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클로우이(Chloe)
[SOH] 마크(Mark)는 내가 어려울 때면 늘 아낌없이 나를 도와주던 좋은 친구다. 어느 날 나는 그가 말기 암으로 곧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사는 마크가 일주일 남짓은 버틸 수 있을 거라며 그의 몸에 꽂고 있던 모든 튜브와 링거를 제거했다. 친구들이 달려와 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친척들은 그를 보며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예정된 일주일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숨을 쉬었다. 의료진은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수액 한 방울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의아해했다.
당시 정말 바빴던 나는 매일 전화로 그의 상황만 물어볼 뿐 직접 병원에 찾아가지 못했다. 가끔 그의 가족에게 부탁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부인은 그가 아주 집중해서 듣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느 날 나는 겨우 그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이날은 의료진이 24시간 내에 그가 세상을 떠날 거라고 말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마크는 전혀 낯선 모습이었다. 얼굴은 몹시 수척했고 모양마저 변해 있었다. 그런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의식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내 목소리를 듣더니, “아! 네가 왔구나!”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세상에! 남편은 줄곧 깨어 있었어요! 그는 당신을 기다렸던 거예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조용히 있도록 당부하고 마크에게 물었다.
“마크, 떠날 준비는 됐어?”
“응”
“그런데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어?”
“…….”
잠시 생각하던 마크는 내게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곳에 간 적이 있어. 생명이 끝난 후 가는 곳은 사람마다 달라. 내가 지난번에 간 곳은 햇빛도 어둠도 없고, 영원히 낮과 같은 곳이었어. 소리도 없었어. 단지 공기 중의 미미한 진동이 부드러운 메아리와 같은 음악을 만들었어. 그곳엔 사람이 몇 명 없고, 서로 만나도 말이 필요 없어. 다만 서로 한번 보기만 하는데 잠시 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어. 그곳에 핀 아름다운 꽃은 시들거나 떨어지지도 않고 영원했어. 나는 내가 그런 세상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우연히 길을 잘못 든 것이라 생각했어.”
“내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말소리가 들렸지. 나도 내가 그곳에 머물기에는 덕행(德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 ‘하느님! 저는 지금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지도, 이승으로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제가 갈 길을 일러주세요.’ 그곳에는 시간도 없고 일체는 모두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것이 조물주의 손안에 있으며 그분께서 듣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어.”
나는 손에 땀이 흘렀다. 째깍째깍 울리는 시계 소리가 이곳이 내가 사는 물질 공간임을 일깨워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 다음 어떻게 됐어?” 내가 물었다.
“나는 내 마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으로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끝내고, 무겁게 짓눌려 있던 마음이 해탈되는 날이다.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시간도 더는 나를 속박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의 기로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으며, 이제 진심을 말할 때가 됐다. 나의 이번 생은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되어 하는 말이나 듣는 것은 온통 거짓이었고, 세수를 끝내고 거울 속에서 본 것은 가면이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자신이 마치 분장을 지운 어릿광대처럼 느껴졌다. 내 몸에는 다른 사람들이 묶어 놓은 많은 끈이 있어 어떤 사람이 그 끈을 당기면 나는 어딘지도 모른 채 끌려 다녔다.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생명은 본래 내게 속한 것이며 내가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나는 마음을 어기는 일을 하는데 일분 일초라도 낭비하지 말았어야 했고, 내 자신에게 미안한 일을 하느라 힘을 낭비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너에게 이 말을 들려주는 이유는 네가 나를 수련으로 이끌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 때문이야.”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 했지만 그 진정한 존재를 믿지는 않았어. 그곳에 간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알게 됐어. 잊지 마! 언젠가 네 머리 위에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다닌다면 그게 바로 나야!”
몇 시간 후 그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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