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정산에서 공조가 소식을 미리 알려주다-57회
[SOH]
다시금 손오공을 얻게 된 삼장은 제자들과 하나가 되어 계속 서쪽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습니다. 여행을 거듭하는 동안 또다시 봄은 소리 없이 다가왔습니다. 한창 봄 경치에 취해 걷고 있는데 문득 높은 산 하나가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삼장 : “허허. 얘들아, 산이 이리도 험준한 걸로 보아 야수들이 없진 않을듯 싶구나, 모두 조심들 해야겠다.”
오공 : “스승님, 어찌 출가한 몸으로 속인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언젠가 오소화상이 들려주던 <심경>을 잊으셨는지요?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가 없으며 모든 뒤바뀜과 몽상도 없으리라는 경문 말입니다. 다만 마음의 때를 씻고 귓가의 먼지를 떨어버린다면 그 어떤 역경에서도 벗어나 인간 이상의 인간이 될 것입니다. 아무 염려마시고 모든 일은 이 오공에게 맡겨 두십시오.”
삼장 : “나의 심정을 한번 들어보겠느냐.
성지를 받들고 장안성 떠나 부처님 찾아 서쪽으로 가고 가네.
사리국에 금빛 불상 눈부시고 부도탑에 옥호가 빛나건만
천하의 강물 수없이 건너고 온 세상 산악들을 넘고 넘었네.
걸음걸음 첩첩한 연파뿐이니 언제 가면 이 몸이 한가로우리?”
오공 : “하하하, 스승님. 스승님께서 한가롭길 바라신다면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공과가 이루어진 뒤에는 모든 인연이 다 끊어지고 모든 법도가 다 비게 되는 거니까요. 그때면 몸도 한가롭게 되실 게 아닙니까?”
삼장은 오공의 말에 마음이 퍽 개운해졌습니다. 그들은 말을 몰아 산길을 더듬어 올라갔습니다. 삼장이 산세를 둘러보는데 저쪽 풀이 우거진 비탈에 나무꾼 한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나무꾼 : “여보시오, 장로님! 잠깐 걸음을 멈춰 주슈. 이 산속에는 무서운 요괴가 살고 있는데 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잡아먹는답니다.”
삼장 : (몸을 떨며) “너희들은 저 나무꾼이 하는 소릴 들었느냐?”
오공 : “스승님 안심하십시오. 제가 가서 자세히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노형! 안녕하시오?”
나무꾼 : “스님들은 무슨 일로 이런 곳에 오신 거요?”
오공 : “우린 동녘 땅에서 천축으로 경을 가지러 떠난 사람들이오. 저기 말 위에 앉아 있는 분이 나의 스승님이신데 담이 몹시 작답니다. 방금 노형의 말을 들으니 이곳에 굉장한 마물이 있는가 본데 그에 관한 정보를 좀 주시구려, 내 산신령과 토지신에게 명령해 그놈을 이 산에서 쫓아내도록 할 테니까.”
나무꾼 : “알고 보니 당신 머리가 좀 돌았구만. 어찌 그 요물을 쫓아 버리겠다는 거요?”
오공 : “혹시 노형 그놈의 위풍만 추어올리며 우리를 못 가게 말리는 걸 보니 무슨 친인척간이라도 되는 모양이구려.”
나무꾼 : “하 나 원 참, 이 스님 정말로 엉터리로구만! 난 호의로 당신들에게 형편을 알려준 거요. 이곳을 지나더라도 조심들 하란 말이오. 난 그 요물이 어디 사는지 모르고 또 내가 혹여 알아서 알려준대도 무슨 수로 이곳에서 쫓아내며 어디로 쫓아낸다는 거요?”
오공 : “그놈이 하늘에서 내려온 요물이면 옥제한테로 보내고, 땅 밑에서 솟아났으면 지옥으로, 서쪽에서 왔다면 부처님께, 동쪽에서 왔다면 성신한테, 북방에서 왔다면 진무에게, 남방에서 왔다면 화덕에게 알릴 테요. 한마디로 말해 어디나 다 이 오공이 아는 분이 있기에 문첩 한 장이면 그만인 거요.”
