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부마(駙馬)는 옛날 황제나 임금의 사위, 즉, 공주의 남편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황제의 사위를 하필 말과 관련이 있는 부마라고 했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민간에서 전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해 최초의 중앙집권국가를 세웠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을 황제(皇帝)라 칭하고 늘 각지를 순행하며 위엄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랑사(博浪沙, 지금의 하남성 남양)에서 장량(張良)의 사주를 받은 무사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무사의 화살은 진시황이 탄 수레가 아니라 수행하던 부거(副車, 예비수레)를 맞혔습니다. 이 일로 크게 놀란 진시황은 각지를 순행할 때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많은 부거를 배치하거나, 남의 이목을 속이기 위해 황제가 부거에 탄 것처럼 꾸미기도 했습니다. 이후 역대 제왕들이 진시황의 예를 쫓아 순행할 때 자신의 대역을 내세워 부거에 태웠는데 주로 사위를 내세웠다고 합니다.
사위는 황실의 가족이라 황제의 위의(威儀)와 존엄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의의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사위는 종친이 아니므로 희생양으로 삼았던 거지요. 그 후 사람들은 황제의 사위를 부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晉)나라 때 간보(干寶)가 편찬한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중국의 농서(지금의 간쑤성)에 사는 신도탁(辛道度)이라는 젊은이가 학문이 뛰어난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는 도중 산 중에서 날이 저물고 말았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워진 산속에서 길을 잃은 그는 기적처럼 빛나는 불빛을 발견하고 무작정 그 곳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를 맞이한 하녀는 오래 전부터 “마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는 이상한 말을 하면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방에는 마님은 없었고 잔치 상처럼 잘 차려진 밥상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성장을 한 여주인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손수 술을 따르며 자신은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공주로서 조(曹)나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23년 동안 혼자 지내며 오늘을 기다려왔으니 부부의 인연을 맺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신도탁은 딱 잘라 거절했으나 그녀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아침햇살에 신도탁이 눈을 떴을 때 집은 온데간데없고 자신은 잡초가 무성한 산소 앞에 금 베개를 베고 누워있었습니다. 이후 신도탁은 여비가 떨어져 금 베개를 팔려고 하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왕비의 행렬과 마주치게 되어 왕비가 금 베개를 발견하고는 그를 잡아와 문초하였습니다.
신도탁이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이야기하니 왕비는 “금 베개는 공주를 시집보낼 때 넣어준 것이다. 죽은 지 23년이 지났는데도 산 사람과 부부의 인연을 맺으니 당신이야말로 진짜 내 사위이다. 내 그대를 부마도위(駙馬都尉)에 임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부마는 원래 천자가 타는 부거를 끄는 말이라는 뜻이며, 그 말을 맡아 보는 관리를 부마도위라고 합니다. 그 후 부마도위의 봉록이 재상에 버금가자 이후부터는 오직 천자의 사위에게 부여되는 벼슬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56년 11월. 고구려 중천왕(中川王)이 명림홀도(明臨笏覩)를 사위로 삼으면서 이 칭호를 준 것이 기록상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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