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옥림(徐玉琳)

[SOH] 대기실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는 중후하고 힘이 있어 경사라도 난 것 같아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의 병력(病歷)을 훑어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어 고통스럽다'고 씌어있었다. 그는 중키에 단정한 외모를 지닌 60세 가량의 건강한 남자로 보였다. 그러나 미간(眉間)의 깊은 주름이 그를 우울해 보게 했다.

처음 그는 내 이름을 물으며 크게 웃었다. 잇달아 언제 미국에 왔느냐고 묻고는 또 크게 “하하” 웃었다.  대화중에 그가 그토록 유쾌하게 웃을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내가 진지하게 그를 주시하며 웃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무엇 때문에 치료하러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선생님, 그런 말씀 하지도 마시오!  웃음이 나올 때면  얼굴이 저리고 아픕니다. 눈물이 나고 숨도 차고... 저는 살면서 웃을 만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 병을 앓은 지는 얼마나 되셨죠?” 

“세 살 때 저는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 의사는  21일 동안 30분마다 주사를 놓았죠. 당시 부모님은 제 곁에 없고, 어린 저는   무서워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어요. 그러다 내가 나중에는 그냥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달려오곤 했지요. 사람들은 나의 웃음을 구별하지 못하더군요.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가 내가 정말로 웃고 싶은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기를 원했지요. 간혹 살면서 정말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울음이 나와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중에 그는 “하 하”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던 웃음소리는 “허허”로 바뀌었고 “허허”가 “헤헤”로 변해 듣는 사람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저는 파산해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가족도 없어 외로워요. 어디를 가든 웃음소리 때문에 사람들에게 불쾌한 기억만 남깁니다. 선생님, 이것이 병이 아니란 말입니까?”

"....?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것은 웃음으로 마음(心)이 상(傷)한 사례였는데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병이었다. 그는 단지 마음만 상한 것이 아니라, 기력도 약하고 정신까지도 손상을 입었다. 침을 놓은 후 그는 좀 안정되었고 정상적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부모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곧 웃는 표정을 지었다.

“7살 때 부모님은 서로 상대방에게 총을 겨누고 내가 보는 앞에서 동반자살 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장난치는 줄 알고 옆에서 “하하”웃었어요. 나중에 피가 흐르기에 큰소리로 부르니 대답이 없는 겁니다.”

치료를 끝낸 그가 막 진료소를 떠나려할 때, 대기실에 한 젊은 엄마가 2개월 된 아기를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젊은 엄마는 나를 보더니 미안해하면서 “아기를 돌봐줄 사람을 찾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그의 눈빛이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아기를 봐줄께요. 나는 시간이 많아요. 아기를 안고 이 소파에서 꼼짝도 안하고 기다릴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고맙습니다. 방금 젖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었으니 한동안 잠을 잘 잘 겁니다.” 

그녀는  믿을 수 있냐는 듯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아기를 받아 정중하게 그에게 안기며 말했다.

“이 아이를 어릴 적의 당신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이었다.

나는 그가 자신의 본성(本性)을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잠시 서 있었다. '해맑은 아기를 안고 있노라면, 엄마 품에 안겨있던 그런 감각이 되살아날지도 몰라.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몸을 돌려 나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선생님, 제게는 이 시간이 소중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문을 닫았다.

한 시간 후 진료가 끝난 엄마는 자신의 아기가 사방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며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 주에도 새댁이 내 뒤에 접수하세요. 오늘처럼 아이를 봐드릴 께요. 마음 편히 오셔도 됩니다.”

젊은 엄마는 기뻐하면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예약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멀어져 가는 아이를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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