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형극령에서 오능은 길을 헤쳐 나가고
목선암에서 삼장은 시를 지어보다(2)-85화
지난 시간, 제자들과 떨어지게 된 삼장은 네 정령과의 시를 지어보기로 이어나갈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삼장이 고개를 돌려 돌집을 바라보니 그 문 위에는 목선암이란 세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 자릴 잡고 앉으니 귀졸이 나타나 복령고 한 쟁반과 향기로운 차 다섯 종지를 받쳐 올렸습니다. 삼장이 조심스레 암자 안을 살피니 영롱한 빛발이 방안에 가득 차, 마치 밝은 달빛 아래 있는듯싶었습니다. 훌륭한 선경에 흡족해진 삼장은 저도 모르게 시 한 구절을 읊었습니다.
삼장 : “선심은 달빛인 양 티끌 한 점 안 묻었고”
삼장이 한 구절을 읊으니 노인들은 한 구절씩을 이어나갔습니다.
경절노인 : “시흥은 하늘처럼 그지없이 청신한데”
고직공 : “좋은 구절 아무렇게나 지어도 아름답구나.”
능공자 : “잘된 글은 점을 안 찍어도 진기하누나.”
불운수 : “육조는 일조에 번화함이 스러지고
사시는 다시금 송과 아로 나뉘리!”
삼장 : “제가 그만 실례를 했습니다. 그야말로 노반 앞에서 도끼질한 격이 되었군요.”
경절노인 : “허허 성승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시작을 떼셨으니 맺는 글귀가 있어야 할 게 아닙니까? 어서 뒤를 이어 주시구려.”
삼장 : “소승은 지을 수 없으니 십팔공께서 마감 귀를 짓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절노인 : “무슨 말씀을? 주옥같은 글귀를 너무 아끼는 것도 도리에 맞지 않는 겝니다.”
경절의 권고에 삼장은 마지못해 뒤를 이었습니다.
삼장 : “솔바람 베고 누워 차 끓기를 기다리고
회포를 읊조리며 봄빛을 불러오네”
경절 : “‘회포를 읊조리며 봄빛을 불러오네’라 정말 멋있군요!”
고직공 : “이보게 경절, 당신은 시도 잘 알고 있기에 음미만 하고 있군. 새로 한 편 시작해 보려 하지 않습니까?”
경절 : “허허, 그럼 난 정침으로 시작하지.
봄에 무성하지 않고 겨울에 시들지 않거니
오가는 구름안개도 없는 것과 다름없어라!”
능공자 : “바람 없이 흐늘흐늘 그림자 흔들리고
손님은 찾아와 복수도를 즐기누나.”
불운수 : “그림은 서산의 억센 소나무 같고
맑음은 남국의 무심한 측백나무 같네.”
고직공 : “측백은 측엽임에 동량으로 불리고
대나무를 가로놓아 헌오로 삼다.”
삼장 : “정말 양춘 백설같이 호기가 하늘에 사무치는군요. 전 별 재간이 없습니다만 다시 두어 구절 지어볼까 합니다.”
고직공 : “아예 연귀를 지으실 것 없이 옹근 한 수를 지으시면 저희도 미숙하나마 화답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삼장이 미소를 지으며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삼장 : “지팡이 짚고 서천에 가 여래님 뵙고
묘전을 구해 세상에 전하려네
금지가 세 번 피어 시단은 상서롭고
보배나무 꽃피어 향기롭기 그지없네
백척간두라도 반드시 올라야 하고
시방세계 어디라도 나아가야 하리니
여래처럼 수양해 장엄한 몸이 되고
극락의 문 앞은 그대로 도량이 되리.”
십팔공 : “난 워낙 글재간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주제넘게 한 수 읊어보지요.
경절은 고결해 나무왕을 비웃고
영춘도 나처럼 이름 날리지 못하네
일천 척 빈 산에 영그림자로 어른대고
일천 년 샘물엔 호박 향기로 그윽하네
하늘과 땅과 함께하며 기개를 기르고
비바람 속에도 흔들림 없이 즐겁다네
시들어 선골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오로지 영고가 있어 오래 산다네.”
