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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장쩌민 환심사려 노력한 ‘성인군자’?

편집부  |  20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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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중국 관영 언론은 보시라이가 재혼한 사실을 되도록 언급하지 않았으며, 두 번째 아내인 구카이라이와의 행복한 생활만을 집중 부각했다.

 

적잖은 중국인은 보시라이를 도덕적인 성인군자로 여겼지만 다롄시의 택시 기사들은 이런 것이 전부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보시라이가 호색한으로 수 많은 여성들이 보시라이에게 겁탈당했다고 전했다. 특히 구카이라이가 자주 집을 비워 보시라이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1997년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중공중앙은 베이징에서 제15대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했다. 보시라이는 중앙위원으로 당선되기를 간절히 갈망했다. 그때 그는 일개 시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이보는 직접 장쩌민에게 청탁해 가까스로 중앙위원 피선거권을 획득했다. 보이보는 아들이 당선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30만위안을 희망공정에 기부했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 돈은 전부 제자(題字)로 교묘하게 우려낸 돈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보이보가 제자를 쓸 때마다 8~10만 위안을 챙겼다고 한다. 헤이룽장 치치하얼 대북그룹에서 그에게 제자를 부탁했을 때에도 적잖은 돈을 줘야 했다.


동시에 보시라이는 베이징의 저명한 수필가 천쭈펀(陳祖芬)에게 부탁해 10여만자에 달하는 ‘세계에서 무슨 일이 가장 즐거운가’라는 글을 쓰게 했다. 글은 시종일관 보시라이의 장점을 부각하고 그를 위대하고 올바르며 멋진 남자로 그려냈지만 효과는 좋지 않았다. 한 구절을 살펴보자.


‘세상에서 무슨 일이 가장 즐거운가? 좋은 일을 하면 가장 기쁘다. 기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면 가장 즐겁다. 좋은 일을 하면 국민이 가장 즐거워한다. 국민이 즐거우면 정부가 가장 즐겁다… 어디에 이런 시장이 있다면 그곳의 시민은 가장 행복해진다.’


보이보는 노구를 이끌고 15대 회의에 참석해 장쩌민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보시라이도 296명 대표중의 한 사람으로 출석했다. 그러나 중공중앙위원과 후보위원 선거에서 보시라이의 정적 원스전을 필두로 하는 랴오닝 대표단의 집단 저지를 받았다. 선거인단 2048명 중 누구도 보시라이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며 다롄시위 서기 위쉐샹마저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한 표도 건지지 못해 격분한 보시라이는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다롄시에 연락해 화풀이를 준비한다.


15대 회의에 출석한 대표단이 베이징을 출발해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쑨 부시장은 1500여 명을 이끌고 보시라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지만, 고의로 위쉐샹을 무시했다. 어떤 사람은 플래카드를 들고 ‘다롄시 인민은 당신을 옹호한다’라고 했다. 보시라이는 매우 기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위쉐샹은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비난하면서 조직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또 국가 법률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랴오닝성 위원회에 보고해 심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시라이는 승복하지 않고 원스전을 향해 사람을 너무 업신여긴다고 맞받아쳤고, 두 사람은 문을 걸어 잠그고 한 시간 남짓 크게 다퉜지만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일은 홍콩 잡지에 보도됐고 보시라이는 다롄 국가안전국을 불러 3년간 끈질기게 조사하게 했다. 36명이 조사에 나섰으나 끝내 아무런 문제점을 밝히지 못했다.


15대 회의에서 중앙후보위원에 낙선한 보시라이는 화병으로 쓰러졌고 다롄우의병원에 20여 일간 입원했다. 구카이라이마저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병문안도 가지 않았다. 단지 비서만 그를 간호했다. 보시라이는 매우 빠르게 건강을 되찾았으며,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고 분투를 다짐한다.


유명 작가 뤼자핑의 조사에 따르면, 장쩌민의 아버지는 매국노였다. 승진을 위해 장쩌민은 아버지와 인연을 단절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중공에서 열사로 칭송하는 장상칭의 양자였다고 거짓말을 해댔다. 장상칭과 장아이핑, 왕다오한의 지원으로 장쩌민은 상하이에서 일어섰으며 한걸음씩 중공 권력의 최고봉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를 폭로한 뤼자핑은 10년형을 선고 받고 투옥중이다.


안후이 성 부성장 왕화이중은 총살당하기 전, 장쩌민의 가짜 ‘여동생’ 장쩌후이에게 450만위안을 주고 입을 막았다고 폭로했다. 장쩌민은 안후이 농업대 일반 교수인 장쩌후이를 단번에 부장급인 중국임업과학연구원 원장으로 발탁해, 인민대표대회대회당을 드나들 자격을 줬고 ‘당과 국가 지도자’의 전용 통로를 사용하게 했다.


