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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쥔 사건 이후 보시라이 실각

편집부  |  20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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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얼마 전 발생한 왕리쥔 사건으로 중국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아시아 연구소 임영철 소장님을 모시고 왕리쥔 사건 이후 중공의 현재 상황에 관해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질문(문) :왕리쥔 사건 이후 보시라이가 갑작스럽게 해임된 이유?


임영철 소장(임):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핵심을 꼽자면 정치국입니다. 정치국에는 9명의 중앙 상무위원과 그 외에도 총 25명의 정치국 위원이 있습니다. 중공에는 정치국 위원급에 오르게 되면 웬만한 부정부패라던가 단순한 비리로 낙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중공역사에서 장쩌민이 정권을 잡은 이래로 정치국 위원 자격에서 물러난 사람은 장쩌민에게 도전했던 천시퉁 베이징 서기와 후진타오에게 도전했던 천량위 상하이 서기가 있는데 이번의 보시라이 해임이 세 번째에 해당되는 굉장히 드문 사건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부정부패 차원의 문제가 아닌 모반이라던가 국가의 정권을 전복하려는 부분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시라이가 후진타오의 비위를 가장 크게 건드린 것은 저우융캉과 공모해서 시진핑을 끌어 내리려 한 일종의 모반을 계획한 것이고 또 왕리쥔이 미국 총영사관에 중공 내부에 모순, 특히 중공 고위층의 부패라던가 비리 자료들을 넘겨 중국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 하는 자기 내부의 모순이라던가 약점을 외부로 밝혀지게 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후진타오 입장에서는 가장 뼈아팠던 것이고 그 문제 때문에 보시라이를 전격적으로 제거하게 된 것입니다.


문: 보시라이는 현재 중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인가?


임: 보시라이는 중공 부총리를 지낸 중공 관료로 덩샤오핑 집권 당시, 실제로 정권을 좌우지했던 8대 원로 중 한 명이기도 한 보이보의 아들로 출신 배경이 굉장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중고시절 당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한때 승승장구하고 잘 나가던 보시라이는 부친이 반혁명분자로 몰리면서 12년 동안 옥고를 치르는데 이 기간 중 말할 수 없는 좌절과 고통을 맛보고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때 보시라이는 권력의 힘에 대해 특히 폭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되고 그 이후로 권도의 길을 추구하게 됩니다. 권도라는 것은 권력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또 자기 부친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한 일종의 패륜적인 홍위병으로 알려져 태자당 내에서도 보시라이는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보시라이가 랴오닝 성장에서 상무부장으로 진급했다가 갑자기 충칭으로 가게 된 이유는?


임: 2004년 상무부장이 된 보시라이는 2007년 자신의 든든한 배경이던 부친의 사망으로 충칭으로 쫓겨났습니다. 당시 보시라이는 부친이 맡았던 경제부총리 자리를 노렸지만 전임자가 강력히 반대할 경우, 아무리 후임자가 능력이 있어도 임명을 하지 않는다는 중공의 전례가 있어 당시 총리였던 원자바오와 부총리 우이의 강력한 거부에 부딪쳐 충칭시 서기로 좌천 된 것입니다.   


문: 보시라이가 랴오닝 성장에서 승승장구한 원인?


임: 1990년대 후반 다롄시에 있던 보시라이는 2000년 초반 랴오닝 성장이 되는데 이 시기는 장쩌민이 당, 정, 군의 모든 권한을 쥐고 파룬궁 탄압을 주도적으로 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때 보시라이는 장쩌민의 점수를 따기 위해 다렌 시내에 장쩌민 얼굴이 있는 초대형 현수막을 설치하고 주도적으로 파룬궁 탄압에 앞장서 랴오닝성을 전국에서 파룬궁 탄압이 가장 심한 도시의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장쩌민에 의해 발탁됐습니다.


문: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대대적으로 벌인 창홍타흑은 무엇이고 그가 주력한 이유?


임: 이것을 보통 충칭모델이라고 하는데 충칭모델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보시라이가 당시 처했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2007년 충칭시 서기가 되면서 25위 정치국 위원이 된 보시라이는 정치국 상무위원 서열 9위에 진입하기 위해 다른 경쟁자들과는 차별화 된 업적을 필요했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10대 시절 느꼈던 마오쩌둥의 붉은 이데올로기인 문화혁명을 다시 일으켜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의도로 창홍을 계획하고 어린시절의 뼈저린 각성으로 폭력만이 자신이 살 길이라고 보고 왕리쥔을 이용해 폭력배를 소탕한다는 미명 하에 타흑운동을 전개해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입니다.


또한 언론사, 중앙관리, 학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어 자신을 업적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이것을 일컬어 충칭모델이라고 합니다. 이 운동은 소수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인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핵심을 보면 사실은 모택동이나 마오쩌둥식의 옛날 노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자바오가 문화혁명의 여독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강력히 비판한 것입니다.


문: 보시라이가 이 운동을 할 수 있었던 믿을만한 배경은 무엇이었나?


임: 보시라이가 가장 믿었던 사람인 중앙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은 장쩌민이 와병중인 관계로 현재 상하이방의 실질적 대표자이며 공안, 무장경찰, 사법, 검찰을 총망라한 무력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장쩌민이 심어놓은 수많은 상하이방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어 공공연하게 후진타오나 원자바오를 무시하는 정도의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 장파가 특별히 보시라이를 발탁한 이유?