고직공 : “그 시구는 첫 시작이 아주 뛰어나고 연구도 퍽 힘이 있군요. 하지만 맺음 구절이 너무 겸손한 것 같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그럼 나도 한 수 읊어볼까요?
서리 내린 자태로 새들을 감싸주고
사절당 앞에 큰 재목으로 이름 날리네
물구슬 머금은 녹음에 뒤덮여
바람 잔 돌밭에서 싸늘한 향기 풍기네
깊은 밤 긴 낭하에 우수수 설레고
가을날 전각 앞에 담담한 그림자 던지네
설날에 봄을 맞아 헌수를 드리고
늙어선 산 위에서 위엄을 자랑하네.”
능공자 : “정말 훌륭한 시로군! 마치 둥근달이 하늘 복판에 떠 있는 것 같으니 내 어떻게 화답할 수 있겠소이까 만, 그냥 비우고 넘어가면 안 될 테니 그런대로 한 수 읊어보지요.”
동량의 재목으론 제왕에 가까워
태청궁 밖에서 그 이름 떨치네
추녀 밑에 어른대며 푸른 기운 풍기고
어두운 담벽에 맑은 향기 실어오네
곧은 절개 늠름히 천고에 미치고
뿌리 뻗어 땅속 깊이 구천에 묻혔네
높은 기개 하늘 같아 그림자 뒤덮고
눈부신 꽃밭과는 등지고 지내네.”
불운수 : “세 분의 시는 매우 고상하고 우아해 마치 비단 주머니를 풀어 놓은 것 같군요. 세분의 가르침을 받고 머리가 탁 트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몇 구절 지어볼까 합니다만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욱원에 묻혀서 성왕을 즐겁게 해주고
위천의 1천 무 대나무밭 이름을 떨치네.
푸른 대나무 상비의 눈물에 묻히지 않고
반탁의 향기는 한나라 역사를 전해주는가?
서리 맞은 잎사귀 그 빛깔 변함없고
안개 속의 우듬지 그 자태 여전하네
자유가 세상 뜨자 알아주는 이 없고
예로부터 그 이름 지필에 실었더라.”
삼장 : “아! 신선님들의 시는 참으로 주옥같은 걸작들입니다. 저는 오직 감탄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젠 밤도 퍽 깊었고 저의 세 제자가 지금 어디서 절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군요. 전 더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부디 제가 돌아갈 길이나 알려주십시오.”
고직공 : “허허허, 너무 염려 마십시오. 서로 이렇게 만나기도 어려운 데다 밤이 깊었다고는 하지만 달이 밝아 대낮과 다름없으니 좀 더 앉아 계십시오.”
경절 : “그러시지요. 날이 밝게 되면 영 넘어 멀리까지 전송해드리지요. 틀림없이 제자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돌집 바깥으로부터 푸른 옷을 입은 두 동녀가 한 선녀를 안내해 들어왔습니다. 그 선녀가 손에 살구꽃 한 가지를 들고 살포시 웃는 얼굴로 문 안에 들어서니 네 노인은 몸을 일으켜 인사를 하였습니다.
십팔공 : “아니 행선께서 무슨 일로 이렇게 오시는지요?”
행선 : “귀한 손님이 오셔서 함께 시를 읊으신다기에 일부러 찾아 떠난 걸음이에요. 부디 한번 만나 뵙게 해주실 수 없겠어요?”
십팔공 : “그분이 지금 여기 계시니 어서 만나보시지요.”
삼장은 허리를 굽혀 보일 뿐, 감히 말을 못했습니다.
행선 : “얘들아! 빨리 차를 대접해 올려라!”
선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노란빛 옷을 입은 두 동녀가 붉은 칠을 한 쟁반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 쟁반에는 여섯 개의 찻잔이 놓여있고, 찻잔마다 몇 가지 기이한 과일과 숟가락이 하나씩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살포시 웃음을 띤 선녀가 차를 따르니 향기로운 차향이 흘러나와 코를 찔렀습니다.
