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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91)-제21장 전 세계에서 기소 열풍이 불고, 광범위한 법망(法網)을 피할 방법이 없다
 
  
2008-08-29 12:25:11  |  조회 12498

(피할 길 없는 법망 속에서 전 세계적 기소 열풍의 초점이 된 장쩌민, 마지막 시간)

[장쩌민 측근 왕쉬둥 기소]
정보산업부 부장 왕쉬둥(王旭東)은 2004년 6월, 시카고에서 “제3회 중미전신 정상회담” 참가 중 기소되었다. 그 사유는 2000년 6월부터 11월까지 허베이(河北)성위원회 서기로 재임할 당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기 때문이다. 이 정상회담은 미국 상업부와 미국 전신공업협회가 주관한 것으로, 회의 참가자들은 왕쉬둥이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보인 양면성으로 크게 놀랐다.

중국은 5개성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비교적 심각했는데,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의 숫자는 이 5개성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허베이성 역시 그 중 하나이다.

6월 18일 저녁, 왕쉬둥이 머물던 시카고 하야트 호텔에서 두 명의 경호원이 그의 소환장을 받았다.

다음 날, 수행원들 사이에서 그의 기소 소식이 빠르게 전해졌고 호텔 로비에는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왕쉬둥에게 다시 소환장을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영사관과 친공교사(親共僑社)의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생이 없는 출구를 찾고자 분주히 뛰어 다녔다. 왕쉬둥을 기다리던 흰색 Limo는 결국 주인 대신 짐으로 채워졌고 왕쉬둥은 버스를 탔는데, 그를 발견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왕쉬둥, 당신은 기소되었다!”며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왕쉬둥이 탄 버스가 시카고 서부의 한 전신회사에 도착하자, 미리 나와 그를 기다리던 파룬궁 수련생들은 재빨리 소환장과 소송장이 포함된 3장의 문건을 그가 탄 버스 유리에 붙였다.

워싱턴 방문을 앞두고 있던 그는 처음 미국을 방문한 터라 여러 가지 일정을 계획했으나 기소된 그는 워싱턴 일정을 포기하고 대사관에서 하루 동안 체류헸다. 이 과정에서 덩달아 외출을 금지당한 수행원들은 원성이 자자했다. 본래 왕쉬둥은 중공 부총리로 촉망 받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은 이번 기소 사건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가 박해에 적극 참여하지만 않았더라도 기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도 어떻게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는가? 

피고 왕쉬둥은 이 기소 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카고의 왕쉬둥측 변호사는 초청되지도 않았는데, 2005년 4월과 5월 두 차례 비서를 보내 청정회를 참관토록 했고 직접 법정에 나와 소식을 묻기도 했다.

2005년 5월 26일, 미국 일리노이주 연방법원은 파룬궁 수련생이 기소한 전임 중공 허베이성위원회 서기(현임 중국정부산업부 부장) 왕쉬둥의 고소장을 수락했다. 이것은 원고인 파룬궁 수련생의 중대한 승리이자 미국법정이 중국에서 일어난 파룬궁 박해 사건에 큰 관심을 보였음을 증명한 것이다. 피고 왕쉬둥은 원고측에서 발송한 법률 문건 수취를 계속 거부했다. 그는 4차례나 특급우편 수취를 거부했다. 원고측도 팩스, 심지어 꽃배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연방법원은 비록 피고가 문서 수취를 거부했으나 원고의 노력이 이미 연방 규정에 부합했음을 확정하고 고소장을 수락한 것이다.
[도처에서 기소된 상무부장 – 보시라이]
2004년 4월 24일,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중공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가 기소되었다. 그는 중국 부총리 우이(吳儀)와 함께 제15회 중미무역연합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보시라이는 소송장과 기타 법률 문건을 직접 수취하고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것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또한 수취를 거부함으로써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잃었으며 결석재판을 받게 되었다.

