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손오공, 삼장법사의 제자가 되다-24회
[SOH] 이런 시가 있지요.
부처는 마음이요 마음 또한 부처라.
부처와 마음은 종래 모두 비어 있거니
비어 있는 그 마음자리도 없는 줄 안다면
그대는 필연코 진여를 깨달은 법신이리.
진여를 깨달은 법신은 형체가 없어
하나의 둥근 빛발에 만상을 포함하네.
형체 없는 물체야말로 진짜 물체요
형상 없는 형상이 바로 실상이듯이
빛깔 없고 비지 않음은 안 빈 것이 아니고
가지도 오지도 않음은 멈춤이 아니라네.
다르지도 같지도 않다면 유무가 없고
취사하기 어렵다면 바라기 또한 어려울지니
안팎의 신령한 빛발 간 데마다 고를 제
부처님 나라는 한 알의 모래알 속에 있네.
한 알의 모래알이 대천세계 이듯이
한 마음속의 일만 법은 모두 같다네.
할 바를 알 적엔 비결도 소용없고
물들지도 막히지도 않으면 결백해지리.
천만 가지 선과 악을 가림 없이 구제하니
그 이름 다름 아닌 나무석가여래라네.
지난 시간 삼장은 태백금성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홀몸으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나절이나 산속을 헤맸지만 인가하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배는 고파오고 산길은 갈수록 험해지는데, 별안간 사나운 범 두 마리가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고 서서 사납게 으르렁 거리는가 하면 뒤로는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방에 맹수와 독충들이 우굴거리고 말마저 허리가 결리고 다리에 쥐가 올라 똥오줌을 내갈기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삼장은 몸 둘 곳조차 없는 곤경에 빠져 그저 죽을 때만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삼장은 역시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으로 별안간 범이고 뱀이고 모든 짐승들이 무엇에 놀라기라도 한 듯 삽시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삼장이 뜻하지 않는 변화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저쪽 산굽이로부터 한 사나이가 손에는 작살을 쥐고 허리에는 활과 전통을 차고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삼장 : “대왕님, 사람 좀 살려 주십시오!”
사냥꾼 : “스님! 두려워 마십시오! 이 산속에 사는 사냥꾼으로 유백흠이라 합니다. 방금 식용으로 쓸 범 두 마리를 쫓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스님을 만나게 되었군요.”
삼장은 유백흠의 도움으로 위험을 벗어나 하룻밤을 그 집에서 보내고 다음 날 유백흠의 보호를 받으며 다시 푸른 하늘을 떠이고 서 있는 험준한 산길에 올랐습니다. 산중턱에 이르자 백흠은 길옆에 내려서서 삼장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유백흠 : “스님! 이제부터는 혼자서 가십시요. 이 산은 원래 양계산이라 하는데 동쪽 절반은 우리 당나라의 영토에 속하지만 서쪽 절반은 타타르 땅이라 저쪽 맹수들은 내 손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소인은 여기서 돌아가겠습니다.”
삼장 : “이보게 수고스럽지만 그렇더라도 조금만 더 데려다 주면 어떻겠소!”
삼장이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백흠의 옷자락을 부여잡는데 별안간 산 아래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오공 : “아 스승님이 오셨다! 스승님이 오셨어! 스승님 스승님 오셨습니까?”
삼장과 백흠이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또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오공 : “스승님이 오셨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이번엔 백흠의 머슴이 참견했습니다.
머슴 : “주인님 지금 외치고 있는 것은 저 산 밑의 돌 상자 속에 깔려 있는 늙은 원숭이가 틀림없습니다.”
백흠 : “음, 그래, 그 놈이야. 그 놈이 틀림없어.”
삼장: “아니, 무슨 원숭이라뇨?”
백흠 : “이 산은 원래 오행산이었는데 우리 당나라 천자님께서 이곳을 평정하셨을 때 양계산이라 이름을 고치셨던 거요.”
머슴 : “그 들려오는 얘기로는 왕망이 한나라를 빼앗던 무렵 하늘이 이 산을 내려다가 한 마리의 신령스러운 원숭이를 눌러 놓았는데 그 원숭이는 더위나 추위도 겁 겁내지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는 거요. 다만 토지신이 곁을 지키고 있다가 그놈이 배고파하면 철환을 먹이고 목말라하면 구릿물을 먹인다나 봐요. 그런대도 지금껏 살아 있다니! 방금 외친 것도 틀림없이 그놈일 거요. 스님 스님 겁내실 것 없이 우리 함께 산을 내려가 봅시다.”
산을 내려가니 과연 돌 상자 속에 원숭이 한 마리가 갇혀 있었습니다. 원숭이는 머리를 내밀고 손을 밖으로 뻗쳐 삼장을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손오공 : “스승님!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어서 저를 끌어내 주십시오. 제가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 드리겠습니다.”
