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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구나] 차이나타운(하)

디지털뉴스팀  |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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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광저우, 푸저우, 샤먼 등의 개방된 항구를 통해 중국을 떠난 사람 중에는 아메리카와 유럽, 호주 등으로 향한 이들도 있었다. 당시 유럽의 열강들은 노예무역을 중단하면서 설탕, 면화 등 플랜테이션에서 일할 노동자가 부족해 아우성이었다.

미국 역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서 캘리포니아의 금강과 은광에서 일할 인력이 절실했다. 당시 동남아의 광산과 농장에서 일하던 중국 노동자들은 양질의 저임금 노동자로 서구 열강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무엇보다 이들은 성실하고 체력도 좋았다.

이 점을 눈여겨본 영국인들이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있는 플랜테이션으로 중국 노동자들을 보냈는 데 이것이 중국인들의 서구 진출의 시작이다. 당시 서구는 이 값싼 중국 노동자들을 쿨리(Coolie)’라고 불렸다. 

영국의 추천을 받은 미국 역시 쿨리들을 대거 수입해 서부의 광산에 투입했는데, 이들 역시 동남아에서 일하는 중국 노동자만큼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중국인들은 성공에 대한 야망이 매우 컸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말썽도 피우지 않았다. 때마침 시작된 아메리카 횡단철도 부설로 더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 땅을 밟았다.

로스앤젤레스의 인구가 6000명에 불과하던 19세기 후반, 미국의 중국 이민자들은 10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상당수가 철도 건설에 동원됐고 미 서부에서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많아졌다고 남이 나라에서 자신들만 모여 사는 차이나타운을 세울 수는 없었다. 차이나타운이 결코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 뭉쳐야 산다

16세기에 만들어진 필리핀 마닐라의 차이나타운은 유럽에서 유대인을 분리한 게토(Ghetto)나 다름없었다.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던 스페인은 중국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지자 마닐라의 차이나타운을 두어 스페인의 백인과 섞이지 않도록 했다.

18세기 중반의 차이나타운이 들어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인들에게 행정과 징세 업무를 맡겼고, 무역과 대금업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식민 정부의 앞잡이 역할을 맡았으니 원주민들의 증오가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중국인 학살과 가게의 약탈이 벌어지면서 게토 역할을 하던 차이나타운은 방어를 위해 중국인들이 스스로 모여들면서 더 커졌다.

말레이시아에서도 혼란이 계속되자 국토 끝의 작은 땅에 중국인들을 몰아넣고, 연방에서 쫓아내 버렸다. 이렇게 억지로 독립하게 된 그 작은 땅은 나중에 싱가포르가 되었다.

미국과 영국에서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진 과정도 동남아와 비슷했다. 19세기 말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싼 임금으로 부려먹던 중국인들은 졸지에 일자리 도둑으로 몰리게 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집단 린치라는 로스앤젤레스 대학살을 겪은 중국 쿨리들은 인종차별이 덜한 곳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밴쿠버 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방어에 유리하도록 특정 지역에 뭉쳐 살았다. 토착민들의 대응하기 위해선 한 명이라도 머릿수를 늘리는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은 이렇게 시작됐는데,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방치됐던 화교들이 생존을 위해 만든 고육지책인 셈이다. 

동남아에선 화교들이 경제를 장악하다시피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에선 이제 도심지가 된 차이나타운의 부동산 가격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이들은 처음엔 돈을 벌어 성공한 다음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현지에 동화되기는커녕 언어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업 역시 가족이나 같은 고향 출신끼리의 ‘꽌시(关系)’가 중요해서 현지인들은 물론 같은 중국인 사이에서도 무척 배타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청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으로 본토에 혼란이 계속되어 돌아갈 수가 없었고, 이후에는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수십 년간 귀국길이 아예 막히기도 했다.

차이나타운은 개인사로 봤을 때 타국에서 힘든 노동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나온 고난의 부산물이다. 거기엔 생존과 성공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이 혼합돼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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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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