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해 버린다는 뜻으로, 이는 좋은 말을 듣고 나서 마음에 간직한 후 실천에 옮기지 않고 그대로 길에서 흘려버리는 폐단을 지적한 말입니다.
논어(論語)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을 버리는 것이다(子曰 道廳而塗說 德之棄也)’
앞의 길(道)에서 들은 좋은 말(道廳)을 마음에 간직해서 자기 수양의 길잡이로 하지 않고, 뒤의 길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塗說) 것은 스스로 그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선인(先人)들의 훌륭한 말과 행실을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덕을 기르는데 쓰지 못하고 길에서 듣고 길에서 흘려버린다면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배움은 이처럼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때가 가치가 있습니다. 좋은 말(善言)은 전부 마음에 간직해서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겠지요.
공자가 말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한 것도 배움(學)과 실천(習)을 함께 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자신의 덕을 함양하는데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배움(學)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자(荀子) ‘권학(勸學)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소인(小人)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곧 입으로 빠져나가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입과 귀 사이, 네 치의 길이만 통과할 뿐이니 어찌 7척의 몸을 미화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수양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늘 날 사람들은 배운 것을 곧 남에게 말해 버리고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군자(君子)의 학문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반하여, 소인의 학문은 도리어 사람을 망친다. 그래서 묻지도 않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만다. 이것을 듣기 싫다 하고,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라고 한다. 어느 것도 좋지 않다. 진정한 군자란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고 물으면 묻는 것만을 대답한다’라고 말 많음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상이거나 오른쪽에서 듣고 왼쪽으로 전하는 정보통들이 많은데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가운데 말은 점점 날개를 달아 말은 처음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때문에 말이 많은 사람의 깊이 없음을 경계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이 배우고 들었다 해도 생각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공부는 곧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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