삼장이 원숭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입은 뾰족 볼은 홀쪽 화안금정 이글이글 머리 위에 이끼 돋고
귓구멍에 정초자라 귀밑머리 잔디 같고 구레나룻 사초 같네.
양미간에 때가 끼고 콧구멍에 흙이 쌓여 손과 발이 투박하고
얼굴 주제 맹랑쿠나 눈은 반겨 뒤룩뒤룩 혀는 좋아 날름날름
말소리는 새어나도 몸은 갇혀 꼼짝 않네 오백 년 전 돌원숭이
천벌 받아 이 꼴인데 오늘에야 기한되어 스승 만나 풀려나리.
담대한 사람인 백흠은 저벅저벅 원숭이 앞으로 다가가 귀밑에 자란 풀과 턱밑에 돋아난 사초를 뽑아 주었습니다.
백흠 : “너 무슨 할 말이 있는 거냐?”
손오공 : “댁과 할 말은 없소. 저 스승님을 이리로 좀 보내 주시오.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러오.”
삼장 : “나에게 무얼 묻고 싶다는 거냐?”
손오공 : “당신이 동녘 땅 당나라 천자님의 심부름으로 서천에 경을 가지러 가는 분이십니까?”
삼장 : “그렇다만, 그건 왜 묻는 거냐?”
손오공 : “저는 오백 년 전에 천궁을 떠들썩하게 한 제천대성입니다. 하늘을 능멸한 죄를 저질러 부처님께서 여기에 눌러 놓았지요. 지난번 관음보살님이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불경을 가지고 갈 사람을 찾아 동쪽으로 간다고 하여 제가 구해달라고 사정을 했지요. 그러자 관음보살님께서는 ‘넌 다시는 무도한 짓을 그만두고 불문에 귀의하라. 그리고 경을 가지러 가는 사람을 성심으로 보호해 서천으로 가서 부처님께 배례하라. 공이 이루어진 뒤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로 전 밤낮으로 가슴 졸이며 스승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부디 저를 구해 스승님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삼장 : “너에게 그와 같은 착한 마음이 있고 또 네가 보살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문에 들어서기를 원한다면 그건 갸륵한 일이다. 그러나 내 손엔 도끼도 끌도 없는데 어떻게 너를 구해 낼 수 있겠느냐?”
손오공: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저를 구해 줄 마음만 있으시다면, 이 산꼭대기에 올라가셔서 여래님이 붙여놓은 금문자 쪽지만 떼어 주시면 저는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있습니다.”
삼장 : “이보게 백흠, 미안하지만 산꼭대기까지 함께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백흠 : “그야 어렵지 않지만, 그게 참말인지 미덥지가 않구려.”
손오공 : “참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떻게 스승님이 경을 가지러 가는지 알았겠습니까?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니 믿어 주십시요!”
백흠이 별다른 도리가 없어 삼장을 부축해 산꼭대기에 올라서니 과연 금빛 찬란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네모진 큰 바위에 ‘암 · 마 · 니 · 팔 · 미 · 음’ 이란 여섯 개의 금빛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삼장은 바위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금문자를 들여다보며 연거푸 몇 차례 배례를 하고는 서쪽을 향해 축원을 했습니다.
삼장 : “불문의 제자 진현장은 천자님의 뜻을 받들고 경을 가지러 가는 길입니다. 만일 제가 저 원숭이와 사제의 인연이 있다면 이 글쪽지가 떨어지고 원숭이가 구출되어 영산으로 함께 갈 수 있도록 해 주소서. 하지만 만약 사제의 인연이 없다면 저놈은 사나운 괴물로서 저를 속여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니 아예 떨어지지 않도록 하소서.”
삼장이 축원을 마치고 나서 글쪽지를 조심조심 뜯어내자 갑자기 한 자락의 향기로운 바람이 일어나 글쪽지를 공중으로 감아올리며 공중으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왔습니다.
신장들 : “우리는 그동안 손대성을 감시하고 있던 신장들이오. 오늘로 대성의 고난이 끝났기에 돌아가 여래님을 뵙고 이 쪽지를 가져다 바치겠소.”
삼장과 백흠은 깜짝 놀라 하늘을 우러러 경의를 표하고 산을 내려와 돌상자 앞으로 갔습니다.
삼장 : “자, 이제 쪽지를 떼 버렸으니 나오도록 하라.”
손오공 : “스승님, 저쪽으로 비켜 서 계십시오. 그래야 제가 나가기에 편리하고 스승님도 놀라시지 않을 겁니다.”
삼장과 백흠이 동쪽으로 6, 7리쯤 물러섰을 때 갑자기 ‘꽈릉!’ 산악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화들짝 놀라는 사이 어느새 발가벗은 알몸뚱이의 원숭이가 삼장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자 우리의 주인공 손오공이 오백 년 동안의 옥살이를 끝내고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손오공은 사제 인연을 잘 지킬 수 있을까요?
--2023년 9월 8일 수정--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