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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제19회 제2장 체계적인 사상개조 - 4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4
2007-10-16 06:38:06 | 조회 7826
해체 공산당문화(원작: 해체 당문화) 제 19회
제2장 제4절 체계적인 사상개조 -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제4절 진화론과 현대과학을 주입
6) 과학자의 신앙은 과학기술성취에 방해되지 않아
장쩌민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대통령 클린턴에게
“미국은 과학이 이렇게 발달했으면서
왜 또 이렇게 많은 종교와 신앙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중공의 당 두목 자체가 우매하고 무지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사실 중국인들 역시 마땅히 중공에 다음과 같이 물어보아야 합니다.
‘중공이 정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현대과학을 주입하고
소위 ‘과학무신론’을 수십 년 동안 선전해 왔으면서도
왜 13억 인구의 대국에서 아직까지
단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는가?
해외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화인(華人)들은
오히려 중공의 세뇌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 이유는 바로 중공이 현대과학을 주입한 목적이
중국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앙을 탄압하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창조에 필요한 것은 바로 자유로운 사상환경입니다.
하지만 중공의 주입방식은 도리어 과학과 신앙을 극력 대립시키고
민중들의 머릿속에
신에 대한 신앙은 반드시 ‘우매(愚昧)’와 ‘반과학(反科學)’을 초래하며
종교 신도들은 모두 아무런 교양도 없으면서
단지 마음의 위로만을 얻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이 발전하던 시기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데카르트(René Descartes), 갈릴레이(Galileo Galilei), 뉴턴(Isaac Newton)을 포함하여 모두
자신들이 절대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인정했으며,
이 세계는 신이 만들었기에 법칙이 있고
단지 과학자들은 그 법칙을 발견하고 실증하기만 하면 된다고 보았습니다.
과학연구와 개인의 신앙은 공산당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물과 불같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가 아닙니다.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상당수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바로 종교를 신앙하는 ‘유신론(有神論)’자라는 점입니다.
가령 현대 과학의 초석을 다진 케플러(Johannes Kepler),
근대화학을 창립한 보일(Robert Boyle),
전기분해의 원리를 발견한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전보를 발견한 모오스(Morse),
열당량을 발견한 줄(James Prescort Joule),
전자기학 이론을 집대성한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원자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돌턴(John Dalton),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다진 멘델(Gregor Johann Mendel),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Alexander Fleming),
미생물학을 창시한 파스퇴르(Louis Pasteur) 등은 모두 독실한 종교 신자였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할 만한 사람은 고전 물리학의 거장인 뉴턴(Isaac Newton)입니다.
뉴턴은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중공은 온 세상이 공인하는 이 사실을 감출 방법이 없자
교과서에서 일부러 뉴턴이 만년에 종교에 입문하여
이 때문에 새로운 창조가 없었다고 사람들을 오도했습니다.
그가 젊을 때 많은 과학적 발견을 한 것은
‘무신론’적 세계관의 지도 하에 한 것이며
만년에는 종교 때문에 과학적 창조에 장애를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뉴턴이 경건한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과학연구에 종사하기 훨씬 이전부터였고
아울러 그의 신앙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습니다.
뉴턴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이미 경건한 기독교 신자였고,
그는 늘 노트나 교과서 여백에 자신의 기도를 적곤 했으며
지금도 대영박물관에 많은 것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그는
늘 자신의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밖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경’ 책을 나눠주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때문에 방세와 식비를 제외하고,
학생시절 뉴턴이 가장 많은 지출을 한 것은 성경 구입비용이었습니다.
심지어 과학에 대한 사색 역시
뉴턴 자신의 기도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신앙의 사색 속에서 과학을 생각했으며
과학의 사색 속에서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뉴욕대학 역사학부 교수 메이슨은 자신이 저술한 ‘뉴턴 전기’에서
“근대 과학은 하느님에 대한 뉴턴의 묵상에서 나왔다.”라고 서술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해리어트 주커만(Harriet Zuckerman) 교수가
1977년에 저술한 ‘과학 엘리트 :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Scientific Elite; Nobel Laureates in the United States)’이란 책의 통계를 보면
1901년 노벨재단이 설립된 이후
미국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286명 중에서
73%가 기독교 신자였으며 19%는 유태교 신자였습니다.
저명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파인만은 일찍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믿지만 또 하느님도 믿는다.
양자 사이는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항공우주과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주의 끝없는 신기는 조물주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신앙을 실증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우주의 존재 배후에 초월적 합리성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는,
과학의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다.”
7) 실증과학은 우주법칙을 탐구하는 유일한 방식 아니다
1994년 3월 1일 진시황의 병마용 2호 갱이
정식으로 발굴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2호 갱 안에서 8개의 모서리가 있는 청동 검을 발견했고,
슬라이드 캘리퍼스로 그 청동 검의 8개 모서리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모서리간 오차가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작았습니다.
