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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89)-제21장 전 세계에서 기소 열풍이 불고, 광범위한 법망(法網)을 피할 방법이 없다
 
  
2008-07-17 06:05:49  |  조회 11366



(피할 길 없는 법망 속에서 전 세계적 기소 열풍의 초점이 된 장쩌민, 다섯 번째 시간)


계속해서 기소되는 뤄간

중공 정법위(政法委) 서기이며 중공 “610사무실” 책임자이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뤄간(羅干)은 장쩌민의 파룬궁 진압에 가장 열심인 사람이다.

뤄간은 99년 이전에 파룬궁 진압을 도발하였고 파룬궁 진압이 무기력해지자 놀랍게도 천안문 “분신 자살” 사건을 조작해 진실을 모르는 수많은 민중들을 속였다. 뤄간이 있는 곳에서는 파룬궁 박해가 다른 곳보다 더욱 심했다. 최근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는 가오롱롱(高蓉蓉) 사망 사건도 뤄간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멀리 랴오닝성 선양(沈陽)시 루쉰(魯迅)미술대학 재정처 직원이었던 가오롱롱은 롱산(龍山) 노동교양원에서 6-7시간의 계속적인 전기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후에 한 선인의 도움으로 그곳을 벗어났으나 뤄간은 그녀를 찾아 보복할 것을 친히 명령했다. 극도로 쇠약해진 가오롱롱은 다시 붙잡혀 악명 높은 마산자(馬三家)교양원에 구금되었고 2005년 6월 16일 혹형과 박해를 견디지 못해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3년 8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뤄간은 해외에서 집단 학살죄와 혹형죄로 벨기에, 핀란드, 아르메니아와 몰도바, 아이슬란드, 스페인, 대만, 독일과 한국, 캐나다, 칠레, 볼리비아와 페루, 일본등 14개 국가에서 기소되었다.  

2003년 9월 7일부터 뤄간은 유라시아 4개 국을 방문했다. 아이슬란드, 핀란드, 아르메니아 및 몰도바 등 방문한 모든 국가에서 연속 기소된 뤄간은 외국 방문 기간 중 가장 많이 기소됨으로써 장쩌민 다음으로 해외에서 기소 횟수가 가장 많은 중공 관료가 되었다.    

뤄간의 610 지휘 역할과 인권 침해 사례등을 보면 그것이 히틀러의 게슈타포 두목 역할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은 이런 인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었으므로 그곳에서 뤄간이 받았을 대우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뤄간의 핀란드 도착 하루 전, 핀란드 <수도일보>의 1면과 국제기사 란에는 뤄간의 핀란드 방문과 파룬궁이 중국 고관을 “집단학살죄”로 고소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핀란드 대중들은 언론 매체를 통해 “좋지 않은 인권 침해 기록”이 있는 중국 고관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거듭 표현했다. 이 같은 반응에 대해 핀란드 사법부와 외교부는 ‘뤄간은 우리의 국경일에 참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온 것이지 우리가 그를 초청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 누구도 이런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정부 측의 입장을 표명했다..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뤄간의 방문 전에 이미 언론 매체를 통해 “인권 유린의 대표자인 이런 사람이 어떻게 유럽으로 초청되었나요?”라는 항의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아이슬란드 정부는 뤄간이 스스로 초청해 주기를 요구한 것이지 정부가 그를 초청한 것이 아님을 성명했다. 아이슬란드 최고 법원장은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 “그(뤄간)가 직접 법원장과 만나길 원하는데 나는 그가 왜 나를 만나려 하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영문인지를 모르겠다.”고 했고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뤄간은 매우 화를 내며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본래 인품이 좋지 않은 사람은 어디를 가도 환영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작고 작은 몰도바의 지역 일간지도 “몰도바 대통령이 “집단학살”을 만행한 친구를 초대했다.”는 제목의 장편의 기사를 보도했다.


처음으로 법정에 강제 출석한 중공 고관 – 천즈리

중국 교육부장을 역임했고 현임 국무위원이자 장쩌민의 측근 중 하나인 천즈리(陳至立)는 2004년 7월 19일 탄자니아 방문 당시 인권변호사에 의해 중국교육부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혹형과 학대를 만행한 죄로 고소되었으며 7월 19일에는 강제적으로 법정에 출석해 취조 받았다. 법정 소환장을 받고 즉시 연락이 두절되거나 중국으로 도망간 관료들과는 달리 귀빈 자격으로 탄자니아를 방문 중 이던 천즈리는 그곳의 법정에서 도피할 핑계를 찾지 못해 강제적으로 법정에 선 최초의 중국 고관이 되었다.

천즈리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 교육부장을 맡았고 현재는 문교부의 국무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장쩌민과의 특수한 관계를 이용해 특권을 얻었고 중국 교육부에서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강력히 실행해서 아주 흉악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파룬궁을 진압했다. 그녀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체계적으로 학생들에게 “파룬궁 진압과 증오심에 대한 타당성” 을 주입시켰고 또한 파룬궁을 수련하는 대다수의 학생과 교직원이 구금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 중 최소 61명이 고문 중 사망하였다.  

2004년 12월 7일, 탄자니아 법정은 천즈리를 혹형과 학대죄로 고소하고 그녀에 대해 초보적인 사법 절차를 밟았다.