임: 1989년부터 집권을 시작한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사망한 1997년부터 국가주석, 당총서기, 군사위원회주석 등 당정군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업적이 없어 인기가 좋지 않았고. 그로인해 파룬궁을 자신의 업적을 위한 희생양으로 선택했습니다.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통해서 자신의 독재 권력을 강화시켰다면 덩샤오핑은 89년 6·4를 통해 20만 명을 학살하며 20년의 안정을 찾아오자고 했던 전례에 비추어 무엇인가 희생양이 필요했던 장쩌민은 탄압을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기공단체 파룬궁을 99년 탄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이에 대해 7명의 상무위원 전원이 탄압에 반대를 했으나 장쩌민은 독단적으로 탄압을 추진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당조직이나 국가조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탄압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장은 당시 중앙정법위 서기였던 뤄간에게 막강한 권한과 파룬궁 탄압을 위한 초헌법적 기구 610을 만들어 그 조직의 모든 권한도 함께 주었습니다.


당시 610조직이 실질적으로 각 지방이나 말단조직에까지 침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법위와 결탁해 무장경찰이 비대해지고 숫자적으로도 많이 늘어났으며 질적으로도 우수한 장비를 갖추게 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뤄간이 물러나면서 장쩌민의 조카사위이자 골수 상하이방이며 파룬궁 탄압에 적극 앞장섰던  저우융캉이 서기로 발탁됩니다. 그 다음세대인 5세대 중 파룬궁 탄압에 가장 선두적이며 많은 피를 본 혈채파 인물이 보시라이였기 때문에 장쩌민이나 저우융캉의 입장에서는 보시라이를 자신들의 후임으로 앉혀야만 나중에 그들의 범죄가 폭로돼도 청산되지 않을 거라는 기대로 보시라이에게 많은 권력을 몰아주고 도움을 준 것입니다.


문: 후-원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세력과 장이 중심에 있는 상하이방 사이에서 바라보는 중국정세의 핵심적인 키워드?


임: 공산당의 본질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폭력과 거짓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도 근본적인 것은 폭력인데, 일례로 마오쩌둥은 살아있을 당시, 국가주석이나 총서기 같은 직책에 는 연연하지 않았지만 중앙군사위원회주석 자리는 끝까지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덩샤오핑의 경우에도 직접 자신이 나서지 않고 총서기인 후야오방과 총리인 자오쯔양처럼 자신의 수하들에게 맡겼지만 오로지 중앙군사위원회주석 자리만은 놓지 않았는데 공산당의 모든 것은 폭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후진타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게 군부의 주요 지도자들이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지금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주요한 두 원천은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군사중앙위원회와 저우융캉을 중심으로 하는 정법위 계통인데 현재 지방 당서기라던가 여러 사람들이 후진타오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법위 계통에 무장경찰 계통에 지도자들이라던가 또는 공안국장, 이런 정법위 계통의 인물들은 아직까지 후진타오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선언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 정세를 바라보는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이 두 무력 중에서 두 폭력 중에서 어느 쪽이 우세할 것이냐에 따라서 한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머지 한쪽이 타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문: 왕리쥔 사건이후 장쩌민을 위시한 상하이방의 입장이 불리하고 보시라이가 해임되면서 여러가지 입지가 불안해져 가고 있다. 앞으로 상하이방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임: 이번 왕리쥔 사건에서 개인적으로 보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에 하나는 기존에는 중공 내부에서 아무리 격렬한 투쟁이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외부로 공공연하게 드러나거나 외국에까지 알려진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왕리쥔사건을 계기로 보시라이가 해임되면서 중공내부에 적나라한 모순들, 적나라한 폭력들이 공공연하게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중공의 언론에 대한 통제력이 굉장히 약화됐고 중국의 많은 민중들이 각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중국공산당에 대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많은 환상들, 즉, 중국공산당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단합이 잘되는 조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공산당 내부는 굉장히 부패하고 썩어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간에 알력이 치열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충격에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교훈을 얻은 것입니다.


상하이방의 존재는 장쩌민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장쩌민의 몰락, 사망과 더불어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몰락을 앞둔 상하이방의 장쩌민이 저지른 가장 큰 문제는 파룬궁 탄압입니다. 1억 명에 달하는 무고한 주류사회 인사들을 박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내서 팔아먹는 이런 천인공로할 짓을 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진실이 폭로가 된다면 거의 전 중국인들은 상하이방을 비롯해서 심지어 중공까지도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지금 싸움의 관건은 파룬궁 문제를 적극적으로 처리하고 파룬궁을 명예회복시킬 것이냐 아니면 지금처럼 파룬궁에 대한 탄압정책을 계속 고수할 것인가 하는 이 양자를 둘러싸고 후-원 세력과 저우융캉을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의 혈채파 간에 대립입니다. 나머지 태자당이나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상하이방의 관망파들이 사건의 전개 양상을 보고 있는데 결국 장쩌민이 사망하면 상하이방의 힘은 급속히 몰락하고 세력의 중심은 후진타오 쪽으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왕리쥔 사건이후 중국의 현재 상황과 그에 관련된 인물들에 대해 동아시아연구소 임영철 소장님을 모시고 말씀들어 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곽제연이었습니다.

 

※ 임영철 소장: 서울대 물리학과 및 경희대 한의학과 졸, 현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및 서울 경희한의원 원장,  전 세계적으로 공산당 탈당 열풍을 일으킨 '9평 공산당'과 공산당 문화의 본질을 파헤진 '해체 당문화' 등 다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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