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타라장에서 요괴를 없애니 선심이 안정되다(2)-87화
지난 시간 타라장의 요괴를 없애주겠노라 큰소리친 오공 앞에 세찬 바람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 요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삼장 : “어이쿠! 갑자기 무슨 바람이 이리도 거세게 부는 것이냐?”
노인2 : “아니 이 장로가 정말! 요괴 소리를 하니까 정말로 요괴가 찾아올 수밖에 없잖소.”
노인 : “자, 자. 빨리 빨리 안으로 들어들 오슈! 요괴가 왔소이다!”
그 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였고, 팔계와 오정도 겁을 먹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오공이 그들을 붙잡았습니다.
오공 : “너희들은 왜 이리 체신머리가 없느냐! 출가한 몸으로 내외의 구별도 없이! 가지 말고 섰거라. 나와 같이 뜨락에 나가 어떤 놈의 요괴인가 한번 보자꾸나.”
워낙 완력이 센 오공은 다짜고짜 그들을 끌고 뜨락으로 나갔습니다. 그 느닷없는 바람은 더욱더 사나워졌습니다.
팔계는 부들부들 떨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주둥이로 땅을 뒤지고는 입을 흙 속에 깊숙이 처박고 오정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쥔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오공은 바람 내를 맡아 보고 요괴인 것을 알아챘습니다. 어느 틈엔가 바람이 멎는 것과 동시에 공중에 등잔불 두 개가 나타나 껌벅거렸습니다.
오공 : “얘들아! 바람이 멎었다. 어서 일어나 보아라!”
팔계가 입을 땅에서 빼내 흙을 털고 하늘을 쳐다보니 허공에 등잔불 두 개가 달랑 달려 있었으므로 제풀에 헤식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팔계 : “헤헤, 이거 재미있는데! 원래는 지나가던 요괴였었군. 저런 요괴라면 사귀어 볼 만도 해!”
오정 : “아니 형, 이렇게 어두운 밤중인 데다 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처지에 어떻게 좋고 나쁜 것을 안다고 그래?”
팔계 : “옛사람들은 밤길에는 등불을 켜들고 등불이 없이는 가지 않는다고 했어. 저것 보렴. 한 쌍의 초롱불이 길을 비추고 있는 거니까 반드시 좋은 놈일 거란 말이야.”
오정 : “형은 잘못 보았어. 저건 등불이 아니라 요괴의 두 눈알이 껌벅이고 있는 거야.”
팔계 : “아이쿠 맙소사! 눈알이 저렇게 클 적엔 입은 얼마나 클지 모르겠구나.”
오공 : “겁낼 것 없다. 너희들은 스승님을 잘 보살펴 드리고 있거라. 내 가서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가 알아보고 오마.”
오공은 휘익 몸을 솟구쳐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금고봉을 비껴들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오공 : “게 섰거라! 넌 어디 있는 요물이냐?”
오공을 발견한 요괴는 아무 대답도 없이 이내 몸을 가누고 긴 창을 마구 내흔들었습니다. 오공이 다시 한번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고 창만 내두를 따름이었습니다. 오공은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오공 : “원래는 벙어리 요괴였구나. 이놈아, 어디 내 몽둥이맛이나 봐라!”
오공과 요괴는 공중에서 오가며 삼경 무렵이 되도록 싸웠지만 좀처럼 승부가 결판나지 않았습니다. 팔계와 오정이 그 싸움을 지켜보니, 요괴는 공격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공의 금고봉은 줄곧 요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팔계 : “오정아. 넌 여기서 스승님을 모시고 있거라. 내 올라가 저놈을 족치고 올 테다. 저 원숭이 녀석이 혼자 공을 세우게 해서야 되겠느냐?”
그리고는 구름 위로 뛰어오르기 바쁘게 갈퀴를 들고 요괴를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요괴는 또 하나의 긴 창을 내들고 팔계의 갈퀴를 막아섰습니다. 두 자루의 날창은 그야말로 번개같이 눈앞에서 번쩍거렸습니다.