행선 : “오늘 밤 시흥에 겨워 매우 즐거우신가 본데 좋은 글귀를 한두 구절 가르쳐 주시지 않겠어요?”
불운수 : “우리네 시구래야 조잡하고 속된 것들이지만 저 성승의 시구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당나라의 걸작들이었습니다.”
행선 : “만약 가르쳐 주어도 무방하시다면 저에게 한번 보여주실 수 없을까요?”
네 노인은 삼장이 방금 읊은 시들과 선법강론을 선녀에게 들려주었고 선녀는 듣고 나서 희색이 만면해 일동에게 말했습니다.
행선 : “전 워낙 재주가 없어 내놓을 주제가 못됩니다만 그리 훌륭한 시구를 듣고 나니 그저 지나쳐 버릴 수가 없군요, 저도 한 수 읊어볼까 합니다.”
“한나라 무제 때부터 이름을 날려
주나라 때는 공자가 행단을 세웠었네
동선은 나를 사랑해 숲을 이루었고
손초는 일찍이 한식향을 아꼈거니
붉은 자태 비에 젖어 더욱 아름답고
짙은 안개 푸른 빛 드러냈다 숨기네
스스로도 농익으면 신맛 난다고
해마다 보리 털 때면 떨어진다네.”
십팔공 : “어허, 좋구먼”
고직공 : “으흠 아주 좋은 시구로구나”
능공자 : “청아해 속된 티를 벗어났고 구절마다 봄맛이 다분하군요.”
불운수 : “‘붉은 자태 비에 젖어 더욱 아름답고’라 참말로 그럴듯합니다.”
선녀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아양을 떨었습니다.
행선 : “아이참 부끄러워요! 부디 주옥같은 글귀를 제게 한 수 지어 주지 않으시겠어요?”
삼장이 감히 대답조차 못 하고 있는데 선녀는 연모의 정에 넘쳐 차츰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더니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행선 : “존귀하신 손님! 이리 좋은 밤에 놀지 않으면 언제 노시겠어요? 인생이 길면 얼마나 길다고 그러세요?”
십팔공 : “행선이 저리도 경모의 뜻을 품고 있는데 굽어살피지 않으셔야 하겠습니까? 귀엽게 여겨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풍류를 모르는 거로 되니까요.”
고직공 : “성승님은 도통하고 저명한 분이시니 결코 일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만일 행선께서 의향이 있으시다면 불운수와 십팔공이 중매를 서고 저와 능공자가 보증인이 되어 이 혼인을 성사 시키는게 어떻습니까?”
삼장은 그 말을 듣자 대뜸 얼굴빛을 달리하며 벌떡 일어나서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삼장 : “당신들은 모두 사악한 무리이오. 어찌 나를 이토록 유혹하는 거요? 처음엔 심오한 도를 닦고 수양할 얘기만 나눈다더니 어찌 이젠 미인계로 날 유혹하느냐 말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짓들이오?”
삼장이 화를 내는 바람에 네 노인은 저마다 손가락을 깨물며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알몸뚱이 귀졸이 펄펄 뛰었습니다.
귀졸 : “아니, 이 스님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구먼! 우리 누님이 어디가 부족하오? 인품과 재능이 뛰어난 데다 인물이 또 얼마나 훌륭한가 말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하겠소? 내 대신 혼례의 주례인이 돼 드리겠소.”
삼장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얼굴이 파래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달래고 구슬려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귀졸 : “여보시오 스님! 우리가 좋은 말로 권하는데도 왜 듣질 않소? 만일 우리가 화를 낼 경우엔 당신을 채어다 중노릇도 못 하고 장가도 못 들게 만들어 놓겠소. 그럼 스님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도 없이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게 될 게 아니오?”
삼장 : ‘나의 제자들은 지금 어디서 날 찾고 있는 것일까…?’