나무꾼 : “보아하니 구름을 타고 여러 곳을 다니며 법술 같은 걸 더러 배운 것 같소만 여기 괴물은 막아내지 못할 거요. 이 산은 너비가 6백여 리나 되는 평정산이라고 하오. 산속에는 연화동이란 동굴이 하나 있고 그 동굴에는 두 마왕이 살고 있는데 당나라 중의 얼굴을 그려놓고 나타나기만 하면 잡아먹을 생각뿐이란 말이오.”
오공 : “우리가 바로 그 당나라에서 온 사람이오.”
나무꾼 : “어허, 정말 큰일이로군요. 그놈은 반드시 당신들을 잡아먹으려 들거요.”
오공 : “그런데 우릴 어떤 방법으로 잡아먹으려나? 머리부터 먹으려나? 발쪽부터 먹으려나?”
나무꾼 : “이보슈 스님, 그놈들이 언제 그리 늑장부리며 먹겠소? 붙잡기 무섭게 시루 속에 집어넣고 쪄서 한입에 삼켜버릴 텐데.”
오공 : “그렇다면 더욱 좋구먼, 아픈 줄은 모를 테니, 단지 시루 속이라 좀 숨이 막히겠는걸!”
나무꾼 : “스님 너무 입으로만 재지 마쇼.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 보물이 있는데 신통력이 이만저만 아니라오. 당승을 보호해 이곳을 지나려면 까무러칠 정도의 고초를 겪어야 할게요.”
오공 : “우린 일 년에 7-8백번은 기절해오던 차니 그런 것쯤은 걱정도 하지 마시오.”
오공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나무꾼의 친절을 뿌리치고 삼장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오공 : “스승님. 별 걱정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한두 마리의 요괴가 있긴 하지만 여기 사람들이 워낙 겁쟁이들이라서 그저 떨고만 있지 뭡니까? 제가 있는 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삼장 : “그런데 오정아 그 나무꾼은 금세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스승의 말에 오정은 사방으로 나무꾼의 종적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다 보니 문득 구름 사이로 일치공조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겠어요?
오공 : “야. 이놈아, 할 말이 있으면 당당히 할 것이지 어째 이런 나무꾼으로 둔갑해 내 눈을 속인 게냐?”
공조는 급히 허리를 굽혀 오공에게 절을 했습니다.
공조 : “대성님! 소식을 너무 늦게 알려 드려 죄송합니다. 그 요괴는 참으로 신통력이 대단하고 변화무쌍한 놈입니다. 대성님의 솜씨가 아무리 날쌔다 하나 아무쪼록 조심을 하셔야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늦추셨다간 서천길을 가시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오공 : ‘공조가 알려줘 고맙긴 한데, 사실대로 말했다간 겁먹을 것이고 안 그랬다가 요괴에게 잡히는 날엔 내가 또 고생을 할 것이 틀림없지. 어쩐다? 그렇지, 팔계가 먼저 싸우게 해야겠다. 그래서 이기면 팔계의 공이고 지게 되면 그때 내가 나서면 되니 내가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야.’
오공은 거짓눈물을 흘리며 삼장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삼장 : “아니 오공아, 무슨 일로 그리 울고 있는 게냐? 할 말이 있으면 어서 해 보려무나.”
오공은 공조가 말한 대로 전한 뒤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삼장 : “그렇겠지. 혼자 힘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저기 두 사형과 힘을 합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
오공 : “그렇다면 팔계야,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구나. 하나는 스승님 시중을 드는 일, 또 하나는 산을 순찰하는 일이구나.”
팔계 : “아니 두 가지 일을 내가 다 어찌 할 수 있어? 난 몸이 한 개뿐인데 말이야?”
오공 : “한 개만 고르도록 해라. 시중을 드는 것은 스승님의 모든 것을 다 해야 하는 것으로 공양밥을 얻어다 드리는 것도 포함해서다.”
팔계 : “아유 그걸 어떻게…, 사람들은 내가 경을 구하러 가는 걸 모르고 그저 산속에서 뛰쳐나온 멧돼지라고만 생각해서 날 잡아먹을 수도 있는데 그건 못하겠어.”
오공 : “그럼 산을 순찰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보다 먼저 앞서서 요괴는 몇이나 되고 산 이름이며 어떤 동굴들이 있는지 알아오면 우리가 적당히 조치를 취할 수 있을 테니까 말야.”
팔계 : “그래, 그런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군. 그럼 난 순찰을 맡도록 하겠어.”
