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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산책] 성(性)도덕 타락으로 멸망한 3대 문명

디지털뉴스팀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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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세계에는 고대 그리스 문명과 같이 현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눈부시게 발전한 국가와 문명들이 있다. 

그러나 한때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어도 멸망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국가도 여럿 있는데, 중요한 원인은 ‘성(性) 도덕의 타락’이었다. 

■ 고대 바빌론의 난잡한 매춘

3000년 전에 건국된 고대 바빌론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규모와 높은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 문화는 매우 난잡했다.

색을 밝혔던 알렉산더 대왕 조차도 바빌론의 기이한 성 문화에 놀라워 했을 정도였다. 

《성경》에도 바빌론의 타락한 성 문화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특히 신을 모시는 신전은 성 도덕이 추락한 대표적 장소로 꼽혔다. 

바빌론의 여성은 아프로디데 신전에 성 제물로 바쳐져 신이 지켜보는 신전에서 낯선 남자와 성행위를 해야 했다.

신전에 바쳐진 여성들은 남자들에 의해 선택됐는데, 매춘 행위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특이하게도 신전에서 매춘을 한 여성들은 창녀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당시 바빌론의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였지만 사회상으로는 혼전 성관계와 기혼자들의 불륜 등이 범람했다. 

기혼자의 경우 여성은 간통하다 들키면 나체로 물에 빠지는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익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들은 신전 같은 곳에서 손쉽게 매춘을 할 수 있었다.

사회 전반에 이런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에 바빌론 사람들은 국가의 안위와 외부 침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결국 페르시아의 침략에 대항할 힘이 없어 멸망했고, 대다수 왕족들은 포로로 잡혀 죽었다.

■ 이집트 여왕의 문란한 사생활

고대 이집트의 멸망도 같은 이유이다.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러 7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복 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결혼했다.

그녀는 두 남편과 함께 사는 동안 문란한 생활을 했으며 귀족 사이에서도 이런 풍조가 만연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신하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틀레오파트라를 축출하려 했으나 그녀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로마 집정관 출신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유혹해 결혼하고 동맹을 맺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 후임자인 안토니우스의 정부(情婦)가 되어 또 동맹을 맺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총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3명은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1명은 카이사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클레오파트라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남자들을 유혹했지만 결국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한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살했다.

이후 카이사르와 낳은 아이는 처형되고 나머지 아이는 흩어졌으며 고대 이집트는 멸망하고 만다.

■ 간음과 동성애에 빠진 고대 로마

고대 로마 제국도 음란한 풍조와 성 도덕이 극심하게 타락하면서 몰락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저서 《로마 제국 쇠망사》에 따르면 고대 로마에는 230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카라칼라(Caracalla)라는 목욕탕이 있었다.

이 탕은 남녀노소가 함께 혼욕했던 것으로 알려져, 당시 사회 풍조가 얼마나 음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대 로마에는 또한 20만 명의 매춘부가 거리를 행진하는 △매춘부 기념일 △성(性) 기념일이 있었고, 국가가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면서 △동성애자 축제도 열렸다.

상류층에서도 귀족 간 불륜과 무분별한 성적 행위 등이 난무했다. 이런 상황으로 결국 고대 로마에서는 많은 성병과 질병이 창궐했고 불임률도 증가했다.

고대 로마 기록에 따르면 35개의 왕족이 결혼한 후 절반 이상이 자녀가 없었다. 또 아이를 낳더라도 죽거나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 결국 왕실의 대가 끊어지게 된다.

당시 인구는 1세기부터 출산율 저하 영향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로마 제국이 끝날 무렵 인구는 매우 적었,고 노예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외세의 침략도 잦았다.

그러나 로마 왕들은 방탕에 빠져 군대 임무를 게르만족 용병에게 맡겼는데 이들은 점차 힘을 키워 군대를 장악했다.

로마제국은 내부 분쟁으로 395년에 동·서로 분열됐는데 동로마는 독자적으로 발전했지만 서로마는 외부 세력에게 넘어갔다.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틴 제국을 세워 도덕성 회복 정책을 펼치면서 1000년 동안 국가가 지속됐다.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을 구하기 위해 468년 바다로 군대를 파견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서로마는 게르만 이민족에게 점령당해 476년에 멸망했다.

오늘날에도 성해방 사상의 영향으로 매춘, 간통, 동성애, 강간, 소아성애 등 온갖 타락한 성 범죄들이 넘쳐나고 있다. 

역사가들은 오늘날의 성 도덕 타락 현상은 과거 역대 국가들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추락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상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미디어파이


디지털뉴스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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