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형극령에서 오능은 길을 헤쳐 나가고
목선암에서 삼장은 시를 지어보다(1)-84화
제세국의 보물을 찾아주고 다시 길을 떠난 삼장 일행은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라 길을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문득 눈앞에 한 줄기의 긴 산발치가 보이는데 길은 그 산등성이를 따라 뻗어 있었습니다. 삼장이 말을 멈추고 바라보니 가시나무가 무성하고 사철나무와 여라의 덩굴이 얼기설기 엉켜 있었습니다.
삼장 : “제자들아! 저런 길을 어떻게 걸어갈 수 있겠느냐?”
오공 : “어째서 갈 수 없겠습니까?"
삼장 : “길이라곤 온통 가시덤불 속에 묻혀있으니 뱀이라면 그 밑으로 기어갈 수 있겠지만, 너희들이 걷자면 허리도 펴기 어려울 것이고 나로선 어찌 말을 타고 갈 수 있겠느냐?”
팔계 :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갈퀴로 가시덤불을 헤쳐 길을 내드릴 테니 말은 물론 가마를 타고서라도 얼마든지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삼장 : “네가 비록 힘이 장사이긴 하지만 오랫동안 힘을 내기는 어려울 게다. 이 길이 얼마나 먼지 알 수 없으니 어찌 그런 고역을 견딜 수 있겠느냐?!”
오공 : “의논할 것도 없이 제가 가보고 오지요.”
오공은 곧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바라보니 첩첩 산줄기는 끝 간 데가 없었습니다.
숲속에는 스산한 바람 소리 쏴쏴 사르르 몰려가는데, 소나무, 측백나무, 대나무에 매화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무성해 햇살의 그림자만 환하구나. 가시덤불 엉켜 시렁 같고 등 덩굴 펼쳐져 침상 같은데 꽃이 피어 듬성듬성 수를 놓은 듯 그윽한 꽃향기 끝없이 풍기네.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들 가시밭 만나지 않으련만 서천 길에 가로놓인 이 같은 가시밭 언제 보았으랴!
한동안 바라보던 오공은 구름을 낮춰 삼장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오공 : “스승님! 이 길이 여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삼장 : “얼마나 멀더냐?”
오공 : “끝 간 데가 안 보이는 거로 봐 천릿길은 너끈히 될 것 같습니다.”
삼장 :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오정 :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쇼. 우리도 화전을 일구는 식으로 불을 질러 가시덤불을 태워 버린 뒤에 지나가면 될 게 아닙니까?”
팔계 : “무슨 소릴 하는 게야! 화전을 일구려면 10월이 지나 풀이 시들고 나무가 바싹 마른 때라야 되는 거야. 지금은 수풀이 한창 무성하게 자랄 때인데 어떻게 태운다고 그래?”
오공 : “설사 태울 수 있다 해도 그건 함부로 할 일이 못 돼.”
삼장 : “그런 이 산을 어찌 넘어간단 말이더냐?”
팔계 : “이곳을 지나가려면 역시 제 말대로 하셔야 할걸요.”
팔계는 인을 맺고 주문을 외우면서 허리를 굽실거렸습니다.
팔계 : “커져라!”
갑자기 팔계의 몸통은 2백 자나 되게 커졌으며 또 갈퀴를 흔들며 ‘변해라’하고 외치니 그것도 3백 자나 되게 커졌습니다.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갈퀴를 휘저으며 가시덤불을 좌우로 쳐 버렸습니다.
팔계 : “스승님! 저의 뒤를 따라오십시오!”
삼장은 매우 기뻐하며 말을 몰아 팔계의 뒤를 따랐습니다. 쉬지 않고 온종일 걸어 백여 리가량 나아가니 널따란 개활지대가 나타났습니다.
길옆에 형극령이란 세 글자가 큼직하게 쓰인 비석이 하나 서 있고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가시덤불 뒤덮인 팔백 리 영마루길
예로부터 이 길을 넘은 자 없네
그 글을 읽고 난 팔계가 껄껄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팔계 : “어디 이 팔계가 둬 마디 보태어 볼까? ‘저팔계가 오늘 이 길을 열어 서천길 곧바로 통하게 하리!’”
삼장 : “제자야! 정말 수고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다시 떠나도록 하자.”
팔계 : “스승님, 묵어갈 것도 없습니다. 밤하늘이 꽤 밝은 데다 저희가 아직 지치질 않았으니 내친김에 밤을 새워서라도 계속 가보도록 하시죠.”
