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페이(赵培 시사평론가)
[SOH] 16일은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화인 배제 폭동 15주년에 해당되는 날이다. 중국 웨이보에는 당시의 폭동 사진 게재가 엄격히 제한됐다.
1998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화인 배척 폭동이 발생해, 화인들이 조직적인 학살을 당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만명에 달하는 화인이 사상했고, 대략 1만명의 화인 여성이 강간당했다. 무서운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박해에 직면해, 미국 언론들이 솔선해 미국의 화인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는 등 대량의 보도를 했다. 주인도네시아 미국 영사관은 화인의 난민신청을 받아들였고 대만은 5대의 군용 운송기가 명령을 대기했으며, 해군은 인도네시아 발리섬 수역에서 화인을 귀국시킬 준비를 했다. 대만 외교부는 주대만 인도네시아 대표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때 중공은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외교부장이 ‘불안과 관심’을 나타낼 뿐이었다. 한 네티즌이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에 ‘그때, 중공은 어떻게 하고 있었어?’라고 묻자, ‘힘을 다해,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게 했다’는 답글이 달렸다. 텔레비전 보도도 없었고, 시위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항의도 없었다. 중공 대사관 역시 화인들에게 차가운 태도를 보이자, 화인들은 결국 ‘미국의 개가 되어도 중국인은 되지 않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후에 중공의 ‘우마오당(인터네 댓글 알바)’들은 당시 중공도 화인을 귀국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자료에 따르면, 귀국선에는 대만 여권 소유자와 현지 화인 누구도 타지 않았다.
중공은 1998년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에 자금 원조를 계속하고 있었다. 중국 개발은행에서만 인도네시아에 이미 70억 달러를 융자해줬다. 1999년부터 중공은 인도네시아와 우호 협력을 시작해 지금도 전략적 파트너 관계에 있다. 이것이 웨이보에서 ‘인도네시아 화인 배척 사건’ 15주년을 봉쇄하는 이유이다.
인도네시아가 화인을 배척하게 된 계기는 중공이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중공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산화를 지지했다. 당시 중공이 수출한 연필에는 중국어로 공산주의 슬로건이 쓰여져 있었다. ‘전세계를 해방한다’, ‘문화대혁명 만세’, 등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중공의 테러리스트 양성을 두려워했다. 예를 들면 일본 적군파나 말레이지아 공산당 등 공산주의 테러리스트들이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는 정권 장악과 동시에 화인 제거를 시작해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이중 국적을 폐지했다. 그 때문에, 많은 화교가 중국으로 돌아왔지만, 중공은 그들을 스파이로 처리해 많은 귀국 화교가 비판투쟁을 받았다. 1998년 중공이 ‘인도네시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이 침통한 기념일에 우리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중국인가? 인권의 중국이다. 경제정책 등은 부차적인 것이고, 인권이 ‘입국지본(立國之本)’이 아니면 안된다. 어떠한 집정자가 신뢰할 수 있을까?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유재산의 침해를 막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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