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복숭아와 오얏은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자연히 작은 길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즉, 사람이 인덕(人德)이 있으면 자연히 그에게로 명망이 모인다는 뜻으로 쓰는 비유입니다.
사마천이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서 장군 이광(李廣)의 인간됨을 칭송하여 쓴 말입니다.
한(漢)나라 때의 장군, 이광은 청렴한 인물이며 샘을 발견하면 부하를 먼저 먹였고 식사도 하사관과 함께 하여 전원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자신의 몫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광은 그의 집안 대대로 활의 명수였는데 그 역시 활의 명수였습니다.
어느 날 사냥하러 나갔다가 호랑이를 발견하고 화살을 겨냥해 쏘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바위였으며 이광의 화살은 그 돌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 후 이광은 여러 번 바위에 화살을 발사했지만 한 번도 박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양자운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했는데 자운은 '지성이면 금석도 열린다. 성심성의로 사물을 행하면 바위도 관통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이지요.
이광은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武帝)를 거치며 계속 공을 세웠는데 늘 부하들에게 상을 나누어 주고 병사들과 어울렸으므로 집에는 재산이 없었습니다. 대신 부하들에게 큰 신뢰를 얻고 있었지요.
그는 흉노족 침입자들과 70여 차례나 싸워 여러 번 전공을 세운 용장이었지만 조정에서는 그를 중용하지 않고 배척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119년, 무제는 흉노 토벌을 계획했고 60여세의 노장 이광도 간청 끝에 출전을 하게 되어 무제는 그를 전장군(前將軍)으로 삼았습니다.
동군(東軍)에 배치된 이광은 우장군 조이기(趙食其)와 함께 동쪽 길로 진군했으나 도중에 길을 잃어 대장군 위청(衛靑)의 주력군과 합류하라는 날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위청은 장리(長吏)를 보내 문책했습니다.
이광은 이에 굴욕을 느끼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이광의 군사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모두 소리 내어 울었고 백성들도 그 소식을 듣고는 그를 아는 자나 모르는 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전기를 쓰고 난 뒤 사마천은 그 끝에 이렇게 평했습니다.
'옛말에 그 한 몸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할 수 있으며 그 몸이 올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명령한다 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이 장군과 같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나는 그를 본적이 있다. 순박한 시골사람 같아 보이고 말은 눌변이었다. 그가 죽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알거나 모르거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그를 극진히 애도했다. 그의 성실한 마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속담에 ‘복숭아나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나무 아래에는 저절로 작은 길이 생긴다’고 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일은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무가 크면 그 밑의 큰 그늘에 많은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고 꽃에 꿀이 많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벌들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복숭아나 오얏이 ‘나 여기 있소’ 하고 소리치는 것도 아닌데 그 향기로움에 그 밑으로 사람들이 지나 다니게 되어 오솔길이 생기는 것이지요.
사람을 모으는 넉넉한 인품은 마치 향기와도 같아서 주변으로 퍼집니다.
좋은 향기가 아닌데도 사람을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쓰레기통에 파리떼가 꼬이듯 더러운 쓰레기 냄새를 피웠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내 주위에 정다운 오솔길이 날지 오물이 흐르는 쓰레기길이 날지 반성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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