국내의 많은 언론에서 보시라이를 “정치계 샛별”, “유명 성장(省長)”, “매력적인 성장” 등으로 찬사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아첨에 능하고 자신의 체면을 아주 잘 세운다. 90년대 중반, 장쩌민이 다롄의 국영기업을 시찰할 당시, 보시라이는 다롄의 중심지 한 복판에 장쩌민의 대형 화보를 걸어 그에 대한 존경을 표시했고 장쩌민은 이것을 아주 만족해했다. 보시라이는 중공 정치 원로 보이보(薄一波)의 아들이었는데 보이보는 장쩌민이 수많은 정치세력을 제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이유로 보시라이의 앞날은 더욱 밝아 보였다.

보시라이는 겉보기에 마치 친절하고 진보적인 것 같지만 이것은 위장된 모습에 불과하다. 사실  보시라이는 언행이 독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다. <원후이바오(文彙報)>의 전임 홍콩특파원 장웨이핑(姜維平)이 보시라이의 부정부패를 기사화 하자, 다롄 당국은 “국가정권의 전복 선동”과 “해외에 국가 기밀 누출”이란 죄명으로 그를 기소했다. 다롄시 검찰원은 증거 불충분으로 다롄 국안국의 기소를 기각했으나 다롄 사법 당국은 지역 군주와 다름없는 보시라이의 뜻에 따라 장웨이핑을  구속했다, 또한 보시라이는 해외에서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자들을 희롱했다.

다롄 시장으로 있는 동안 그는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충실이 수행하여 다롄을 전국에서 파룬궁 박해가 제일 심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의 재임 기간 중, 다롄시에서는 최소 15명의 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다. 파룬궁박해조사 국제조직의 조사에 따르면 보시라이가 랴오닝성장을 역임한 기간 동안 이미 103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참혹하게 박해로 사망하여 한때 랴오닝성은 파룬궁 박해가 제일 심한 지역 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2004년 5월, 보시라이의 유럽 5개국 방문기간 중 많은 인권단체의 항의가 일어났다. 보시라이는 본래 3월 25일 독일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독일의 인권단체와 파룬궁 수련생들이 보시라이의 인권침해 행동에 대해 항의와 질책하며, 독일 정부에 그의 입국을 거절할 것을 요청했다. 그의 어두운 인권 침해 기록은 독일 사회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독일 정부는 중국 측에 보시라이가 방문을 늦춰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5월 일정 중, 독일 정부가 발표한 독일경제부 주관 중독첨단기술포럼 참가자 명단에 보시라이의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파룬궁은 내부 정보통을 통해 보시라이의 독일 방문과 관련 정보를 입수했다. 중공 대표단의 독일 방문 첫날, 그들은  “원자바오를 환영하고, 장쩌민을 사법처리하며 인권유린자 보시라이를 축출하자”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중독(中德)첨단기술포럼이 있던 날,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들이 걸어 놓은 피켓 앞을 지나 포럼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보시라이를 볼 수 있었다.   

6월의 폴란드 방문 기간에 보시라이는 반 인류죄로 기소되었으며, 8월의 러시아 방문 중에도 역시 기소되었다.

11월 14일에서 21일까지, 중국상무부장 보시라이는 칠레에서 열린 APEC 회의 참가 기간 동안 각종 인권 유린죄로 수차례 고발당했다.

12월 9일, 헤이그의 국제회의센터에서 열린 유럽연합과 중국의 상업회담에서 보시라이는 개막사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국제회의센터에서 연공하며 원자바오를 환영하는 한편, 인권범죄자 보시라이를 축출하고, 장쩌민, 뤄간, 류징, 저우융캉등의 사법 처리를 요구했다.
[중공 언론 선동을 이용해 파룬궁 모함하기 -- 자오즈전]
2004년 7월 14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시를 방문 중이던 우한(武漢)라디오와 TV방송국 국장인 자오즈전(趙致眞)은 직접 미국연방법원의 소환장을 수취했다. 자오즈전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단체로 뉴헤이번시 연방법원에 기소되었고, 사유는 영상물을 제작해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증오, 폭력, 혹형과 집단학살을 선동한 죄이다.

자오즈전 기소안 성공은 “파룬공박해조사 국제조직(追査國際: 조사국제)” 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였고 이 조직의 성립 취지는 다음과 같다. “파룬공을 박해한 모든 죄악 및 관련 기구, 조직, 개인을 조사한다."

