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의 심장부이자 권력의 중심부인 천안문광장. 깨끗하게 단장된 광장 서쪽에는 인민대회당, 동쪽에는 국가박물관이 웅장한 자태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광장 남쪽에는 요즘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절반 정도 철거된 채 앙상한 골조를 그대로 드러낸 5~6층 건물, 다 부서지고 콘크리트 조각만 수북이 쌓여 있는 폐허, 먹을 것을 찾아 몰려다니는 쥐, 폐허 더미를 헤치며 판자 등 폐품을 수집하는 폐품상….
옛 자금성의 첫 번째 관문인 ‘첸먼(前門)’ 일대가 재개발을 위한 철거작업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폐허로 변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첸먼 지역은 고대 도시 베이징의 전통미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 원(元)나라 때부터 생겨난 중국의 전통골목인 후퉁(胡同)과, 그 사이로 들어서 있는 전통가옥인 쓰허위안(四合院)이 밀집해 있다. 좁은 후퉁 안쪽에는 수십 년에서 100년이 넘은 베이징의 이름난 식당과 가게들도 적지 않다.
고대 도시의 면모를 갖춘 이곳이 철거반의 망치로 두들겨 맞게 된 것은 올림픽 때문. 베이징시 당국은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화라는 명목으로 각 지역에 대한 재개발·정비 작업을 추진 중이다. 첸먼은 올림픽 경기장과 선수촌이 건설되는 지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나,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도심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철거 대상이 됐다. 지역 주민 판진위(64)씨는 “이곳은 세계를 향한 베이징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정부 관료들은 외국인들에게 베이징의 낡고 상처 난 얼굴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첸먼 보호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탄원서와 편지는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철거는 예정대로 진행 중이다.
주민 이주와 보상문제도 논란을 빚고 있다. 베이징 최고 도심 지역이다 보니, 정상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하자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 정부와 재개발업자는 2001년 평가 기준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이주 보상금으로 지급하는 돈으로는 집이 아니라 천막을 사기도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베이징=조중식특파원 [블로그 바로가기 jscho.chosun.com])-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