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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제23-1회 제3장 주입수단 - 제1절 선전기구를 틀아쥐고 당문화 보급 3
2007-11-24 05:17:26 | 조회 7463
3) 상용하는 주입 수법
(가) 천지를 뒤덮는 주입으로 현실 세계와 철저히 단절
미국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허구 세계 속에서 생활합니다.
이 세계는 시추에이션드라마 극장으로
스토리는 바로 트루먼의 24시간 생활입니다.
이 허구의 세계 속에는 진실한 세계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트루먼은 이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이 세계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조차 갖지 않습니다.
정치학에서는 중공과 같이 사회를 전(全)방위적으로 통제하는 정권을
‘전권식 정권(全權式政權)’이라고 합니다.
이런 정권이 존재할 수 있는 선결조건은
반드시 이 정권에 유리한 허구적 정보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중공은 이런 이치를 누구보다 잘 알아
오랫동안 허구적인 정보환경을 창조하고 유지해 왔습니다.
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채
진위(眞僞)와 선악(善惡)을 판단할 기준이 되는 체계를 잃게 되었습니다.
중공 통치 하의 중국인들은 모두 ‘트루먼 식’의 허구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공은 또한 짧은 시간 내에 신속하게 허구적인 정보 환경을 만들어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그 예로서, 99년 7월 20일 이후
중공은 모든 선전기구를 총동원하여 파룬궁을 모함했습니다.
불과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중공 간행물에서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판하는 문장이 무려 30여 만 편에 달했습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학교수업, 각종 회의, 집회, 대자보, 표어 등 다른 선전 도구들도 마찬가지로 파룬궁 비방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로써 아예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지 않는 이상
중공의 세뇌 선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 끊임없는 반복주입으로 거짓을 진리로 날조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Joseph Goebbels)은 일찍이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중공은 이 말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계급투쟁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강조해야 한다.”
“마오 주석의 책은 날마다 읽어야 한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작은 신문은 큰 신문을 베끼고
큰 신문은 린뱌오 비판 운동에 앞장섰던 량샤오를 베낀다.” 와 같은 구호들이 그 예입니다.
중공은 거짓말을 천 번, 백번 반복하여
사람들에게 뿌리 깊은 관념을 형성하게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이런 관념들이
자신의 사고를 거쳐 얻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선전과 반복은 흔히 반감과 풍자를 초래합니다.
하지만 중공은 사람들의 반감과 풍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이런 초급 적으로 보이는 주입수단을 사용하면,
사람들에게는 “중공의 속임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그렇다면 굳이 작은 일을 크게 만들 필요 없이
그것과 견해를 같이 하자.”라는 심리가 생기게 됩니다.
중공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은 노련하고 통달해서
쉽게 믿지 않고 주관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선전이 반복되면, 중공의 어휘, 개념, 표어, 구호와 사유방식이 강제로 사람들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사람들의 자발적인 정서와 판단을 대체하게 됩니다.
당신이 이런 어휘와 개념으로 사고하기만 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결론이란 오직 ‘당’이 허락하는 결론일 뿐입니다.
당신이 민주화운동인사들을 ‘민운분자(民運分子)’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그들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이 ‘해방’, ‘신중국(新中國)’과 같은 단어들을 사용한다면
당신은 중공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중공을 ‘당’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이 악당이 중국을 불법으로 점거한 것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문화혁명을 ‘큰 겁난’이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중공의 암시를 받아들여
문화혁명이란 재난이 생긴 것은
모종의 초자연적인 신비한 힘에 의한 것으로 여기게 되어,
문화혁명과 중공 폭정이 그다지 연관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당신이 실직한 노동자를 ‘샤강(下崗) 노동자’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곧 자발적으로 중공의 선전 책략에 협력하여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는 단지 샤강만 존재할 뿐
자본주의와 같은 실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실업은 늘 파산, 유랑, 기아, 자살이 연상되지만
샤강에는 도리어 늘 새로 출근하게 될 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의 말을 들어보고
중문 토론방의 분노한 청년들의 글을 보면 모두가 당의 언어입니다.
이를 통해 판단해보면
중공의 반복적인 주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 민의(民意)를 왜곡하고 권위에 호소해 심리적인 공세 취해
중공은 인민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박탈한 이후,
더 나아가 자신이 최대다수 민중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이를 통해 선전의 고지를 점거하고
사람들의 군중심리를 이용해
인민들에게 왜곡된 논리와 거짓말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습니다.
1957년 반우파 운동 중에
신문과 잡지에는 온통 “노동자계급의 발언”,
“전국 각 민주당 파들이 모두 공산당과 함께 일어나 우파를 토벌”,
“전군(全軍) 지휘관과 장병들 분노의 성토”,
“소수 우파들 인민 군중들에게 거듭 포위당해”,
“우파는 한줌의 쓰레기에 불과하며
절대다수 지식인들은 당과 한마음” 과 같은 구절들이 게재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우파분자’들은 인민 군중의 ‘망망대해’에 포위당했고
“오로지 고분고분할 뿐 함부로 말하거나 움직일 수 없었다.”
중공이 벌인 매 차례 정치운동은
모두 당, 정, 군, 노조, 공청단 위원회를 포함한 각계 인사들에서부터
일반 노동자, 농민들의 ‘폭로 비판’, ‘성토’, ‘고소’에 이르기까지
마치 온 국민들이 태도를 표시해 지지하는 듯한 가상을 조작합니다.
반면에 독립적인 견해를 지닌 인사들은 ‘소수파’란 심리적 열세 속에서
설령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감히 꺼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조차 믿지 못합니다.
중공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 발기한
소위 ‘백만 명 서명’은
이전의 ‘날조된 민의(民意)’와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날조된 민의’ 외에도 중공의 심리전 속에는
‘권위에 호소’하는 수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많건 적건 어느 정도 ‘권위를 숭배’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전문가’, ‘교수’, ‘학자’의 말은
일반 소시민들의 말보다 무게가 있고
중공 관원의 말보다는 중립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중공 통치하에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전문가’, ‘학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있다하더라도 중공 매체에는 다가갈 수 없습니다.
어용 ‘이론가’, ‘과학자’들은 멋진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가
‘당’에서 선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학술적인 언어로 보기 좋게 포장합니다.
인민대중들은 ‘당’과 ‘전문가’가
미리 짜고 연기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당문화 선전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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