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나이원(胡乃文 중의사)
[SOH] 고대의 명의(名醫)는 모두 신의(神醫)라 불려졌는데 사기(史記)의 ‘편작(扁鵲) 창공열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편작이 제(齊)나라에 머물 때 그는 환공(桓公)에게 피부병이 있다며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의원이 이익을 탐해 병도 없는 사람을 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며 편작을 비난했습니다.
닷새 후 편작은 환공을 다시 찾아가 ‘왕께서는 혈맥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지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환공은 문을 “쾅” 닫고 들어갔습니다.
닷새 후 편작은 또 환공을 찾아가 좀 더 심각한 말투로 장위(腸胃)에 병이 있으니 치료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환공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편작을 돌려보냈지요. 그리고 닷새가 지나자 환공을 찾은 편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났습니다. 왜냐하면 환공의 병이 이미 너무 깊어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결국 환공은 병이 골수까지 깊어져 사망했습니다.
동한(東漢)의 장중경(張仲景)은 조정에서 같이 근무하던 20대의 시중(侍中) 왕중선(王仲宣)에게 마흔살이 되면 중병에 걸려 눈썹이 빠지다가 반년 후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면서 ‘오석탕(五石湯)’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왕중선은 약을 받아만 두고, 약을 먹었노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며칠 후 장중경은 왕중선의 안색을 살피며 ‘안색을 보아하니 탕약을 복용하지 않았군. 그대는 어찌하여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가’라고 탄식했습니다. 결국 그는 20년 후 눈썹이 빠지며 187일 만에 죽었지요. 이 내용은 ‘침구갑을경(針灸甲乙經) 서문(序)’에 나옵니다.
또 등처중(鄧處中)의 ‘중장경(中藏經) 서문(序)’에는 지극한 정성으로 신선의 처방전을 얻은 화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화타(華佗)는 방서(方書)를 즐겨보며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길 좋아했습니다. 그는 성품이 관대하며 욕심이 없고, 명산대천(名山大川)을 두루 다니며 고인(高人)을 만났습니다.
어느날 화타는 공의산(公宜山)에 올랐는데, 어느 동굴 속에서 병 치료법을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화타는 그 이야기가 범상치 않아 몰래 엿들었습니다. 그때 ‘화타가 이곳에 있으니 그에게 의술을 맡겨야겠군’이라고 한 노인이 말하자, 다른 노인이 ‘그는 탐(貪)하는 성품이 있어 생명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터인데 어찌 맡길 수 있는가?’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화타는 동굴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가 두 노인에게 절을 올리며 ‘두 분 현자께서 방술(方術)에 대해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도(道)를 배우고 싶었는데, 어리석은 저를 깨닫게 해주신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윗자리에 앉은 노인은 ‘의술을 전해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네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후에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으며, 재물을 탐하지 않고, 노인과 어린이를 불쌍히 여긴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화타는 절을 두 번 올리고 성현의 말씀을 명심하여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두 노인은 웃으면서 동굴의 동쪽을 가리키며 ‘바위 위에 있는 상자 속에 책이 있으니 속히 가져가거라. 세인들에게는 마땅히 비밀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화타가 책을 얻은 후 고개를 돌려보니 두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후에 화타는 60세가 채 되지 않아 위(魏)나라에서 도륙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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