홍콩 매체는 1995년 봄, 베이징시위서기 천시퉁을 필두로 한 7명의 성급 간부가 장쩌민을 고발하는 편지를 덩샤오핑에게 보냈지만 덩샤오핑은 편지를 보이보에게 건네 처리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약점을 잡은 보이보는 편지를 받은 후 장쩌민을 불렀다. 장은 편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베이징 시장 왕바오썬이 핍박으로 자살했고, 천시퉁은 조사를 받은 뒤 판결을 받았다. 보이보는 또 장쩌민을 도와 국무원 부총리 차오스를 몰아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장쩌민은 보이보의 아들인 보시라이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장쩌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시라이는 온갖 노력을 했다. 1999년 8월 10일부터 15일까지 장쩌민은 당시 국무원 부총리였던 우방궈 등을 대동하고 선양, 안산 등 지역을 순시하고 다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동북과 화북지역 8개 성시 국유기업개혁좌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장쩌민이 다롄을 시찰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보시라이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여겼다. 비록 보이보가 장쩌민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장쩌민은 정권을 장악한 뒤에도 보시라이를 중용하지 않았다. 주요 원인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보이보가 장쩌민보다 경력이 화려해 보시라이를 중용할 경우 평민 출신들과는 달리 자신과 맞서게 될 것이라 여겼다. 둘째는 장쩌민 신변의 인사들이 보시라이를 모두 칭찬하자, 장쩌민은 보시라이가 이들을 매수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장쩌민 자신도 과거에 이런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셋째 보시라이는 다롄을 정비하면서 ‘화표(华表 건물 앞에 세우던 돌기둥)’를 세웠는데 이 화표에 보시라이의 야심이 드러나있다고 누군가 고자질했다. 흉금이 좁은 장쩌민은 야심만만한 보시라이를 두려워했다.


장쩌민이 자신에게 마음을 놓지 못한다는 말이 보시라이 귀에 들어오자, 보시라이는 이번 기회를 통해 충성심을 표시하려 했다. 보시라이는 ‘살아있는 지도자에게 기념비를 세우지 않는다’는 규정을 어기고, 장쩌민의 얼굴을 담은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장쩌민은 다롄 전역에 자신의 얼굴이 크게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보시라이는 장쩌민의 수석비서 자팅안과 내통해 장쩌민이 가장 아끼는 손자를 데리고 다롄에 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보시라이는 즉시 가장 믿는 수하 처커민 등 사람을 보내 미국 국적인 장쩌민 손자의 관련 정보를 입수하라고 지시했다. 예를 들면 장의 손자는 축구를 좋아했으며 다롄 축구 선수 리밍과 코치 리잉파 등을 존경했다. 장의 손자는 또 붉은 색 넥타이를 즐겨 메고 해산물을 좋아했다. 정보를 입수한 보시라이는 득의양양했다.


장쩌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보시라이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직접 장쩌민과 그의 손자를 대동하고 다롄 스더 축구시합을 관람했다.


보시라이는 장쩌민, 손자와 함께 다롄 스더 축구팀의 시합을 관람하고 주 코치 리잉파와 축구 스타 리밍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장쩌민의 손자는 입이 귀에 걸렸다. 사진을 찍기 전 보시라이는 리잉파와 리밍에게 똑같은 주홍색 넥타이를 골라주고, 장쩌민의 손자와 같은 색인 짙은 남색 양복을 입게 했다.


보시라이는 또 다롄 모 부동산 그룹의 쑨 회장에게 열 몇 장의 은행카드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는 장쩌민의 수행 인원에게 이런 뇌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장쩌민의 손자에게 뇌물을 주었다. 다롄의 한 언론인은 직접 다롄의 한 공무원이 장쩌민의 손자에게 은행카드를 찔러주는 것을 보았다고 밝혔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8만 위안 정도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장쩌민 손자의 생일이 방문일과 겹쳤다. 보시라이는 군함을 장쩌민 일가에게 내줬다. 해물과 각종 고기를 준비했고, 저명한 경극 배우 양츠 등 유명인사를 초청했다. 보시라이는 또 패션모델을 접대부로 불러 장쩌민을 기쁘게 했다. 보시라이는 생일 케이크를 자르고 축가를 부르며 촛불을 끄고 환호성을 질렀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한 간부는 장웨이핑에게 ‘젖을 주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속담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보시라이는 승진을 위해 장쩌민 손자를 아버지라 부를 태세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생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해산물을 잔뜩 먹은 장쩌민 일가는 장염으로 며칠을 고생했다. 장쩌민은 보시라이가 독극물을 넣은 것으로 의심하고 조사하게 했으나 별다른 혐의를 찾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보시라이가 다롄시 경제 발전을 서두르는 과정에서 해양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돼, 장쩌민 일가가 먹은 해산물이 오염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다롄 사람들은 다롄에서 난 해산물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았지만, 외지 사람들은 자주 장염과 식중독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원 전재]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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