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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중국에 대한 몇 가지 상식 (상)

디지털뉴스팀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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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서양에서 중국을 부르는 이름 ‘차이나(China)’의 어원은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晉)나라에서 비롯됐다.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차이나 대신 '키타이(Китай)' 혹은 '캐세이(Cathay)’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키타이와 캐세이는 거란(契丹)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렇듯 중국이라는 나라를 부르는 명칭은 계속 변화해왔다.

■ 중국의 토대가 된 한(漢)나라

그렇다면 중국인들 스스로는 어떨까? 나라 이름은 시대에 따라 구분해 부르지만, 민족을 가리킬 때는 언제나 ‘한족’이라고 한다. 바로 한(漢)나라에서 나온 명칭이다.

차이나와 진나라, 키타이 혹은 캐세이와 거란, 한족과 한나라의 관계에는 각각 나름의 대표성과 연결고리가 있다.

먼저 키타이 혹은 캐세이의 어원이 된 거란은 10~12세기 중국 중부 이북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요(遼)나라를 세운 유목 민족의 이름이다. 거란인은 스스로를 '키탄'이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는 이를 치단, 우리는 거란이라고 했고, 서역의 위구르와 아랍 무슬림은 '키타이'라고 불렀다. 

반면 송(宋)나라가 위치해 있던 남방 지역은 '망기' 혹은 ‘망즈’로 불렀고 ‘친(chin)’이라고도 했다. 망기나 망즈는 남만의 만자(童子)에서 나온 말로 북방의 요나라 사람들이 남쪽을 부르던 말이다. 

이 무렵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한 아랍 상인과 유럽 상인을 통해 중국이 서양에서는 키타이, 영국에서는 캐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됐다.

중국이 유럽에서 차이나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유럽인들이 바닷길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연안으로 몰려왔고, 현지 사람들이 중국을 부르는 이름이 유럽에 전해 졌다. 

남만(南蠻)에서 비롯된 망기나 망즈는 멸시의 뜻이 포함돼 있으니 남방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을 리 없다. 그러다 보니 '친'에서 나온 차이나가 중국을 대표하는 명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최대 민족의 명칭은 왜 한족이 됐을까? 

그 내력은 다소 복잡한데, 중국인은 시대에 따라 진인(蓁人), 당인(唐人) 등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들을 불렀지만, 남북조 시대에 중원에 살던 중국인을 뜻하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당시의 나라 이름을 떠나서 한인(漢人)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원(元)과 명(明), 청(淸)나라 때 중국인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게 됐고, 중화민국 초기에 중국을 한인, 만주, 몽골, 회족, 티베트 장족의 다민족 국가인 '오족공화(五族共和)’로 규정하면서 한인 대신 한족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도 있고 가장 국제화된 당(唐)나라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나라가 중국 최대 민족을 대표하게 된 것일까? 한나라가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통일된 국가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고 도량형의 표준화, 법치제도의 도입, 만리장성의 축성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지만 기원전 206년에 멸망해 불과 15년의 짧은 기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지속 가능한 통일 국가의 면모를 갖춘 것은 한나라였다. 한나라는 400년 동안 유교를 기반으로 사상을 지배하고, 흉노와의 대결을 거쳐 북방의 국경을 안정시켰으며, 국가 재정의 안정과 통치 및 삼강오륜을 정립했다. 심지어는 신분에 따라 하루의 식사  횟수까지 규범으로 만들어 제시했을 정도다.

■ 제도와 정책을 결정한 회의들

한나라가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경영 기반을 다져나간 과정도 특별하다. 국가 정책 회의를 소집해 큰 틀에서 토론과 논쟁을 거쳐 통치 철학을 마련하고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권력 다툼이 따랐다.

한나라 때는 모두 세 번의 국가 정책 회의가 소집됐다. 첫째가 한 무제 사후인 기원 전 81년에 전한의 제8대 황제인 소제가 개최한 염철(鹽鐵) 회의, 둘째가 기원후 51년에 전 한의 제10대 선제가 소집한 석거각(石渠閣) 회의, 셋째가 79년에 후한 장제가 주최한 백호관(白虎觀) 회의다.

염철 회의는 소금과 철, 그리고 술의 생산과 판매를 국가가 독점할 것인지 민간에 맡길 것인지를 놓고 벌인 정책 회의다. 이 회의는 일단 제7대 황제인 한무제가 배경이 됐다. 

이전까지 한나라는 경제 발전으로 국가 재정이 넉넉했지만 무제 때 벌인 흉노와의 전쟁과 고구려, 남월 정벌 그리고 만리장성 확장 등으로 재정이 파탄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세금 인상 외에도 소금과 철, 술의 국가 전매 제도를 실시했는데, 무제가 죽은 후 전매 제도를 계속 시행할지 여부를 놓고 60여명의 학자를 모아놓고 토론한 회의다.

염철 논쟁은 전매 제도를 폐지하면 재정과 군사력에 문제가 생기니 유지해야 한다는 법가와 민간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유가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는 전매 제도가 도입되기 전 술과 소금 판매를 통해 부를 축적해왔던 호족 세력의 지원 을 받은 유가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술은 전매 제도에서 제외됐고 이후 한나라에서는 유교 세력과 지방 호족 세력의 입지가 강화된다.

염철 회의의 주제는 전매 제도였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치, 사상, 대외 정책, 사회 문제까지 폭넓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나라 때 열린 세 번의 회의는 단순한 정책 회의가 아니라 일종의 정치 세력 판도가 바뀌는 권력 투쟁의 장이 됐다.

석거각 회의는 유교 경전을 연구하는 학자 23명이 참여한 일종의 학술회의로, 한나라의 통치 이념인 유학의 학설이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자 이를 정리해 유학의 권위와 정치 권위를 일체화해 통치 사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열렸다.

백호관 회의 역시 유학 경전의 해석을 통해 정치 권위와 제도의 안정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천자(天子)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토론을 벌인 후,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삼기 때문에 ‘하늘의 아들’인 천자라고 정의한다. 

그리고는 역대 제왕 중에는 나쁜 황제도 많은데 그래도 모두 천자라고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결론은 나쁜 제왕도 천자라는 것인데 천자는 하늘이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얼핏 철학적 문답 같지만 아무리 무능하고 나쁜 왕이라도 천자를 거스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사람 사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순서도 백호관 회의에서 정해졌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으로,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이중에서 임금과 신하의 도리가 제일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결론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반 백성과는 전혀 관련 없는 주제인 듯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계속) / 어바윳 차이나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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