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항상 자랑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만리장성이다. “우주선에서 푸른 지구를 내려다봤을 때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인공구조물이 만리장성이다.” 중국이 침을 튀기며 자랑하는 만리장성이지만 몽골인들은 코웃음을 친다. “우리 몽골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렇게 무지막지한 장성을 쌓았겠는가.”
몽골인들의 비웃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백만 한족(漢族)의 피와 땀으로 만리장성이 세워진 뒤에도 북방의 몽골인들은 마술(馬術) 경기자가 허들을 넘듯 마음대로 넘나들며 중원을 약탈했다. 칭기즈칸이 세계의 6할을 점령하고, 중국은 원(元)나라가 돼 몽골의 통치를 받는다. 중국 역사의 가장 치욕적인 100여 년이 지나고 다시 한족이 중국을 되찾으며 명(明)나라로 태어나 몽골을 지배한다.
명나라 한족은 몽골인의 씨를 말리기로 작정한다. 명나라가 몽골 성인 남자에게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젊은이들이 세금을 피해 라마 승려가 된다. 명나라는 중국 각처에서 성병에 걸린 창기들을 징발해 몽골로 보낸 후, 그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서 수많은 라마 사원 앞에 색주집을 차리도록 부추겼다. 세금을 피해 승려가 된 몽골 젊은이들이 무슨 신앙심이 있겠는가. 그들은 색주집을 들락거리며 모두가 성병에 걸린다.
명나라는 악랄하게 초야권(初夜權)을 라마 승려들에게 주었다. 몽골 처녀들은 의무적으로 시집가기 전에 첫날밤을 라마 승려에게 바쳐야 했던 것이다. 거의 모든 몽골 사람들이 성병에 걸렸다. 갓 태어난 아이들은 기형아 아니면 사산아였고, 성인들도 사지가 썩어 문드러졌다.
1900년, 옛 소련이 몽골에 진주했을 때 드넓은 몽골에 인구는 불과 70만 명뿐이었다. 소련 점령자들이 바리바리 싣고 온 페니실린이 몽골 사람들을 살렸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몽골은 인구 400여 만 명으로 불어났다.
몽골 사람들은 지금도 중국인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반면에 같은 몽골리안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호의를 베푼다. 여름 한철 한두 달 외국에 나가 살다가 오기에는 몽골보다 좋은 곳은 없다. 몽골은 높은 위도에 고원지대라 한여름의 기온이 우리나라 10월 상달처럼 쾌적하다. 몽골이 자랑하는 국가적인 나담 축제가 떠들썩하게 열리는 때도 7월이다.
이 나라에서 한두 달 살 곳은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몽골 텐트 ‘겔’에서 살며 말을 타고 다니는 몽골 유목민 생활을 체험하려면 이 나라 수도를 벗어나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도시 생활에 젖어 있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울란바토르를 벗어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