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삼장이 재난에서 벗어나다-53회
망상을 부러 없애지 못하리니 구태여 진여(眞如)를 바라서 무엇하랴? 근원의 자성은 부처 앞에서 닦나니 미혹과 깨달음이 어찌 앞뒤에 있으랴? 깨닫는 순간에 올바름이 이루어지고 미혹에 빠지면 만겁을 헤매게 되리니 만일 한마음 한뜻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항사(恒沙)의 죄업은 깡그리 없어지리라.
팔계와 오정은 황포와 수십 합을 싸웠지만 여전히 승부가 나질 않았습니다. 황포의 솜씨로 말하자면 팔계와 오정뿐 아니라 20명이 더 달려들어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만, 삼장이 아직 죽어야할 운명이 아닌 데다 호법신들이 보호해주고 있었기에 황포는 좀처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삼장은 동굴 속에 묶여 제자들을 생각하며 구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삼장 : “오능아. 넌 대체 어디서 공양 밥을 얻어먹고 있는 게냐? 오정이 넌 또 어딜 찾아 헤매고 있느냐? 내 이리 요괴 손에 잡혀 고생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기는 한 게냐?
이때, 안에서 부인 하나가 나오더니 삼장에게 물었습니다.
마왕 부인 : “장로님! 당신은 어디서 오신 분이세요? 왜 이런 곳에 묶여 있는 거예요?”
삼장 : “보살님, 내 이런 곳에 찾아오게 된 건 아마 죽어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 더 물어볼 거 없이 나를 잡아먹으려거든 어서 잡아먹도록 하시오.”
부인 : “전 사람을 잡아먹는 마귀가 아니에요, 사실 전 보상국 국왕의 셋째 딸인데 달구경을 나왔다 그만 요괴의 광풍에 채여 이곳에서 살게 된지 어언 13년, 갇혀 사는 이 사실을 알릴 길이 없었습니다. ”
삼장이 잡힌 사연을 듣게 된 부인은 삼장에게 편지 한 통을 써 줄 테니 자신의 부모님께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싸우다 잠시 휴전 중인 남편 황포를 불러 꿈 얘기를 하며 삼장과 두 제자를 놓아달라 청하였습니다.
황포 : “이봐, 저팔계! 이리 좀 오너라! 난 네가 무서워 싸움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내 마누라의 얼굴을 봐서 너희 스승을 용서해 주었다. 뒷문 쪽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니들 갈 길을 가거라! 또다시 찾아와 시끄럽게 했다간 내 절대로 용서치 않을 테다.”
그 길로 팔계와 오정은 뒷문으로 가 삼장을 부축해 말에 태우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을 걸었을까? 눈앞에 큰 성곽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길은 아득히 멀어도 풍물은 풍요하구나. 준험한 산줄기 병풍인 양 둘러섰고 기름진 논밭엔 오곡이 무르익었는데 성곽 안에는 인가들이 평화롭게 들어앉았네. 아리따운 아가씨들 모습은 금원에 어른대고 늠름한 공자들 자태는 네거리에 오락가락, 실로 화류의 골목이요 노래의 다락인데 봄바람은 낙양교를 놓치지 않네. 당나라 대국의 고승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보상국 국왕은 반색을 하며 안으로 맞아들였습니다. 무도삼호의 예를 올리는 삼장의 늠름하고도 예의바른 모습에 양옆에 서있던 문무백관들-은 모두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국왕 : “장로! 무슨 일로 우리나라에 다 오셨소?”
삼장 : “소승은 당나라의 불제자로서 천자님의 어명을 받들고 서방으로 경을 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떠날 때 천자님의 문첩을 갖고 떠났는데 폐하의 나라를 지나게 되어 문첩에 인을 받고자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겁니다.”
국왕은 당나라 천자의 문첩을 보고 옥새를 꺼내 수결을 해 주었습니다.
삼장 : “저 폐하. 실은 제가 폐하를 뵙고자 한 것은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삼장은 국왕의 셋째공주와의 인연을 설명하고 편지를 전해주었습니다. 편지봉투에 ‘평안’이란 두 글자가 씌어 있는 것을 본 국왕은 가슴이 뭉클해지고 손발이 떨려 겉봉조차 제대로 뜯지 못했습니다.
국왕 : “13년 전 공주를 잃고 궁녀와 내시 그리고 문무백관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모르오.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행방을 전혀 알 길 없더니만 고약한 요괴에게 붙잡혀가 있을 줄이야. 너무나 마음이 상해 눈물이 절로 흐르는구려! 여봐라! 누가 짐을 위해 요괴를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오겠느냐?”