이미 출토된 19개의 청동 검도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것들이 황토 속에서 잠든 지 20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출토 당시 완전히 새것과 같았으며
칼날도 예리하기 그지없었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이 측정해 보니 검의 표면에는 10mm 두께의 크롬화합물이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전 세계를 진동시켰습니다.
왜냐하면 ‘크롬산화물’을 처리하는 방법은
비교적 최근에야 나타난 아주 선진적인 기술로,
독일에서는 1937년, 미국에서는 1950년 이후에 발명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고학자들은 진시황 1호 갱을 정리하던 중에
150kg의 흙으로 만든 인형인 도용(陶俑)에 눌려있던
청동 검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 청동 검의 휘어진 정도는 45도를 넘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용을 옮긴 후에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가늘고 얇은 청동 검이 단번에 곧게 펴졌으며
자연스럽게 원래 모양을 회복했던 것입니다.
현대 금속학자들이 꿈에도 그리던 ‘형상기억합금’이
2000여 년 전의 고대 묘 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1980년대의 과학기술문명이 무려 기원전 200여 년에 이미 존재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 신기한 주조기술이 실물로 남겨지지 않았고
단지 중국의 고서에 그 기록만 남아있으며
아울러 20세기 초의 인류처럼 이와 유사한 기술을 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서의 기록만을 보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중공 당문화의 소위 중국 고대문명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는 관점에 따른다면
현대인들도 발명할 수 없는 기술이 고서에 나온다면
틀림없이 ‘미신’이나 ‘예술적인 상상’으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사이비 과학에 반대’하고
‘거짓을 타격’한다는 어용학자들은
고서의 문장을 인용하며 황당한 오류라고 논증할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중공이 장기간 주입한 현대과학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대 실증과학만을 유일한 진리로 떠받들게 하여 굳어진 사유표현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현대과학이 아직 탐구하지 못한 영역이나
해석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률적으로 배척하거나 심지어 ‘사이비 과학’,
‘미신’이란 모자를 씌워 심하게 공격합니다.
중국 고대의 과학기술은 서양 실증과학의 길을 걸어가진 않았지만
이 때문에 그것이 황당무계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앞서 언급했던 가정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의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남겨준 문화유산 중
‘미신’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부분들 가운데에는
분명 현대과학이 인식할 수 없는 고대문명의 정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고대 한의학에서 경락(經絡)의 발견, 침구(鍼灸)의 발명은
현대 과학에서도 이미 피부 전기저항 등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경락과 혈위(穴位)의 객관적인 존재를 실증했고,
한의학의 역할 역시 이미 세계보건기구의 승인을 받았으며
아울러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체의 경락과 혈위는 일종의 생명 특징으로
단지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만 체현되며,
경락의 운행은 사람의 정신작용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울러 해부학적인 구조의 특징을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실증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방법을 채용한다면,
이러한 경락과 혈위는 아예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옛사람들이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의 오행상생과 상극을 이용하여 발견한
혈위의 개합(開合)과 에너지가 시간에 따라 흐르는 법칙은
임상 치료에서 현저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해부학을 기초로 하는 서양의학에서는 더욱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중국 고대과학에서는 천인합일을 중시했으며
사람의 물질신체, 사람의 정신과 전반 우주를
유기적인 한 몸, 즉 일체(一體)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 자체의 정신활동이 연구대상이 되면
실증과학에서 요구하는 반복실험과정과 분해환원 등의 수단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실증과학이란 몽둥이를 휘둘러
중국 전통수련문화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은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상 정반대로 당문화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현대과학을 종교화, 권위화, 심지어 정치화하는 것입니다.
8) 실증과학의 한계
현대과학은 이미 인류 생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중공으로 하여금 아주 쉽사리 경직된 사유방식을 이용해 현대과학을 주입하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현대과학만이 진리이며,
‘비과학’적인 것은 바로 오류인 것으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과학, Science란 단어는 라틴어의 ‘Scientia’에서 온 것으로
원래는 ‘학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진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과학은 탐색과 우주법칙에 대해 끊임없이 접근하는 방법과
그 방법을 통해 형성된 지식체계를 가리킵니다.
현대과학은 형식논리와 실증적인 방법에 기초하여
물질세계의 법칙을 탐색하는 일련의 방법과 지식체계를 말한 것으로
여기서 우리가 실증과학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실증과학 역시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며
그것은 마땅히 수시로 새로운 사실의 검증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며
아울러 사람들의 인식능력과 사물의 발전에 따라 진화해 나갑니다.
따라서 현대 실증과학의 탐구방법이
우주 진리를 탐색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보증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은 빠르게 발전하는 동시에
점차적으로 인류에게 수많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가져왔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현대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실증과학의 철학적 기초는
완정한 세계를 두 개의 독립적인 범주로 구분하였는데
바로 물질과 정신입니다.
이를 통해 건립된 자연관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세계, 마음과 물질을 따로 분할합니다.
분할한 결과, 정신활동의 본질, 정신과 물질의 관계,
또는 물질에 대한 정신의 작용을 실증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졌습니다.