자오즈전이 기소를 피해 도피하려 할 때, 이미 이 사실을 파악한 “조사국제”는 즉시 기소자에게 이를 알려 적절한 시기에 피고에게 고소장을 전달하였다. 그는 정식으로 기소에 응했고 이것으로 그는 파룬궁 박해와 관련된 해외 인권 기소의 피고 중에서 계급이 가장 낮은 유일한 기소 수락자가 되었다.
[중국 영사관 습격 폭행 및 법정에서 죄를 인정하다]
장쩌민은 주외 영사관을 파룬궁 박해의 중심지로 삼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을 이용했다.

2001년 9월 초, 시카고 수련생들은 중국 영사관 앞에서 10일간 단식  하여, 중공이 파룬궁 여자 수련생을 살해한 것에 항의했다. 9월 7일 오후 4시 40분 경, 검은색 차에 탄 3명의 남자중 2명이 중국 영사관 앞에 내려 파룬궁 수련생을 때리고  단식하는 수련생들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나머지 한 사람은 차에서 망을 보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식에 참가한 수련생이 그들에게 현재 파룬궁이 중공에게 받고 있는 부당한 박해를 설명하자 그들은 그 수련생을 위협했고, 다른 수련생이 카메라로 현장을 찍자, 두 사람은 그를 사정없이 폭행한 후, 황급히  현장을 떠났다.

후에, 그 두 명의 폭행자는 파룬궁 수련생들에 의해 기소되었는데, 흉악범 웡위쥔(翁玉俊)은 2002년 11월 5일 새벽 한 시경, 과거 시카고의 친공(親共) 신문사인 “천바오(辰報)” 사무실에서 나오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3주 후, 웡위쥔은 일리노이주 쿡컨트리(CookCounty)법정에서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그 밖의 폭행범 정지밍(鄭繼明)도 2002년 11월 13일 시카고 쿡컨트리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당시, 시카고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생 구타 사건은 그 지역에 큰 충격을 주었고, 여러 국가의 중서문(中西文) 언론 매체는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예절을 중시하는 동방의 대국이, 장쩌민의 수중으로 넘어가 발생한 이 일은 정말 중화민족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고수하다가 파룬궁에게 기소된 중공 관료의 명단은 전임 산둥성위원회 서기이자 현재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인 우관정(吳官正), 전임 베이징시위원회 서기이자 현재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인 자칭린(賈慶林), 전임 중국국무원 부총리이자 중공정치국 상무위원 기간 중 사망한 황쥐(黃菊),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리장춘(李長春), 문화부장 쑨자정(孫家正), 반사교협회 부이사장 왕위성(王渝生), 안후이성위원회 서기 왕타이화(王太華), 중공파룬궁문제처리 부팀장과 본래 중공 610사무실 주임을 맡은 왕마오린(王茂林), 중공주한대사 리빈(李濱), 총영사 장신(張欣) 및 대사관의 참사관 5명 등이다.     
7. 파왕후이후이
[박해 책임자의 명단을 받아들인 연합국]
2003년 3월, 제네바 연합국 인권비밀검사기구 회담 중, 중공의 한 박해감찰조직인 “파왕후이후이(法罔恢恢)”가 모두 4천여 장에 달하는 중공 파룬궁 박해에 관한 보고서 2부를 제출했다. 첫 번째 보고서에는 만 천 여명의 610 직원과 경찰 및 기타 파룬궁 박해 관련자의 이름과 죄목이 있었고, 두 번째 보고서에는 대략 2만 여명에 달하는 파룬궁 피해자의 명단과 사건 리스트가 있었다. “파왕후이후이”는 자신들이 최근 기록한 대략 만 여명의 중공 범법자들에 대해 적당한 시기에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혔다.
[파룬궁박해조사국제인권조직의 성립]
2003년 1월, 국제인권조직인 “파룬궁박해조사 국제조직(조사국제)”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이 조직은 북미, 유럽, 아시아와 호주에서도 대내외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관계 조직과 개인을 전면적으로 조사하고, 박해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각 국가의 정부 및 관련 국제기구와 협조하며, “파룬궁 박해 전담 국제특별법정”을 세워,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하고 광범위한 학살적 박해에 참여했거나 이것을 선동한 자들에 대한 전면적 재판을 실행하길 희망했다.
“조사국제” 대변인은, 전 세계의 정의 세력과 협조하여 국제적인 범위 에서 파룬궁 박해와 관련된 모든 악행 및 관계된 개인, 조직과 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철저한 조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기마 경찰대 <연방 경찰>]
2003년 9월, 캐나다 파룬궁 학회는 캐나다 “반인류와 전범죄 방안” 관련 관료들에게 장쩌민을 포함한 15명의 파룬궁 박해자의 죄목 및 그 증거를 제출했다.