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피해자들이 제공한 대량의 증거로 천즈리의 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배령이 무서워 도주해버린 성위원회 서기 - 쑤룽

중공 간수(甘肅)성 위원회 서기인 쑤룽(蘇榮)은 중공 지린성위원회 부서기를 역임했을 당시, ‘성위원회 파룬궁 문제 처리반’을 책임지고 지린성 내 파룬궁 진압을 지휘했다. 불법적인 진압 행동이 본격화 되면서 그는 파룬궁 수련생의 “전화”와 당적(黨籍) 및 공직(公職) 박탈 등의 처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주도했다.

2004년 11월 4일, 쑤룽은 우방궈(吳邦國)와 함께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가던 중 잠비아 고등법원 직원에게서 직접 법원 소환장을 받았다. 그는 지린성 중공 610사무실 책임자로 있는 동안 파룬궁 수련생의 살해를 도모했고 혹형과 능욕을 범했다는 죄목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에 의해 고소되었다. 소환장을 받은 쑤룽은 어쩔 수 없이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머무르며 법정 소환을 기다려야 했다.  

11월 8일, 쑤룽은 예정일에 법정 출석을 하지 않아 “법정 무시죄”가 추가되었다. 11월 13일 오전, 잠비아 고등법원은 쑤룽 소송안을 다시 심리하려 했으나 피고인 쑤룽은 역시 출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잠비아 경찰은 그에 대한 수배령을 내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쑤룽의 도피처였던 잠비아 중국 투자개발 무역 활성화 센터에서 그의 옷가지와 개인 용품 등이 발견됐지만 정작 쑤룽은 찾지 못했다. 호텔 기록부에는 그가 11월 8일 오후 2시경 퇴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 후로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쑤룽은 거의 10일 동안 도피 하던 중 잠비아 경찰의 수배령을 보고는 친런디(Chirundy) 변경을 통해 잠바브비로 건너갔고 그 후에는 남아프리카로 갔다가 2004년 11월 15일경 중국으로 도주하였다고 한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잠비아에서 겪은 이 특수한 “방문”에 대해 쑤룽은 다시는 함부로 해외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파룬궁 박해 참여자들에 대한 법적 추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중공 성급 관료인 쑤룽을 헤이그 국제 법정에 재 고소 했다.

파룬궁 진압의 직접적인 지휘자 – 류징

류징(劉京)은 현임 공안부 부부장이며 파룬궁 박해를 전담하는 “610사무실”의 부주임이다. 파룬궁 유혈 탄압이 날로 극심해짐에 따라 류징은 이미 인터넷에서 중공의 특급 투사와 인간백정의 대표자가 되었다.

류징과 장쩌민의 인연은 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류징이 쿤밍(昆明)시 시장을 맡고 있을 때 쩡칭훙은 그를 찾아 중국 장애인 집행 이사회의 이사직를 맡고 있는 덩푸팡(鄧朴方)과의 관계를 이용해 양자장(楊家將)을 몰아내는데 협조할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류징은 장쩌민이 양상쿤(楊尙昆)과 양바이빙(楊白冰) 형제를 제거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특수한 관계로부터 우리는 류징이 중앙 ‘610사무실’ 부주임과 공안부 부부장을 역임하며 장쩌민 파룬궁 진압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가 된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류징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매우 포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할 당시, 그는 베이징 공예(工業)대학 3학년이었다. 중공 고관의 자제였기 때문에 그는 일찍이 공업대학 당위원를 통해 학생 당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와 같이 중공 고관의 자제인 급우 탄리푸(譚力夫)처럼 일찍이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었다. 1966년 6월 류사오치(劉少奇)와 덩샤오핑(鄧小平)이 두완룽(杜萬榮)을 대장으로 한 문화대혁명 조직을 공업대학으로 보내 그곳에 주둔하게 하였고 이때 류징과 탄리푸는 그때가 바로 정치적 도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았다. 자신을 가르치고 입당시킨 공업대학교의 구(舊)당위원들에 대해 류징은 즉각 고관의 자녀들을 조직해 그들을 헤이방(黑幇)으로 몰아부치고 “간부 자녀를 무시하고 박해했다”고 질책했다. 문화대혁명 조직의 교육을 받으며 공업대학 “문화대혁명 위원회”의 주임이 된 류징과 홍위병 총대장이 된 탄리푸는 단 기간 내에 교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헤이방”과 투쟁하고 교수를 때리며 문화대혁명 조직에 반대하는 교사와 학생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또한 그들을 “우파(右派)”로 몰아부치고…… 결과적으로 공업대학교 에서 류징과 탄리푸가 있는 곳은 박해와 폭력이 난무했다. 통계에 따르면 당시 공업대학교에서 류징의 “문화 대혁명 위원회”에 의해 “헤이방”이나 “우파”로 몰린 사람은 모두 300여 명이나 된다.    

중앙 610사무실 부주임을 역임하는 동안 류징은 장쩌민과 뤄간의 발포 명령과 대규모의 파룬궁 수련생 학살과 체포및 세뇌 등을 포함한 박해 명령을 전하고 집행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 인권회 외신기자 회견 등의 장소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거짓 정보를 퍼뜨렸으며 당시 광범위하게 존재하던 인권 박해를 미화하고 찬양하며 파룬궁 진압을 변호했다. 파룬궁 진압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류징은 2002년 11월 중공 “16대” 이후에 610사무실 주임, 공안부 부부장과 당위원회 부서기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중공 제16대 중앙위원으로 승임(陞任)했다.  

2004년 3월과 11월 두 차례, 류징은 캐나다에서 집단학살죄와 혹형및 반인류죄로 민사와 형사 기소되었다.


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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