정신활동이 현대 실증과학의 시야 밖으로 벗어난 후,
도덕은 아무런 물질적 기초가 없는 순수한 설교로 변했고
사람과 자연 역시 더 이상 완정한 일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이 주도하는 과학 발전은
맹목적으로 자연과 대립했습니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촉발하였고,
이 산업혁명이 가져온 대규모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시대는
200년 후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온실효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살충제 DDT의 인공적 합성은 작물을 병충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몇 년 후 살충제에 저항력을 지닌 병충해가 나타났고,
인류는 DDT에 오염된 음식을 먹어야 했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청소년들의 인체 내에, 심지어 모유 속에서도 DDT가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코카인은 임상에서 사용되는 국소마취제로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많은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를 마약으로 흡입하는 사람의 숫자가
천만에 달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심지어 코카인으로 훼멸시킨 생명이 그것이 구한 생명보다 많다는 말이
전혀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저 유명한 E=MC2이란 공식을 발견했을 때,
이 공식으로부터 유발된 ‘핵위협’이
몇 십 년 후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은 일종 강력한 도구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도구 자체에 달린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과학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인지는
과학 자체로서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사람 자신이 해결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난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전통 종교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만약 우리가 선지자들이 만든 유대교나
예수의 가르침에서 나온 기독교 중에서 나중에 더해진 모든 것들,
특히 전도사들이 견강부회한 그런 것들을 전부 제거해 버린다면,
그럼 남는 것이야말로
인류사회의 모든 폐단들을 치유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분명 정신과 물질의 분리로 초래된 현대 과학의 한계를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일반 민중들, 특히 중공 당문화의 주입을 받아
현대과학은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믿는 수많은 대중들은
아직도 현대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각종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미 이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열린 국제연합 환경개발회의에는
각국 대표단이 참가했는데,
12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서명한 편지가
회의장에 전해져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편지에는 다음가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인류와 자연은 이미 강렬한 충돌 속에 있다.
인류의 활동은 환경과 주요 자원에 심각한 파괴를 초래했고
이런 파괴는 대부분 회복이 불가능하다.
만약 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많은 활동들은
장차 우리가 희망하는 인류사회와 생태계의 장래를
극히 위험한 경지에 처하게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런 생명세계의 변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방식의 세계를 유지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장차 도래할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활동을 본질적으로 개변해야 하고 이는 절박한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현대과학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과학의 한계를 지적하여 당문화가 조성한 오류를 분명히 하고,
중공이 현대과학을 주입한 진실한 목적이
바로 신앙을 압제하고 무신론을 주입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사상을 개조하려는 것임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중국 오천년 문화의 핵심은 신명(神明)을 경외(敬畏)하고
천명을 믿으며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을 믿어 하늘의 도리에 순응함으로써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입니다.
중공은 ‘과학을 숭상’하고 ‘봉건미신을 타파’한다는 큰 깃발을 치켜들고
이런 핵심가치들을 일률적으로 ‘봉건 찌꺼기’로 폄하해 버렸습니다.
동시에 아직 입증되지도 않은 진화론을 주입하고
단편적이고 종교화된 현대 실증과학을 수단으로 삼아
폭력에 의지한 잔혹한 정치투쟁으로
무신론과 투쟁철학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중공은 오늘날 겉으로는 외관을 꾸며
어쩔 수 없이 전통문화를 보급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통에 어긋나는 무신론을 계속 중국에 주입함으로써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신에 대한 신앙을 ‘우매한 미신’인 것으로 조롱하게 하였습니다. 중공이 아무리 많은 사찰을 짓고
아무리 많은 ‘공자학원(孔子學院)’을 세울지라도,
아무리 ‘8영8치(八榮八耻)’와 ‘조화사회 건설’ 등의 솔깃한 구호를 외칠지라도
중국문화의 신운(神韻)은 이미 중공에 의해 말살되었습니다.
이렇게 내재적인 핵심가치를 상실한 문화형식은
단지 뿌리 없는 나무에 불과할 뿐입니다.
중공은 폭력의 위협에 의지해 ‘무신론’으로 사람들의 사상을 강제로 개조하여 하늘과 신을 존경하고 자연을 본받는 전통문화의 뿌리를 뽑아놓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사회질서는
단지 노인들에게 남아 있는 약간의 전통 도덕관념이 유지되는 것 외에
신앙이 없는 도덕과 문화, 횡행하는 물질주의, 공리주의 그리고 방임주의에 의해 언제든지 철저히 훼멸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중국의 아름다운 덕(美德)은 모조리 씻겨나가
텅 비어 버렸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신앙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생명의 가치를 찾지 않고
인격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거리낌도 없고,
남은 것은 오직 ‘당장 폼 나게 살고’,
감각을 만족시키며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중공이 사상을 개조한 결과
중국인들의 마음은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렸고
중화 민족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자하는 입명(立命)의 토대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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