팔계 : “저놈이 창끝을 번쩍이며 우릴 막아내는데 창 자루가 보이질 않으니 어디다 숨긴 건지 모르겠어.”
오공 : “저놈은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거로 보아 인도에는 들어서지 못하고 음기가 아주 많은 것 같구나. 그러니 날이 밝아 양기가 성해지면 저놈은 반드시 도망칠 거다. 우린 저놈이 도망칠 때 놓치지 말고 뒤쫓아 가야겠다.”
한동안 그렇게 싸우고 나니 동녘이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요괴는 더 싸울 엄두도 못 내고 고개를 돌려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오공과 팔계는 함께 뒤쫓아갔습니다. 그런데 문득 지독한 악취가 풍겨 와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로 칠절산 희시동이 아니겠어요?
팔계 : “에고 에고, 이거 정말 냄새가 지독하게 구리구만!”
팔계가 투덜거리자 오공은 손으로 코를 감싸 쥐며 재촉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괴는 산 하나를 넘어가서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니 바로 한 마리의 붉은 빛 구렁이였습니다.
눈에선 별빛이 일고 코로는 안개를 내뿜는데 촘촘한 이빨은 칼날같이 날카로운데 꼬부라진 발톱은 말린 새우처럼 굽었구나. 땅 위에 서리면 비단이 불같이 보이고 공중에 날면 무지개로 착각하게 한다. 엎드려 쉴 적엔 비린내 하늘에 사무치고 움직일 땐 구름에 싸여있다. 굵기는 사람의 키를 넘고 길이는 산 밑을 가로지른다.
팔계 : “우와! 원래는 구렁이였구나! 저놈은 한 번에 사람을 5백 명쯤은 삼킨대도 배가 차지 않겠는걸!”
팔계가 달려가 구렁이를 갈퀴로 내리치자 황급히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아직도 일여덟 자나 되는 꼬리가 남아있었으니 팔계가 손으로 구렁이의 꼬리를 휘어잡으며 소리쳤습니다.
팔계 : “형, 형! 붙잡았다. 붙잡았어.”
오공 : “얘, 팔계야. 달리 방도가 있으니 그냥 들어가게 놔두거라.”
팔계가 손을 풀어놓자 구렁이는 완전히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오공 : “굴속이 좁아 놔서 몸을 돌리지 못하고 반드시 뒤쪽 굴 문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니 넌 뒤쪽 어귀로 달려가 지키고 있거라. 내 앞쪽에서 족쳐댈 테니까.”
팔계는 오공의 말을 듣곤 곧바로 산을 넘어가 보니 산 밑에 구멍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공이 금고봉으로 마구 굴속을 쑤셔대니 요괴는 견디다 못해 뒷문으로 빠져나오고 미처 방비가 없었던 팔계는 요괴가 후려치는 꼬리에 얻어맞고 땅 위에 쓰러졌습니다. 어찌나 아픈지 일어날 수가 없어 그대로 죽은 듯이 누워있었습니다. 오공이 뒤쫓아 나와 그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었습니다.
오공 : “팔계야, 그만 일어나. 어서 뒤쫓아가도록 하자.”
두 사람이 골짜기를 건너 뒤쫓아가자 구렁이는 냉큼 똬리를 틀고 대가리를 위로 솟구치며 엄청나게 큰 아가리를 벌려 팔계를 한입에 삼켜버리려 했습니다. 팔계는 덴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고 오공이 오히려 구렁이 앞으로 다가가 자기를 통째로 삼켜버리게 했습니다. 팔계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부르짖었습니다.
팔계 : “아이고 형! 이게 웬일이야?”
오공은 요괴의 뱃속에서 철봉을 세워 들곤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오공 : “팔계야.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이놈더러 구름다리를 만들어 놓게 해 보이마!”
요괴는 똬리를 풀고는 허리를 구부려 무지개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오공 : “내 이번엔 한 척의 배가 되게 해 보이마.”