그렇게 계속 길을 걸으니 빈터가 한 군데 있어 그 복판에 오래된 사당이 있고 사당 문 앞에는 소나무, 측백나무들이 푸름을 자랑하고 복숭아꽃, 매화꽃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삼장은 말에서 내려 제자들과 함께 다가갔습니다.
오공 : “스승님, 이곳은 심상치 않아서 오래 머물 데가 못 됩니다.”
오정 : “형, 그런 게 아니야. 여긴 인적이 전혀 없는 데다 또 요괴나 짐승 같은 것도 없잖아? 아니 뭐가 두려워서 그래?”
그런데 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한 자락의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며 사당 문 뒤로부터 노인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머리에 모난 수건을 쓰고 몸에는 연한 빛깔의 옷을 입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었고 발에는 짚신을 신었습니다. 노인 뒤에는 또 거무칙칙한 얼굴에 긴 이빨을 드러낸 붉은 수염의 알몸뚱이 귀졸이 떡 쟁반을 머리에 이고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오공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었습니다.
십팔공 : “대성님! 소신은 형극령의 토지신입니다. 대성님께서 이곳에 오셨지만 별로 접대할 만한 것이 없어 일부러 떡을 쪄서 왔으니 맛이라도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8백 리 안팎에 인가라고는 전혀 없는 곳이라 이것으로라도 요기해 주십시오.”
팔계 : “허, 이게 웬 떡이람! 배고픈데 마침 잘 되었구나.”
오공 : “아서라, 팔계야! 이놈은 좀 수상하구나. 감히 네 놈이 토지신이라구? 날 속이려 하다니, 허튼수작하지 말고 내 금고봉 맛이나 보아라!”
오공이 금고봉을 내리치려는 순간 몸을 슬쩍 피한 노인은 한 자락의 음산한 바람으로 둔갑하더니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삼장을 채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당황한 것은 오공이었고 팔계와 오정은 놀라서 얼굴빛이 창백해졌습니다. 백마도 놀라 울부짖고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삼장의 그림자는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한편 노인과 귀졸은 삼장을 떠메고 노을 속에 묻힌 돌집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십팔공 : “성승님! 겁내지 마십시요! 우린 나쁜 사람이 아니라 형극령의 십팔공입니다. 오늘 밤은 달도 밝고 바람도 맑기에 특별히 성승을 청해 벗들과 함께 모여 시에 관한 이야기나 나누며 시간을 보낼까 합니다.”
삼장은 그제야 마음을 진정하고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흰 구름 서서히 모여드는 곳
깨끗한 선경의 인가구나
몸과 마음 닦아 내기 안성 맞고
꽃나무와 대나무 가꾸기 좋네.
구름을 갈고 달을 따온다지만
이곳에 숨어 삶이 더욱 좋으리
앉았으면 바다같이 아늑하고
몽롱한 달빛이 창문에 어리네
그럴 즈음 달과 별이 점점 더 밝아지며 도란도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인들 : “십팔공이 성승을 모시고 왔구려!”
삼장이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 세 노인이 서 있는데 첫 번째 노인은 백발에 풍채가 늠름하고, 두 번째 노인은 검푸른 귀밑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세 번째 노인은 허심한 표정의 검은 얼굴이었습니다. 생김새나 복장이 서로 같지 않은 세 노인은 삼장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 삼장은 답례를 하며 말했습니다.
삼장 : “저에게 무슨 덕행이 있다고 여러 신선님께서 이처럼 환대해 주시는 겁니까?"
십팔공 : “전부터 우린 성승의 높은 덕행을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 뵐 수 있게 되었군요. 만약 주옥같은 말씀을 아끼지 않고 주시려거든 마음을 푹 놓으시고 선기의 진수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삼장 : “신선님들의 존함은 어떻게 쓰시는지요?”
십팔공 : “저 백발노인은 고직공이라 하고 귀밑머리가 검푸른 분은 능공자라 하며 얼굴이 검고 허심한 분은 불운수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경절이라 합니다.”
삼장 : “여러분의 연세는 얼마나 되신가요?”
고직공(측백나무정령) :
“내 나이 어느덧 천세를 헤아리거니
하늘을 떠인 채 사시장철 무성해 있네
향기로운 가지는 용과 뱀처럼 타래져 뻗고
줄기는 그늘져 눈서리에 덮여 있네
날 적부터 강직해 늙지를 않고
오늘은 즐겨 참된 마음 닦아 가거니
찾아드는 봉황도 범속한 무리 아니요
울창한 이 모습 속세와는 멀어라.”
