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청현
[SOH] 춘추시대(春秋時代) 중국 초(楚)나라에는 장왕(莊王)이란 왕이 있었다. 부왕으로부터 강성한 국가를 물려받은 탓인지, 왕위에 오르자마자 주변 국가들을 공격해서 수많은 영토를 빼앗았다. 연전연승. 계속되는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어느 날 밤 왕은 신하와 장수를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던 중 한줄기 광풍이 불면서 연회장을 밝히고 있던 촛불이 일순간에 꺼져버렸다. 칠흑같은 어둠이 연회장을 덮었다. 이때 갑자기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술김에 왕이 애지중지하는 첩의 볼에 입술을 댄 것이다. 이것은 사실 왕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신하인지 혹은 장수인지 결코 다시 담을 수 없는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애첩은 범인의 갓끈을 뜯었으니 불을 켜고 범인을 색출하라며 흐느꼈다.
왕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고맙구려. 어느 분인지 과인(寡德之人)이 마련한 잔치를 정말로 흥겹게 여기셨나 보오. 과인의 첩이 지금 괜한 앙탈을 부려 연회를 망치려고 하니 기분이 좋지 않소. 여러 신하와 장수들은 모두 갓끈을 끊어주시오. 그리고 다시 불을 켜고 연회를 계속하도록 합시다.”
훗날 장왕에게도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다.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적병의 추적을 뿌리칠 수 없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장수 하나가 거칠게 말을 몰고 와서 왕을 호위하며 적병과 맞서 싸웠다. 이 장수는 누구일까. 바로 연회가 있던 날 밤 왕의 애첩에게 입술을 댔던 장수였다.
장수는 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을 구한 것일까. 죽음의 위기에 빠진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구해준 현덕(玄德)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절영지회(絶纓之會)라고 알려진 고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존경받고자 한다. 자신이 가진 학력, 돈, 직위 등은 타인으로 하여금 몸을 숙이도록 만든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지 타인의 몸만 가지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 혹은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타인의 마음 아닌가. 마음만 얻으면 몸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덕(德)을 파자(破字)하면 덕(德)은 얻는다는 의미의 득(得)이란 글자와 마음을 의미하는 심(心)이란 글자가 합쳐져 있다.
결국 덕은 타인의 마음을 얻는 능력인 셈이다. 이제 문제는 간단해진다. 사랑이 가장 필요할 때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고스란히 사랑을 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법이다. 마음을 주지 않으면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태를 탓할 것만이 아니라 내가 먼저 떡(德)을 빚어 이웃 간에 나누는 복덕방(福德房)을 개업하는 것이 정다운 복지사회 구현의 선행조건이다.
사실 사회가 불안한 원인은 법률조항의 많고 적음 때문이 아니다. 민족으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바로 한 글자 덕(德)의 결핍임을 분명히 알아야겠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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