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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도(中庸之道)

편집부  |  2023-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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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도진(李道真)

[SOH] 중화문화는 일체(一體)이기에 중화신전문화를 학습하려면 반드시 전체관・전식관(全息觀)이 있어야 하며 반드시 오성과 근기가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탐구해도 그저 중화신전문화의 피모(皮毛)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유가(儒家)에서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상이 있는데 바로 중용(中庸)의 도다. 앞에서 유가는 도가(道家)에서 분리되어 나왔기 때문에 유가사상은 반드시 도가와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 연결 창구가 바로 중용의 도다. 그러므로 중용을 뛰어넘으면 곧 유가에서 도가로 진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중용사상은 유가에서 가장 높은 사상으로 바로 유가의 천문(天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공자는 말한다.

“중용이 설마 지극히 높은 진리란 말인가? 천하 백성들이 중용을 떠난 지 이미 아주 오래되었구나.”[52]

중용에는 3가지 차원이 있다. 일반적인 속인이 이해하는 것은 바로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가장 좋지도 않고 가장 나쁘지도 않으며, 위와 비교하면 부족하고 아래와 비교하면 여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는 중용의 내함(內涵)에 대해 가장 저속하고 표면적인 이해다.

두 번째는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인데 만사에 지나치지도 말고 부족하지도 말아야 하며 화후(火候)를 잘 파악해 적당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인이 중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내함이다.

세 번째는 바로 자연만물의 조화로운 평형 및 공생공존(共生共存)・정체승화(整體昇華)가 완벽에 도달한 것으로 필자가 보기에 이것이 중용에서 가장 높은 내함이다.

이번 장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주역팔괘와 신전문화 풀이(解周易八卦與神傳文字)》 시리즈를 보는 것이 좋다.

■ 상생상극(相生相剋)

앞에서 도가 상생상극의 이치를 논술했는데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삼계(三界)와 소우주는 음양・오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양・오행 사이에는 모두 상생상극의 이치가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상생상극의 관계와 연계되어 순환변화를 만들어낸다.

상생상극이란 두 가지 관계인데 바로 상생과 상극이며 그것들 사이에 일종 동태(動態) 평형이 존재한다. 앞에서는 주로 상생을 말했는데 바로 만사만물(萬事萬物)이 모두 정부(正負) 양면이 일체가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선(善)이 생겨남과 동시에 또 악(惡)이 생겨나고, 위가 있으면 동시에 또 반드시 아래가 있어야 하며, 냉(冷)이 있으면 반드시 열(熱)이 있고, 옳음이 있으면 그름이 있고, 움직임이 있으면 고요함이 있어야 하는 등등이다. 만사만물은 모두 음양이란 두 상(象)을 벗어날 수 없는데 다시 말해 상생상극을 뛰어넘을 수 없다.

바로 이 정부(正負) 요소는 일체가 되어 상생하는 동시에 또 각각 둘둘이 상극한다. 예를 들면, 냉열(冷熱)이 상극하고 명암(明暗)이 상극하며 선악(善惡)이 상극하고 동정(動靜)이 상극하는 등인데 상생상극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만사만물이 서로 상생하는 동시에 또 둘둘이 상극한다.

가령 온도가 올라가 열로 변할 때면 반드시 외부에서 열량을 흡수해야 하는데 외계는 열량을 뺏긴 후 곧 온도가 내려가 냉각된다. 이것이 바로 열(熱)이 냉(冷)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냉이 더 냉해질 때면 반드시 외부로 자신의 열량을 방출해야 하는데 외부에서는 이 열량을 흡수한 후 곧 온도가 올라가 열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냉이 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것이 냉열(冷熱)의 상생이다.

동시에 냉은 또 열을 극(克)하고 열의 온도를 낮춰 열을 냉하게 만들 수 있다. 열 역시 냉을 극(克)하며 냉의 온도를 올릴 수 있고 냉의 온도를 올려 열이 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냉열의 상극이다.

같은 이치로 밝음이 어둠을 낳을 수 있고 어둠을 더 어둡게 만들 수 있고 어둠 역시 밝음을 낳고 밝음이 더 밝아지게 할 수 있다. 악은 선이 더 분명하고 더욱 선량하게 하고 선 역시 악이 더욱 두드러지고 가증스럽게 한다. 동시에 악은 선을 없앨 수 있고 선 역시 악을 줄일 수 있는 등등이다.

상생상극 관계는 아주 기묘(奇妙)한 것으로 그것들은 일종의 동태적인 순환과 평형을 형성하고 음양・오행의 순환운동을 만들어내고 세계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발전변화를 추진한다.