오공이 철봉으로 구렁이의 뱃가죽을 내리 짚자 요기는 배를 땅에다 붙이고 머릴 앞으로 쳐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한 척의 배와 같은 형상이었습니다.
팔계 : “형, 돛대가 없으니 바람을 탈 수가 없잖아?”
오공 : “그렇담 조금 물러나 보아라. 내 이놈더러 바람을 탈 수 있게 해놓을 테니.”
오공이 금고봉을 들어 구렁이의 등을 힘껏 올려 찌르자 대여섯 장이나 되게 긴 금고봉이 밖으로 빠져나와 마치 돛대와 같이 되었습니다.
구렁이는 아픔을 참다못해 앞으로 미끄러져 가는데 바람보다도 더 빨랐습니다. 오던 길로 되돌아 산에서 내려간 구렁이는 20여 리가량 더 가서 흙먼지 속에 쓰러져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숨이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한편 타라장의 노인들은 삼장에게 말했습니다.
노인 :“두 제자가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는 거로 보아 틀림없이 잘못된 것 같소.”
삼장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 밖으로 좀 나가 보실까요?”
얼마 안 있어 오공과 팔계가 엄청나게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끌고 으쓱거리며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근심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이에 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찾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를 표하며 서로들 자신의 집으로 청해 대접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즐거운 마음으로 길에 올라 한동안 걸어가는데 어느덧 칠절산 희시동 어귀에 이르렀습니다. 지독하게 풍기는 악취와 길이 미어지게 쌓여있는 오물을 보자 삼장은 오공을 돌아다보았습니다.
삼장 : “오공아, 이런 곳을 어떻게 지나가겠느냐?”
오공 : “(손으로 코를 감싸며)이건 정말 어렵겠는걸요.”
삼장은 오공마저 어렵겠다는 말에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노인 : “염려 마십쇼. 저희가 어떻게든 길을 새로 내더라도 바래드리겠습니다.”
오공 : “아니 이 산은 둘레가 8백 리나 된다고 했고 당신들은 우임금의 신병도 아닌데 이런 산을 뚫고 길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역시 우리가 힘을 써야지 성사될 듯하군요.”
삼장 : “오공아, 너희들이 어떻게 힘을 쓰겠다는 거냐?”
오공 : “이 길로 산을 넘어가긴 틀린거고 또 새로 길을 낸다는 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옛길로 지나갈 밖에요. 다만 우리에게 먹을 것을 대 줄 사람이 없을까 걱정될 따름입니다.”
노인 : “아니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마시오. 우리가 먹을 것 하나는 책임지겠습니다.”
오공 : “그럼 어서 돌아가 쌀을 두어 섬 내다 밥을 짓고 떡도 얼마간 쪄 가지고 오십시오. 우리네 이 입이 큰 사람이 배불리 먹고 나서 돼지로 변해 길을 파헤칠 겁니다. 그럼 우린 스승님을 말에 태워 모시고 지나갈 수 있게 되지요.”
팔계 : “형. 뭐라는 거야? 그럼 다들 손 하나 까딱 않고 나만 창피를 당하게 하는 거야?”
삼장 : “오늘아. 너에게 재간이 있어 길을 열어 내 이곳을 지나가게 된다면 이번엔 너의 공로를 첫 자리에 놔주마.”
삼장의 말에 팔계는 입을 헤 벌리고 웃었습니다. 팔계는 주문을 외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어느새 큼직한 돼지로 변했습니다. 그것을 본 오공은, 마을 사람들을 시켜, 가져온 음식을 한곳에 모아놓게 하고는 팔계더러 배불리 먹게 했습니다. 그 힘으로 팔계는 쉬지 않고 길을 내었고 삼장 일행은 그 뒤를 따라 한발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팔계가 열을 내 오물길을 헤치니
삼장의 정성에 천신들이 도와주고
오공의 법력에 요괴들이 쓰러지네.
일천 년 희시동 하루아침에 깨끗해지고
칠절산 골목길 이제야 열리는가
육욕의 먼지 모조리 털어버리고
거침없이 연화대에 배례하리라.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2024년 10월 10일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