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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의 만남도 연분’

편집부  |  20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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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위츙(玉瓊)

 

[SOH] 전에 내가 알고 지내던 몇몇 친구들은 늘 내게 자기 조상들이 의업(醫業)을 행한 일화를 말해주곤 했다.
 
이중 산둥(山東)에 거주하는 한 친구의 조부(祖父)는 산둥성 인근에서 아주 유명한 의사였는데 마을에 종종 강도들이 출몰하곤 했다. 한밤중에 말을 탄 강도들이 마을을 지나갈 때면 집집마다 모두 대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강도들은 농작물은 물론 말을 보기만 하면 곧 끌고 가 벌겋게 달군 쇠로 낙인을 찍었는데, 이렇게 하면 그 말은 영원히 그들 소유가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 두목이 눈에 상처를 입어 마을로 치료받으러 왔다. 이때 조부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즉, 앞으로는 더 이상 마을에 들어와서 약탈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했다. 두목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의 병이 나은 후 그의 무리들은 이 마을을 통과할 때 다른 길로 돌아갔다. 간혹 한밤중에 마을을 지나게 되면 조부의 집 문 앞에 식량을 남겨두기까지 했다. 그는 이처럼 조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
 
옛날 환자들은 의사가 병을 치료해서 몸이 좋아지면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했으며 마치 친척처럼 선물을 가지고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위 일화에서 보듯이 심지어 강도조차 그렇게 했으니 소박한 일반 백성들이야 어떠했겠는가! 너무 가난해서 줄 물건이 없는 환자들은 건강이 회복된 후 산속에 들어가 진귀한 버섯을 따다가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미국에 건너온 후 나는 한 의사 집에 머문 적이 있다. 그는 의술이 뛰어난 원로 의사였는데 내과, 외과는 물론이고 각종 크고 작은 수술을 다 할 수 있었다. 그가 사는 마을에서 30세 이하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그에게서 치료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의사노릇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고 했다. 설사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질병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각종 검사를 받게 해야 하며 번 돈은 모두 아내와 자식들의 명의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혹시라도 환자들에 의해 소송당하는 것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의 친구 중에 뛰어난 산부인과 의사가 있는데 1년 동안 무려 9차례나 소송 당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날이 갈수록 소심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현대사회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완전히 상업적인 매매 관계로 변질되었다. 환자는 돈을 내고 치료를 구매하며 만약 만족스럽지 못하면 각종 구실을 찾아 의사를 고발한다. 의사는 또 여러 가지 기계를 이용해 환자에게 각종 검사를 받도록 요구한다. 처방전을 쓰거나 약을 줄 때 근거로 삼는 용도 외 그런 것들이 많아야 자신을 보호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환자들은 부담하는 의료비가 갈수록 많아지고, 의사들은 보험료가 갈수록 많아진다. 또 변호사도 중간에서 한몫 챙겨야 하므로 모두들 서로 계산적이 되고 관계가 긴장해진다. 이것이 하나의 악순환이 되어 의료비는 사회 전체에 큰 부담이 되었다.
 
사실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연분(緣分)에 의한 것이다. 환자가 어떤 의사를 만나는가 하는 것도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속담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는 말이 있다. 즉, 옷깃이 스치는 이런 간단한 일도 서로 연분이 있어야 될 수 있다는 것인데, 하물며 의사가 환자를 보는 이런 중요한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저술한 임상기록인 『전생금생(前生今生)』에 묘사된 내용 중에 한 환자가 전생을 기억해보니 자신을 치료하던 의사가 전생에 그녀의 스승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의사와 환자의 연분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업(業)을 짓고 업을 갚은 과정이다. 의사와 환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사가 환자를 잘 치료하면 혹 덕(德)을 쌓거나 업(業)을 갚게 되며 전생의 채무를 해결하게 된다. 만약 의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령 엉뚱한 이를 뽑거나 멀쩡한 다리를 자르거나 터무니없이 비싼 비용을 받게 되면 다시 업이라는 채무를 지는 것으로 나중에 다시 갚아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고통을 겪는 것이 바로 업을 갚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시달림, 비싼 치료비 등이 모두 업을 갚는 것이다. 환자는 업을 갚은 후에야 비로소 몸이 건강해질 수 있으며 생활도 좀 편해진다. 만약 의사로부터 치료만 받으려 하고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면 그럼 그의 병이 낫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물론 의사나 환자나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덕과 업에 따라 생명 중에 모조리 기록되어 세세생생 따라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덕을 쌓고 선을 행하며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고자 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의 행위는 업을 짓는 것이 아주 많은데 만약 그 속의 인과(因果)관계를 모르고 계속해서 저지른다면 생명까지 위태롭게 된다.

 

[ 對중국 단파라디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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