능공자(전나무 정령) :
“내 나이 1천 년 풍상을 겪었고
높은 줄기와 신령스러운 가지 무쇠마냥 굳센데
밤중에 내는 소리 빗소리런가
가을날 그림자 구름장 펼쳐놓은 듯
뿌리는 엉켜 장생의 비결 얻었고
수명은 길어 늙는 줄 모르누나
학과 용도 기꺼이 머물 거니
시원한 그늘 밑은 그대로 선경일세”
불운수(대나무 정령) :
“내 나이 헛되게 천추가 되었고
늙은 몸 소연히 청수하고 안온하네
더럽고 소란한 속세엔 냉담하고
풍상과 고초엔 스스로 대범하누나
일곱 성현과 어울려 도를 말하고
여섯 호걸과 더불어 시를 화답하네
두드리는 옥과 금 여느 악기 아니거니
타고난 성미대로 신선들과 노니누나”
경절십팔공(소나무 정령) :
“이 몸도 천여 년 세월을 겪었고
창연히 곧은 절개 지켜 왔어라
빗물과 이슬로 삶의 힘을 길렀고
우주와 조화 빌려 생기를 얻었네
산골 바람 이 몸을 왕성케 해서
사시장철 초연히 뻗치고 섰거니
짙은 녹음 신선들을 머물게 하고
바둑 두고 현금 타며 학문을 논하네”
삼장 : “신선님들은 모두 연세가 엄청나게 많으시군요. 그처럼 많은 나이이심에도 도를 깨치셨고 풍채가 아주 뛰어나시니 어쩌면 한나라 때의 사호가 아닙니까?”
능공자 :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사호가 아니라 깊은 산속에 사는 사조입니다. 그런데 성승의 춘추는 어찌 되시는지요?”
삼장 :
“40년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났건만
나기 전부터 불우한 운명 정해져 있었네.
강물에 뜬 이 몸은 파도 따라 흘러내렸고
다행히 금산을 만나 죽음에서 벗어났더라
마음을 길러 경문을 읽음에 게으름 없었고
성심껏 부처님을 섬겨 자기 몸단속했네.
오늘은 천자님의 어명으로 서천길 가거니
도중에서 신선님 만나 이같이 사랑을 받네.”
불운수 : “과연 어려서부터 수행을 쌓은 올바르고도 도통한 고승이시군요. 오늘 이리 뵙게 된 것도 큰 인연이니 선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다면 우린 일생의 행운으로 알겠습니다.”
삼장 : “그렇게 청하시니 한 말씀 올리지요. 선이란 곧 정이며 법이란 곧 도를 말합니다. 정 속의 도는 깨닫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마음의 근심을 깨끗이 씻고 세속에서 벗어나 속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토에서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반드시 깨치는 가운데서 깨닫고, 깨닫는 가운데서 깨쳐야만 비로소 한 점의 영광도 온전히 보호되는 것입니다.”
조용히 듣던 노인들은 매우 기뻐하며 저마다 허리를 굽혀 삼장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불운수 : “선은 곧 정이요, 법은 곧 도라 하지만 반드시 마음이 안정되고 정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설사 대각진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무생의 도를 지키는 것이니 우리네 현관과는 다릅니다.”
삼장 : “도란 비상한 것이고 체용이 하나로 되어 있는데 어찌 다르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불운수 : “우린 천지의 감응에 몸이 생겨나고 비와 이슬을 받아 빛깔을 띠었습니다. 풍상을 웃으며 겪고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잎사귀 하나 시들지 않고 가지마다 절조를 지켜 왔습니다. 한데 당신의 말씀은 사실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은 범어를 유일한 기둥으로 삼고 있지만 대체로 도란 원래 중국에서 생긴 것인데 당신은 도리어 증거를 서방에서 구하려 헛되이 신발만 닳게 하고 있으니 필경 무엇을 구하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불운수의 말에 삼장이 머리를 조아려 사의를 표하니 십팔공은 삼장의 팔을 부축하고 고직공은 삼장의 옷자락을 잡아 일으키고 능공자는 껄껄 웃으면서 삼장에게 말했습니다.
능공자 : “불운수의 말은 그대로 믿을게 못 되지요. 우린 원래 이 밝은 달빛 아래에서 수행을 논하자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시를 읊고 흉금을 털어놓으며 즐기자는 거였습니다.”
불운수 : “하하하, 이제 저 암자로 들어가 차라도 드시면서 시를 읊으시는 건 어떻겠소이까?”
가시덤불을 헤쳐나가던 중, 제자들과 떨어지게 된 삼장은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2024년 10월 10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