ‘하늘의 벼락’을 맞은 유일한 왕이다.


사람들은 보통 ‘벼락을 맞는 것’을 매우 엄중한 징벌로 여긴다. 따라서 누가 만약 벼락을 맞아 죽었다면 사람들은 그가 몹시 나쁜 일을 저질렀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포학하고 잔인한 왕은 하왕조(夏朝) 최후의 황제 걸(桀)이다. 그는 유배되어 굶어 죽었고, 상왕조 마지막 황제 주왕(纣王)은 분신자살했다.


상왕조에는 나쁜 황제가 한 사람 더 있는데, 바로 벼락에 맞아 죽은 황제다. 그는 어떤 엄중한 죄를 범했기에 벼락에 맞은 것일까?


우리는 《죽은 후 부군에 의해 세 명의 선왕과의 혼인을 허락받은 왕후는 뜻밖에도 장군으로서, 갑골문에서 200여 차례 언급된 여인이다》라는 문장에서 언급한 여장군은 사실 상왕조(商朝) 23대 국왕 무정(武丁)의 왕후다. 무정은 59년간 재위하며 정성껏 나라를 다스렸다고 할 수 있는데, 상왕조의 국운이 내리막길을 걸을 때 온 힘을 다하여 위험한 국면을 되돌림으로서 휘황한 ‘무정중흥(武丁中興)’의 시대를 이루어 냈다.


무정왕은 ‘제사’와 ‘전쟁’을 나라의 가장 큰 일로 여겼다. 천지신명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서 군왕과 백성이 선왕의 강토 개척과 천하를 다스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고자 함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날씨에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천신의 보살핌과 사랑인 것을 기억하도록 하고, 사람에 대한 하늘의 요구는 변치 않을 것이며, 군주와 백성을 막론하고 자신의 도덕을 수양해야 비로소 하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실 어느 황제인들 영원히 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어느 왕조가 천세만세 이어가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인간의 소망일뿐이다.왕조는 교체되고 흥성함이 극에 이르면 쇠락한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왜 종말을 고하려는 국운을 바꿀 수 없는가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신앙을 파괴하는 사람(왕)이 나타나게 되면, 비로소 이 왕조는 철저히 무너질 것이다.


이리하여 상왕조를 멸망시키는 “총설계사(總設計師)”가 출현했다.


선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무정왕이 사망하고 상나라 주왕이 나라를 잃기까지 150년 사이에, 한 명의 제왕, 촌수를 따진다면 주왕의 증조부인, 포학한 상나라 28대왕 무을(武乙)이 나타났는데, 중국역사상 유일하게 벼락 맞아 죽은 제왕이다.


상나라 주왕을 상왕조 멸망의 “총가속사(总加速师)“라고 한다면 무을왕은 상왕조 멸망의 ”총설계사(總設計師)”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사기 은본기(史記‧殷本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무을은 무도하여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 이를 천신(天神)이라 불렀다. 그(천신)와 시합을 했는데 다른 사람더러 심판하도록 했다. 천신이 이기지 못하면 모욕을 주었다. 또한 가죽 주머니에 피를 가득 채우고 높이 매달아 (활로) 쏘았는데, 사천(射天)'이라고 부르게 했다.”


보통 한 왕조가 쇠락의 길로 들어설 때에는 신앙이 파괴되는 현상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총설계사(總設計師)” 무을왕은 모범이 되어야 할 일국의 군주인 신분으로서 신앙을 파괴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무을왕은 사람들에게 명을 내려 나무와 볏짚으로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고는 ‘천신(天神)’이라 불렀으며, 사람들에게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게 하고 자신과 승패를 겨루게 했다. 사람이 조종하는 ‘천신’이 그를 당하지 못하면, 무을왕은 자신이 ‘천신’을 물리쳤다며 ‘천신’에게 모욕을 주었다.


무을왕 또 명을 내려 가죽주머니에 동물의 피를 채워 공중에 높이 걸게 한 뒤,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았는데 피가 채워진 주머니에 명중하자 선혈이 주머니로부터 분출되어 나왔다. 무을왕은 이것을 사천(射天)이라 칭했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맞추고는 피를 흘리게 했다는 것이다. 


하늘에 대한 신앙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나, 무을왕은 오히려 천신에 도전하여 하늘을 사살(射殺)한 것이다.


일국의 왕이 신을 불경하는 이러한 행실을 보이면 신하와 백성 중에서도 군주의 행위를 모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가장 기본인 도덕적 단속이 붕괴되자 각종 재난과 왕조의 멸망이 잇달아 나타나게 되었다.


무을 35년, 무을왕은 황하와 위수 사이의 지역에서 사냥을 하던 중 큰 비를 만났는데, 당시 큰 천둥번개까지 치면서 그는 벼락을 맞아 죽었다.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무을왕이 벼락을 맞은 것에 대해,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리고 무도(無道)와 신에 대한 불경을 일삼았으며, 백성들에게도 그러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한 후과”라고 지적했다.


명나라 학자 장거정(張居正)도 만력황제(萬曆皇帝)가 편찬한 《제감도설(帝鑑圖說)》에서 “무을은 흉악하여…… 꼭두각시 인형을 죽이고 가죽주머니에 화살을 쏘았다. 하늘에 죄를 지고 어찌 도망갈 수 있겠는가? 천둥번개로 사망하니, 이는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예부터 왕은 천자(天子)“라 칭했는데, 신을 숭상하고 나라와 백성에 선정(善政)을 베푸는 것은 그의 중요한 의무이다. 만약 어느 날 천신조차 반대하고 하늘땅과 겨룬다면 그 왕조도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가도록 운명 지어질 것이다.


무을(武乙) 이후 상나라는 하루 천리를 가듯 쇠망하기 시작하여, 60여년 간 3대 제왕을 거친 뒤 멸망했다.


중국인들이 수천 년간 기억하고 있는, 무을이 신에 대한 불경으로 벼락을 맞아 죽은 사건으로 인해, “하늘이 벼락을 치다(天打雷劈”)라는 말은 청나라 때부터 사자성어 반열에 올려졌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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