신하 : “폐하! 신들은 모두 범인으로 병법에는 더러 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세를 벌여 나라를 지키는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요괴는 구름과 안개를 탈 수 있는 놈이어서 놈의 얼굴조차 바로 볼 수가 없는 형편이니 어찌 공주님을 구해올 수 있겠습니까? 도가 높으면 용과 범이 부복하고 덕이 많으면 귀신과 도깨비도 공경한다고 했듯이 이 성승에게는 반드시 요괴를 항복시킬 술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장로에게 요괴를 처치해 달라고 하심이 어떠실는지요!”
삼장은 황급히 두 손을 맞잡고 아뢰었습니다.
삼장 : “폐하. 소승이 염불이라면 알고 있사오나 요괴를 항복시킨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사실 제게는 두 제자가 있어 오늘날까지 소승을 보호해 왔습니다. 하오나 그 둘의 모습이 하도 추해 혹여 놀라시게 될까봐 감히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국왕 :“하하하 장로가 이미 말을 해주었으니 그들을 보고 놀랄 일은 덜었군요. 어서 그들을 데려오세요.”
하지만 궁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보고 국왕은 간담이 서늘해지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용상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국왕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국왕 : “어느 분이 요괴를 잘 항복시키시오?”
팔계 : “물론 접니다용.”
국왕 : “어떤 방법으로 요괴를 항복시킬 테요?”
팔계 : “난 둔갑술도 쓸 줄 알고 이 갈퀴로 스승님을 보호해 오고 있었소.”
국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어주를 내오도록 하였습니다,
국왕 : “장로, 이 한잔은 짐을 위해 수고해 달라는 의미요. 요괴를 잡고 공주를 구해주면 그때 가 다시 큰 주연을 베풀고 천금으로 사례할 테요. 구해주시오. 내 딸을…”
팔계 : “스승님, 이 술은 마땅히 스승님부터 드셔야 옳겠지만 국왕께서 제게 하사하신 것이니 제가 먼저 마시고 기운을 내 요괴를 처치하도록 하겠습니다. ”
단숨에 꿀꺽 잔을 비운 다음 새로 한 잔 부어 삼장에게 권하자 삼장은 그것을 오정에게 주었습니다. 오정이 그 잔을 받아드는데 팔계는 어느새 발아래에 구름을 일으켜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 뒤를 오정이 따랐습니다.
졸개들 : “대왕님, 큰일 났습니다. 주둥이가 뾰족한 중놈과 얼굴이 시커먼 중놈이 또 와서 문을 부수고 있습니다.”
마왕 : “뭐라? 내 제 놈들의 스승을 놓아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또 찾아와 문을 부수는 거란 말이냐?”
그러고는 급히 투구와 갑옷으로 몸을 싼 뒤 강철 칼을 뽑아들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마왕 : “이놈들아, 왜 또 찾아와 문을 부수고 난리치는 게냐?”
팔계 : “너 이 고얀 놈아, 정말 훌륭한 짓을 했더구나.”
마왕 :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이냐?”
팔계 : “ 네놈이 보상국 셋째 공주를 납치해 아내로 삼은 지 13년이나 되었다지? 이젠 돌려보낼 때도 되지 않았느냐? 잔말 말고 냉큼 안에 들어가 포승을 내다 스스로 결박을 지어라. 공연히 나까지 손대게 할 것 없이 말이다.”
마왕은 이 소리를 듣고 천둥같이 화를 냈습니다. 강철 같은 어금니를 으드득 소리를 내고 두 눈은 화등잔 같이 이글이글 타올랐습니다. 마왕이 칼을 들어 팔계머리를 내리찍자 팔계는 갈퀴를 휘둘러 마주쳤습니다. 오정도 뒤따라 보장을 들고 팔계를 도왔지만 이번 싸움은 지난번과 달랐습니다. 호법신들이 삼장을 지키기 위해 팔계와 오정을 도와주었던 첫 번째와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싸우길 수차례, 팔계는 견디다 못해 오정을 불렀습니다.
팔계 : “오정아, 네가 잠시 이놈을 맡아다오. 난 소피를 좀 보고 올 테다.”
그런 다음 팔계는 오정이 어찌되든 말든 도망을 쳐, 풀 덤불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이마에 멍이 들고 얼굴이 가시덤불에 찢겨 피가 흘렀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그저 누워 귀를 곧추 세우고는 무슨 소리가 나는가에만 신경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마왕은 팔계가 도망친 것을 보고 오정을 덮쳤습니다. 오정은 미처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마왕에게 붙잡혀 동굴 속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팔계와 오정은 과연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2024년 3월 23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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