삼장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러자 선녀는 웃음 띤 얼굴로 삼장 곁으로 다가가 푸른 빛 소매 속에서 귤빛 비단 손수건을 끄집어내어 삼장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행선 : “여보세요, 손님! 번민하실 것 없어요. 제가 모시고 놀아드릴 테니 가자고요.”
삼장 : “이게 무슨 짓들이오!”
삼장은 호통을 치며 몸을 빼 그곳에서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그러자 정령들이 다시 그를 붙잡아 실랑이하고, 그러는 동안 어느덧 날이 밝아왔습니다.
별안간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공 : “스승님, 지금 어디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팔계 오정 : “스승님 스승님! 어디 계신 겁니까?”
제자들은 밤새도록 가시덤불 속을 헤치며 삼장을 찾고 있었는데, 구름을 타고 8백 리나 되는 형극령을 넘어 서쪽으로 오고 있을 때 문득 삼장의 호통 소리가 들려 와 다급히 소리쳐 불렀던 것이었습니다.
삼장 : “제자들아! 난 여기 있다. 빨리 날 좀 구해다오!”
그러자 네 노인과 귀졸, 선녀와 동녀들은 형체가 흐늘흐늘해지더니 이내 없어졌습니다.
오공 : “스승님, 어떻게 이런 곳에 와 계십니까?”
삼장 : “제자들아, 너희들이 고생이 많았겠구나.”
삼장은 제자들의 손을 거머잡으며 토지신에게 납치당해 밤사이 시를 지어 읊었던 것과 자신의 용모를 보고 부부의 연을 맺자고 해 실랑이를 벌인 사연까지 상세히 말하였습니다.
오공 : “스승님이 그들과 얘기도 나누고 시도 읊으셨다면 그들 이름이라도 물으셨겠지요?”
삼장 : “그들은 십팔공으로 호는 경절이라더구나. 또 고직공, 능공자. 불운수라 했다. 그 여자는 행선이라 불렀단다.”
팔계 : “어디 괴물들인데 어느 방향으로 도망쳤습니까?”
삼장 : “그들이 어디로 갔는진 잘 모르겠다만 우리가 서로 시를 읊조리던 곳은 예서 그리 멀지 않다.”
세 제자가 삼장과 함께 낭떠러지 밑에 와보니 그 위에 ‘목선암’이란 세 글자가 큼직하게 씌어 있었습니다. 오공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는 해묵은 전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각각 한 그루씩 서 있고 대나무 뒤에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낭떠러지의 저쪽에 또 해묵은 살구나무 한 그루와 새양나무 두 그루, 박달목서 두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오공 : “(웃으며)넌 요괴를 꿰뚫어 보았느냐?”
팔계 : “아니 형, 보이지 않는걸.”
오공 : “넌 몰라서 그래. 바로 저 몇 그루의 나무들이 요정으로 변한 거야.”
오정 :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
오공 : “십팔공이란 소나무이고 고직공은 측백나무, 능공자는 전나무, 불운수는 대나무야. 그리고 벌거벗은 귀졸은 단풍나무고 행선은 살구나무, 동녀는 박달목서와 새양나무들이었어.”
오공의 말을 듣고 난 팔계는 다짜고짜 갈퀴로 찍고 길쭉한 입으로 뒤져 매화나무며 소나무, 살구나무며 단풍나무들을 모조리 쳐 넘겼습니다. 과연 그 나무들의 뿌리에선 선지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삼장은 급히 다가와 팔계의 소매를 끌어 잡았습니다.
삼장 : “얘, 오능아! 아서라! 상하게 해선 안 돼. 그것들이 비록 요정으로 변하긴 했지만 날 해치진 않았어. 우린 어서 갈 길이나 가자꾸나.”
오공 : “아닙니다. 스승님! 그들을 동정하실 건 없습니다. 행여 나중에 더 큰 요괴가 되어 사람들에게 우환거리로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공의 말에 힘을 얻은 팔계는 갈퀴를 휘둘러 아예 나무들을 몽땅 쳐 넘겨 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삼장을 말 위에 올려 태우고 큰길을 따라 서쪽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가는 길은 평탄할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주세요.
-2014년 10월 10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