■ 평형점의 편이

상생상극은 동태적인 순환이라 필연적으로 하나의 평형점이 존재한다. 가령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최종적으로 수면이 이 수평면의 위치에 도달하면 곧 평형이 되어 더는 흐르지 않는 하나의 수평면이 존재한다. 이 수평면보다 높거나 낮은 물은 모두 끊임없이 수평면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수평면을 핵심으로 오르내리는 파랑(波浪 물결)이 생성된다.

그러므로 물이 정지해 있을 때 그것들은 늘 수평면상에 위치하는데 이때의 수평면이 바로 정태적인 수평면이다. 하지만 물이 흐를 때면 수평면이 곧 타파되어 사라지고 ‘무형’의 수평면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모든 물이 다 그것을 향해 흐르기 때문에 이때의 수평면을 가리켜 동태적인 수평면이라고 한다.

상생상극이 평형위치에 도달하면 중화(中和)가 사라져 대도(大道)로 돌아가 도(道)속에 숨는데, 이것이 바로 중용에서 말하는 ‘중(中)’이며 물이 수평면에 정지해 있는 상태에 해당한다.

상생상극은 시종 평형점 부근에서 순환하고 변화하며 일종 동태평형에 도달하는데, 평형점을 벗어나지 않고 절도(節度)를 넘지 않을 때 바로 ‘화(和)’가 되는데, 이는 마치 물이 수평면 위아래로 절제된 파동이 있는 것과 같다. 이 평형점이 바로 도(道)에 해당한다.

중(中)은 평형점으로 돌아가 도(道)속에 귀속된다는 뜻이고, 화(和)는 평형점을 둘러싸고 동태적인 조화와 평형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중용에서는 또 이를 중화(中和)라 한다.

《중용》에서는 말한다.

“희(喜 기쁨)·노(怒 성냄)·애(哀 슬픔)·락(樂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고 하고, 드러났지만 모두 절도에 들어맞는 것을 화(和)라 한다. 중이란 천하 만물의 근본이고, 화란 천하 만물이 평형을 이뤄 조화로운 도다. 중화의 상태에 도달하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상생한다.”[53]

여기서 중(中)이란 도(道)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도가 숨어 이름이 없고, 자연무위(自然無爲)의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화(和)란 바로 공자가 말한 소강(小康)사회 상태다. 천하에 사사로움(私)이 생겨, 대도(大道)에서 벗어나고, 평형점을 벗어나면 평형점을 둘러싸고 상생상극의 발전변화가 있다. 만약 만물의 상생상극이 일정한 절도를 유지할 수 있어서 지나치지 않고 과격하지 않으면 평형점은 곧 어긋나지 않게 되고 전체적으로 평형점 부근을 유지하면서 동태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즉, 만사만물이 대도에서 벗어난 후에도 여전히 도(道)를 표준과 핵심으로 삼아 대도를 지향하고 동태 평형에 도달해 만사만물이 대도 밖 어느 정도 안전한 구역 안에서 비교적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화(和)에 담긴 뜻이다.

만약 만사에 늘 극단으로 가는 것을 좋아해 상생상극이 절도를 잃으면 평형점에 편이(偏移)가 생기는데 그럼 가늠하는 표준도 편이가 발생해 도(道)의 표준에서 벗어난다. 가늠하는 표준에서 편이가 생기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며 ‘음양반배(陰陽反背)’의 천상(天象)을 초래할 것이다. 음양반배 천상이 일단 나타나게 되면 인간 세상에 대응하는 것은 바로 훼멸의 징조다. 즉, 인간세상의 겁수(劫數)가 이미 도래한 것으로, 성주괴멸(成住壞滅)의 기수(氣數)가 윤회하는 중에 이미 멸(滅)의 시각에 도달한 것이다.

그렇다면 평형점 편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우리 인류의 미각(味覺)은 조화로운 범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 범위 내의 미각은 우리가 모두 가뿐하게 감당할 수 있는데 이를 조화로운 미각이라고 한다. 이 범위를 벗어난 미각이라면 우리는 너무 강한 자극으로 여겨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이것이 바로 극도(極度)의 미각이다.

우리는 끓인 물이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찻잎을 오래 씹는 것처럼 극단적인 미각 중에서 쓴맛을 오래 맛본 후 끓인 물을 마셔보면 끓인 물이 단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형점에 편이가 생겨 원래 맛이 없던 끓인 물을 단맛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치약은 매우 달고 맛이 강해서 극단적인 미각에 속한다. 아마 모두들 아침에 양치질을 하고 나서 과일을 먹으면 맛이 없어서 마치 끊인 물과 같은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 역시 단맛의 상생상극이 일시적으로 법도를 잃어 평형점에 편이가 생겨 발생한 것이다.

