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20세기 후반 중공은 형제 국가들인 소련, 베트남 등과 어울리기도 하고 서로 전쟁을 일으켜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 진영의 전형적인 내부 투쟁이자 정말로 코믹한 시트콤 그 자체입니다.
1979년 2월 17일 덩샤오핑은 20만 군대를 파견해 베트남에서 자위반격이란 전쟁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불리해지자 중공은 3월 5일부터 철군해서 16일에 중국 국경 내로 철수했습니다.
당시 중국과 베트남 간의 중월(中越) 전쟁은 한 달간 지속되었고 양측은 서로 승리했다고 선전했습니다. 문화혁명 중에 좌파를 지지하느라 중공군은 정치에 몰입해 군사 훈련을 소홀히 했다고 합니다.
정치적 박해로 많은 장병들이 죽었고 그에 따라 전투력이 떨어졌습니다. 반면 베트남군은 지속적인 전쟁을 치러 경험이 풍부했고 당시 미국을 물리친 직후라 사기가 아주 높았습니다.
중공은 이전에 장기간 베트남 공산당을 지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우수한 장비를 제공해 무장 시켰고 낙후한 무기는 자신에게 남긴데다 베트남 공산당은 소련과 미군이 남긴 우수한 무기까지 지니고 있어 장비면에서도 우세했습니다.
베트남 북부는 산세가 험해 지키기는 쉬워도 공격하긴 어려운 지역이어서 중공군 사망자의 80%는 베트남군의 포화에 숨진 것이라고 합니다. 중공군은 인해 전술을 사용해 손실이 많았습니다.
소련과 베트남이 연합해 중공을 향해 남북에서 협공하자 중공은 전략적으로 수세에 몰렸으며 결국은 소련의 최후통첩에 중공은 철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과 베트남 전쟁에서 중공은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이 전쟁이 발생한 원인은 중공의 지시와 종용 하에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장악한 후 극도의 독재를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크메르루주는 불과 4년 동안 전 국민의 4분의 1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을 학살했고 이중에는 많은 화교와 베트남 교포들도 포함됩니다.
이를 보다 못한 베트남 공산당이 자국 교포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캄보디아에 군대를 보내 캄보디아 국민들을 구했습니다.
중공이 베트남을 공격한 이유는 베트남에 보복하는 동시에 크메르루주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캄보디아를 보면 베트남이 지지한 정권은 여전히 집권하고 있으며 중공이 지지했던 크메르루주는 일찍이 와해되었고 그 잔당들은 자수하거나 체포되어 국제재판소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무수한 젊은 생명들이 중공의 총알받이가 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중월 전쟁에서 중공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패배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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