팔계는 곧 옷깃을 여미고 갈퀴를 들고는 위세 좋게 깊은 산속으로 성큼 걸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오공은 참지 못하고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삼장 : “아니 이런 오공아! 형제간에 아껴 줄 생각은 않고 언제나 시기심만 품고 있구나! 그따위 잔꾈 부려 팔계를 산속으로 순찰 보내 놓고 뒤에 남아 웃고만 있는 게냐?”
오공 : “하하하 스승님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아마도 저 팔계는 요괴가 무서워 숨어 있다가 거짓말을 꾸며 우릴 속일 겁니다. 제가 몰래 따라가 보도록 하죠. 어려움에 처하면 제가 도울 것이고 부처님에 대한 마음이 진정한 것인지도 볼 겸 말입니다.”
오공은 잽싸게 한 마리 사마귀로 변신해 팔계의 귓등 털 밑에 붙어 앉았습니다. 그런 줄 꿈에도 모르는 팔계는 7, 8리 가량 가서는 갈퀴를 냅다 던지고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욕을 퍼부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팔계 : “흥, 자기들은 편하게 있고 나만 이리 생고생을 시킨단 말이야? 흥흥, 요괴가 있는 걸 알면 피해가면 될 것을 아직 절반도 가지 않은 길을 나더러 순찰하라고? 정말 재수가 없군, 에라 빌어먹을 것. 내 어디 가서 잠이나 자면 그만인게다. 그 다음에 돌아가서 아무렇게나 말하면 되지 뭐.” (잠들어 코를 고는 팔계)
이 말을 들은 오공은 이번엔 딱따구리로 변해 정신없이 자고 있는 팔계의 입을 콕 쪼아주었습니다.
팔계 : “앗! 도깨비다. 도깨비, 내 입을 창으로 찌르고 내뺐구나! 아유 아파라, 아파 죽겠는걸!”
잠에서 깬 팔계는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늘위에 딱따구리 한 마리가 공중을 날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팔계 : “네가 나를 업신여겨 벌레를 쪼아 먹는다는 것이 내 입을 쪼았던 게지. 그렇다면 난 입을 품에 감추고 자야겠는걸. 아흠!”
도로 풀숲에 쓰러져 잠을 청하는 팔계를 가만 둘리 없는 오공은 이번엔 귓등을 따끔하게 쪼았습니다.
팔계 : “아니 이런 사람을 못살게 굴어도 유분수지, 혹시 이곳이 저 딱따구리의 둥지라 나에게 자기 새끼를 뺏길지 몰라서 저러는 건가? 어쨌거나 잠자기는 다 틀려버린 게야.”
그렇게 다시 산비탈을 내려간 팔계는 사마귀로 변신한 오공이 귓등에 달라붙은 지도 모르고 산속으로 4, 5리쯤 걷다가 네모진 바위 세 개가 있는 곳에 서더니 갈퀴를 내려놓고 넙죽 인사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
오공 : “어라. 이런 바보 녀석을 봤나. 사람 아닌 바위가 말을 할리도 없는데 인사는 무슨 말라빠진 인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냐?”
오공이 이런 생각을 하며 팔계가 하는 짓을 보고 있는데 팔계는 바위를 삼장과 오정 그리고 오공 세 사람으로 가정하고 그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팔계 : “만일 스승님께서 요괴가 있더냐고 물으시면 있더라고 대답하고, 산이 무슨 산이냐 물으시면 그냥 석두산이라고 대답해야지. 만일 흙으로 빚은 산이라거나 주석이나 구리를 달구어 만들었다거나 종이를 발랐다거나 하면 나를 더 바보 취급할 것이 틀림없어. 어떤 동굴이냐고 하시면 석두동이라고 하고, 어떤 문이냐 하면 큰 쇠못을 친 철문이라구 하고, 동굴 깊이가 얼마나 되더냐하면 안으로 겹겹이 세층이나 되어서 들어가기 쉽지 않다고 해야지. 그리고 만약 대문에 못이 얼마나 박혀있더냐고 물으면 그것만은 이 팔계가 미처 세어보지 못했노라고 하면 그만이야. 좋아! 이만큼 거짓말을 꾸며 놓았으니 이젠 가서 필마온 녀석을 속여먹어야지!”
오공이 죄다 엿들었음을 꿈에도 모르는 팔계는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과연 팔계는 이 거짓말로 무사히 난관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다음시간을 기대하세요.
-2024년 4월 25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