이상 맛의 평형점의 균형 상실은 일시적인 불균형일 뿐이며 단기적인 균형상실에 불과해서 곧 원래의 미각을 회복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장기간 그런 극단적인 미각 상태에 놓이게 되면 원래의 미각 평형점이 파괴되어 영구적인 불균형을 초래해서 더는 원래 맛을 되찾을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

만사만물 상생상극의 평형점이란 바로 도(道)의 표준이다. 그것은 선천적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또는 ‘중(中)’이라고 한다. 상생상극이 완전히 평형점으로 회귀해 ‘중’의 상태에 도달함이 바로 즉 상생상극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이는 만사만물이 도(道)속에 회귀해 무위로 하는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노자의 ‘무위의 다스림’이나 공자가 말하는 ‘대동(大同)’ 사회가 바로 ‘중’의 상태에 처한 것이다.

천하가 대도에서 벗어나면, 즉 평형점에서 편이된 후에 필연적으로 상생상극의 이치 속에 빠져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 이때 만약 시종일관 절도(節度)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만사만물의 상생상극이 모두 평형점 부근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일종의 동태적인 평형에 도달해 조화로운 범위 내에서 유지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대도에서 벗어난 후, 시종 대도를 핵심으로 대도를 지향하며 대도 밖의 비교적 안전한 구역 내에서 비교적 조화로운 상태에 도달한 것과 같다. 이 상태가 바로 ‘화’다. 공자가 말하는 ‘소강’사회는 바로 ‘화’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만물이 상생상극의 관계망(關係網) 속에서 절도를 잃고 과격해지면 상생상극이 균형을 잃고 평형점에 편이가 발생한다. 이 최초의 평형점이 바로 도(道)로 이는 만사만물에 선천적이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이자 영원불변의 진리로 암암리에 모든 것을 유지하고 가늠한다. 평형점이 원래 선천적인 위치에서 벗어나면 가늠하는 표준에 변이가 생겨 도(道)가 더는 표준이 되지 못하며 후천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평형점이 표준이 되는데 이는 가장 두려운 일이다.

일례로 천하가 모두 도(道)속에 있을 때는 만사만물이 다 평형 위치에 있는데, 이때는 가늠하는 표준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천하가 모두 표준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속에서 자연스레 본성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문제가 생기기 않는다.

천하가 모두 대도에서 벗어나면 만사만물이 다 평형위치를 벗어나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상태가 깨진다. 그럼 만사만물이 상생상극 속에 빠져 평형위치 부근에서 하나의 동태적인 평형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는 비록 천하가 대도에서 벗어나 평형점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원래의 평형점은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의 척도는 변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대도를 척도로 삼아 옳고 그름을 따진다.

만사만물은 모두 대도(大道)를 둘러싸는데 대도를 핵심으로 평형점(큰길) 부근에서 일종의 동태 평형을 이룬다. 평형점이 벗어난 후에는 가늠하는 표준이 대도를 벗어나게 되어 사람들은 더 이상 대도를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지 않고 빗나간 위치(새로운 평형점)를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게 된다. 이때 만사만물의 평형이 철저히 타파되어 전체적으로 위치 이동이 생기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정확하지 않게 되고 가늠하는 표준이 문란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양치질을 한 후 맛의 평형점이 빗나가면 전에는 무미건조했던 끓인 물이 쓴맛으로 변하고 전에는 달았던 과일이 아무 맛도 없는 것으로 변한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이들 사물의 맛이 변한 것이 아니라 평형점이 빗나갔기 때문에 가늠하는 표준이 틀려진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인정하는 단맛은 더 이상 단맛이 아니고 쓴맛도 더 이상 쓴맛이 아니다.

평형점이 빗나가면 사람들이 가늠하는 표준이 객관적인 진리에서 벗어나고 대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때 사람들이 좋다고 인정하는 것은 더는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쁘다고 인정하는 것도 더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는 대단히 두려운 일인데, 사람이 되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의 표준이 완전히 변이된 후에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는데, 마귀(魔鬼)와 금수(禽獸)로 변해 훼멸로 나아갈 것이다!

주:
52 、《中庸》:子曰「中庸其至矣乎!民鮮能久矣。」

53 、 《中庸》: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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