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경찰이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인근 집회를 금지 처분한 데 대해 “과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업무 방해 등 실질적 피해에 대한 추상적 위험성만을 근거로 제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펜앤마이크’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윤강열 김형진 김선아)는 12일 서울남대문경찰서장 명의의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 3건을 취소하는 판결을 했다(2024누36168).
앞서 남대문경찰서는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소재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 경계 10미터 지점에 ‘중국 공산당의 해외 공작 거점인 공자학원(孔子學院)의 영구 추방을 촉구한다’라는 취지로 신고된 집회 3건에 대해 ‘금지 통고’를 처분한 바 있다.
경찰 측의 금지 통고 사유는 해당 집회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또는 외교사절의 숙소 경계 100미터 이내 장소에서의 집회·시위의 개최를 원칙적으로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5호 규정에 따라 ‘금지 대상’ 집회에 해당하고 “주한 중국대사관의 경우 타(他) 대사관과는 상이하게 대사관 내 외교사절이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상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 제1심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제3부(최수진 신은진 신일성)는 이 사건 원고가 피고(서울남대문경찰서)에게 향후 이 사건 신고 내용과 동일한 집회를 신고할 것으로 보이지 않고 설령 신고하더라도 피고는 각 신고 건마다 ‘금지 통고’ 처분 여부를 달리 검토할 것이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동일한 처분이 반복될 가능성이 없어 소(訴)를 구하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각하’ 판결을 하고 본안 판단을 회피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의 판단은 달랐다. 우선 ‘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아 소송의 부적법하다는 원심의 판단이 틀렸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9조 제3항은 ‘집회 또는 시위의 금지통고가 위법하거나 부당한 것으로 재결되거나 그 효력을 잃게 된 경우 처음 신고한 대로 집회 또는 시위를 개최할 수 있고, 다만 금지통고 등으로 시기를 놓친 경우에는 일시를 새로 정하여 집회 또는 시위를 시작하기 24시간 전에 관할경찰관서장에게 신고함으로써 집회 또는 시위를 개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지통고의 취소 등을 구하는 행정소송 계속 중에 예정되었던 집회 또는 시위의 일시가 도과(徒過)되었더라도 금지통고의 취소 등을 통해 개최하지 못한 집회 또는 시위를 다시 개최할 수 있으므로 그 취소 내지 무효 확인을 구할 소의 이익은 여전히 있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 원고와 경찰 간에 이 사건 처분과 동일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성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피고는 새로운 집회 또는 시위의 신고서를 접수할 때마다 그 일시와 구체적인 장소, 집회 규모, 행진 경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해당 집회 또는 시위가 외교기관에 해당하는 주한 중국대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함에도 피고는 원고에 대해 ‘기계적’으로 금지통고를 반복하는 등 서울남대문경찰서가 집회 신고 건마다의 개별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봤다.
■ “집회 장소의 선택은 집회 성과 결정 짓는 주요 요인” 헌법재판소 결정 원용
재판부는 지난 2003년 선고된 구(舊)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위헌 소원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00헌바67·83 병합) 취지에 주목했다.
헌법재판소는 “집회·시위의 장소 선택의 자유는 일차적으로 헌법상 기본권으로 규정된 집회·시위의 자유의 한 내용에 해당한다”라며 “이때 집회·시위가 발생하고 전개되는 ‘장소’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데, 예를 들면 집회를 통해 반대하고자 하는 대상물이 위치하거나 집회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이 발생한 장소 등에서 행해져야 이를 통해 다수의 의견표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집회의 장소에 대한 선택은 집회의 성과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 추상적 위험성만을 근거로 기본권 제한 불가
경찰은 이 사건 금지 통고가 적법한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지난 2023년 9월 한 중국인(조선족) 남성이 주한 중국대사관 정문에 유리병을 투척한 사건 또는 좌익 청년 단체인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이 서울 중구 소재 주한 미국대사관저를 월담한 사건(2019), 그리고 지난해 ‘캡틴아메리카’ 분장을 한 남성이 주한 중국대사관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 등을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각 집회를 개최할 경우 대규모 집회·시위 등을 유발하여 외교기관의 업무를 방해하고 외교관의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거나 그와 같은 우려가 있다고 추단할 만한 신빙성 있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라며 “(어떤) ‘집회·시위는 위험할 수 있다’라는 추상적 위험성만을 근거로 기본권으로 보호되어야 할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라고 결론지었다.
■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와 비교해도 ‘금지 통고’ 적법성 인정 못 해”
재판부는 또 지난 1992년 1월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서울 종로구 소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그 후신(後身) 정의기억연대가 개최해 해 온 ‘수요시위’(정식 명칭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서울종로경찰서장은 주한 일본대사관 경계 100미터 지역에서 개최돼 온 ‘수요시위’를 단 한 차례도 금지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과 지난 2015년 대사관 신축 문제로 별도 건물로 주한 일본대사관이 이사하기 이전 시기 ‘수요시위’가 개최된 장소가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으로부터 불과 3미터 내지 1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개최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 사건 집회의 참가 예정인원, 정치적·사회적 상황이나 집회 시기의 민감성, 대규모 집회로 확산될 가능성 등을 고려해 보더라도, 이 사건 각 집회의 신고 내용이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 지역의 ‘수요시위’와 비교해 볼 때 외교기관(주한 중국대사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더 크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 원고 “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검열’ 인정한 판결”
이번 판결과 관련해 이 사건 원고는 “서울고등법원의 이번 판결에서 서울남대문경찰서가 내가 신고한 각 집회들에 대해 ‘기계적으로’ 금지 통고를 반복했다는 사실이 인정됐다”라며 “이는 경찰이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회·시위에 대한 사전(事前) 검열 내지 허가를 자행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므로 이와 관련해, 서울남대문경찰서장을 비롯, 관계 각 경찰 공무원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경찰 관계자들 전원에 대해 형사벌을 구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원고는 “이뿐 아니라, 증거에 반해 ‘각하’ 판결을 한 원심의 관여 법관 세 사람에 대해서도 형사 고소를 진행하겠다”라고 덧붙였다.
■ 李대통령, “반중 시위→깽판!”, 대응 요구
앞서 남대문경찰서는 ‘외교공관 보호’, ‘관광객 안전’을 이유로 명동 진입 시위를 차단했다. 남대문경찰서는 12일 오후 7시 30분 주한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집회와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한 단체 ‘민초결사대’ 등에 대해 명동 내 진입 금지 제한 통고를 내렸다. 그동안 경찰은 명동 이면도로에서의 집회를 허용하되 중국대사관 100m 이내로 접근하는 행위를 최소화하도록 제한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명동 진입 자체가 금지됐다.
해당 통고에는 ‘마찰 유발 행위 금지’ 조항도 포함했다. 이는 집회나 행진 과정에서 욕설, 폭행 등으로 외교사절이나 관광객과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는 행위를 엄격히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조치는 정치권과 지역 상권의 압박 가운데 나왔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반중 시위를 “깽판”이라 규정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을 요구했고 경찰은 그 다음 날인 10일 ‘마찰 유발 행위 금지’ 제한 통고를 검토 중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명동관광특구협의회도 전날 남대문경찰서에 “집회로 인해 관광객 유입과 상권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명동 내 시위 전면 제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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