2004년 1월말, 캐나다 파룬궁 수련생은 추가로 박해에 참여한 30명의 명단을 제출하여 이미 45명의 각급 중공 당위원, “610”책임자, 정부 관료와 노교소 불법인원이 캐나다 연방 경찰의 감시자 명단에 올라갔다. 이들은 캐나다 입국과 동시에 즉각 조사를 받게 되므로 이들에게는 비자 발급 거절과 입국 금지령을 내릴 수 있고, “반 인류죄”로 캐나다에서 기소할 수도 있다. 

이 명단에는 파룬궁 박해의 주동자 장쩌민과 중앙 “파룬궁문제처리 전문조직”과 “610사무실” 리강칭, 뤄간, 왕마오린, 류징 등은  포함되지 않았고, 성(랴오닝성, 허베이성)과 직할시(베이징시)에서 파룬궁 박해를 주관한 당위원, “610사무실”의 불법관료 및 노교소(마산자 노교소, 완자 노교소)의 경찰 등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명단을 보면, 박해 계획 수립과 실행자로 각급 중공 당위원회와 정부뿐만 아니라, 사법기관, 선전기관과 노교소 인원들도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범법 증거 출처는 주로 피해자의 진술 및 중국대륙에서 용감하게 해외 수련생 피해자에게 보낸 정보, 또한 국제 대사면, 연합국인권조직, 인권관찰과 파룬궁박해조사 국제조직 등과 같은 제 3자가 제공한 정보로 모두 파룬궁 박해와 관련된 수많은 직간접적인 증거물이 된다.

파룬궁측은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고, 그들은 반인류와 전범죄 등 에 대해 관련 기관에 계속해서 수많은 박해 가해자의 명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관련 기관들도 그들이 보낼 또 다른 가해자 명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미국 해관과 이민국에 보낸 박해자 명단]
캐나다와 유사하게, 2004년 3월 9일 “파룬궁의 친구”와 “파룬궁박해조사 국제조직”은 미국 정부에 장쩌민, 뤄간, 류징, 저우융캉, 리강칭, 왕마오린 등을 포함한 파룬궁 박해 주요 책임자 102명의 명단을 제출해 이들의 입국 금지를 요청했다. 미국의 이민귀화법 제212 (a) (2) (G)조항에는 만약 외국 정부 관료가 과거 2년 안에 종교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행동에 참여할 경우, 본인은 물론 그 가족과 자녀들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
최근 전 세계 각국에서는, 장쩌민과 그 추종자들의 파룬궁에 대한 집단학살죄, 혹형죄, 반 인류죄와 관련된 법률 소송이 계속되고 있어  파룬궁을 박해한 중공 관료들에게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런 전 세계적 규모의 소송은 2차 세계대전 나치 범법자의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장쩌민 기소안과 기타 소송안을 보고, 중공의 일부 관료들은 “피신할 출구”를 찾고 관련 문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으며, 이로써 자신은 “무고”하고 610사무실의 명령을 “강제적”으로 집행한 것임을 증명하려 했다.

국내 소식에 따르면, 중국 일부 지역의 “610” 고위 관료들이 하급 관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1999년 파룬궁 불법 진압이 시작된 이래 배포했던 모든 관련 자료와 문건을 내부로 회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 정책은 이미 분명하게 지지 세력을 잃고,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빈틈없는 수사망에 직면해 있는, 장쩌민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은 속담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되면 반드시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된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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