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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공산당문화] 제21회 제3장 주입수단 - 제1절 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1
 
  
2007-10-27 00:50:59  |  조회 6939
1.선전기구를 틀어쥐고 당문화 보급


총과 펜은 공산당의 양대(兩大) 생명선입니다.
레닌은 일찍이 이런 종류의 투쟁수단을
‘테러리즘’에 ‘이데올로기’를 더한 것이라고 개괄한 적이 있습니다.
중공은 소련 공산당의 사악한 유전자를 계승했지만
‘기만(騙)’이란 구결은 오히려 소련보다도 더 자유자재로 사용했습니다.
류사오치(劉少奇)는 1951년에 있었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직언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당은 처음 건립될 때부터 전당(全黨)이 선전에 나섰다….
앞으로는 더욱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중공의 선전기구는 중공이 민중들을 세뇌하고
당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했습니다.


1) 정치 운동과 일상 시기

(가) 정치 운동 중의 주입
중공정권은 끊임없는 정치운동을 벌입니다.
그 이유는 공산당의 소위 ‘당성(黨性)’이
인성(人性)과 완전히 대립되기 때문에
일단 환경이 느슨해지고 통제가 약화되어 외부 정상사회와 접촉이 증가하면
당원과 인민들의 인성이 복원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인성이 복원되면 중공은 ‘당심(黨心)’이 흩어지기 때문에
정권을 유지하기 힘든 국면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공이 선전기구를 이용해 당문화(黨文化)를 주입하는 것에도
정치운동과 일상시기 두 가지 정황으로 나눌 수 있으며,
어느 정황에서건 중공의 핵심 지도층은 모두
선전기구, 예를 들어, 간행물, 방송, TV 등에 대한 통제를
‘가장 큰 일’, ‘중점중의 중점(重中之重)’으로 여겼습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염라대왕전’이라고 불린 중선부(中宣部)가
공격을 받아 전국적으로 한동안 ‘무정부 상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에도 중공 핵심부는 중요 선전기구, 예를 들어 『인민일보(人民日報)』,『해방군보(解放軍報)』및『홍기(紅旗)』에 대한 통제를 느슨히 하지 않았습니다.

일상 시기에 중공의 선전 주입은
중공의 당 두목이 결정하면
정치국에서 결의하고
중선부가 관철시키며
각급 부서와 언론매체에서 집행하는 과정을 따릅니다.

그러나 위기 시에는 중공 당 두목이 흔히 일반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한 손으로는 매체를 통제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군대, 경찰, 특무계통을 통제합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먼저 처벌하고
나중에 구실을 만들어 기정사실로 만듭니다.
나중에는 ‘당성’으로 전 당원을 협박하여 사상과 여론을 통일합니다.
당성은 이렇게 매번 인성을 싸워 이기고
한 걸음씩 인성을 말살하는데
전체 당원과 전 사회가 ‘당’의 변태적 의지에 굴복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은 서로 다른 시기에 무대에 뛰어올라
직접 칼을 잡거나 혹은 그 의지를 대변하는 간행물에
사악한 글을 발표하여 정치운동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1957년 반우파(反右) 운동에서
마오쩌둥은 직접 『인민일보』에 사설을 써서
수백만 지식인들에 대한 엄밀한 숙청을 시작했습니다.
마오(毛)가 ‘양모(陽謀)’라고 부른 ‘반우파 운동’은
중국 지식인들의 독립적 사상과 자유 의지를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1989년 텐안먼 사건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성격을 규정한
‘4.26’사설 『반드시 선명한 기치를 들고 동란(動亂)에 반대해야 한다.』역시
당시 실질적 권력을 잡고 있던 덩샤오핑의 뜻이었습니다.

10월 25일 중공 사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프랑스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파룬궁(法輪功)을 ×교로 불렀고
이튿날 『인민일보』는 『‘파룬궁’이 바로 ×교』라는 문장을 발표했습니다.
장쩌민의 이지를 상실한 욕설은 이때부터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했습니다.

정치운동에서 중공의 선전 주입은 흔히
광적인 정치동원과 천지를 뒤덮는 여론공세를 동반합니다.
이런 대규모 여론공세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정보를 차단하여
사람들이 독립적인 사고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중공에서 발표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아울러 그것이 자신의 독립적 사고에서 비롯된 결과로 여기게 됩니다.
설사 깨어있는 사람들이 소수 있을지라도
중공의 폭력기구와 ‘군중독재’의 거대한 압력을 마주하고는
침묵을 지키고 맙니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공이 벌인 정치운동이 황당하고 가소롭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만약 당문화 주입이라는 각도에서 본다면,
이런 운동들은 아주 성공적으로 그 목적에 도달했습니다.
왜냐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의 주입을 통해
사람들은 어느 것이 자신의 정상적인 사상이며
어느 것이 중공이 주입한 관념인지 똑똑히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혁명과 고별’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혁명의 표면적인 형식과 고별한 것에 불과하고,
혁명의 당문화적인 내포는 오히려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는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어록가(語錄歌)’를 부르지 않고
‘충자무(忠字舞)’를 추지 않으며,
문장으로 공격하고 무장으로 보위한다는 문공무위(文攻武衛)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공의 정치운동이 강제로 주입한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투쟁철학은
중국인들에게 여전히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 없는
일반적 ‘진리(眞理)’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 것은 ‘봉건미신’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정신적 내포가 뽑혀 나간 전통문화는
문 앞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로 되거나
또는 돈벌이 도구로 전락했지만,
사람들은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중공의 ‘사상개조’가 성공한 것입니다.

10년에 걸친 문화혁명은 국민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아갔고
중공은 어쩔 수 없이 경제와 문화영역에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공 집단의 생존과 관련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는
지금까지 느슨해진 적이 없습니다.
덩샤오핑은 이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우리는 ‘손을 뗀 적이’ 전혀 없다.
물론 ‘손에 잡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05년 후진타오는 마치 압력솥처럼 봉폐되어 있는
공산독재 국가 쿠바와 북한을 아주 흠모하면서
그들이 “이데올로기에서는 줄곧 정확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형세에 따라 중공은 한편으로는 계속 엄수하고 차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에 따라 변해가며’ 주입 수단을 바꾸고 있습니다.

중공의 선전 책략은 더욱 정교하고 영활하며 기만적으로 되었습니다.
비록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공은 계속 ‘당을 바로잡고(整黨)’,
‘정신 오염을 제거’하며,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 ‘6.4 민주화운동 비판’, 파룬궁 탄압 등
일련의 운동을 전개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치운동 중에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공의 당문화 주입은 이미 주입 당하는 사람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하거나
심지어 달갑게 여기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나) 일상 시기의 주입은 중선부(中宣部)에서 총괄

‘선전’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세뇌, 기만과 연계되어 있으며
분명히 폄하하는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오로지 파쇼와 공산당의 사전에서만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뿐입니다.

예부터 현재까지 정치체제를 두루 찾아보아도
오로지 파쇼와 공산당 정권의 체제 속에만 ‘선전부(宣傳部)’가 있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자신의 국제적인 형상을 고려하여
선전부의 영문 명칭을 ‘공보부(Publicity Department)’로 고쳤지만,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중공 중앙의 직속 기구인 중선부(中宣部), 즉, 중앙선전부는
중공이 매체와 인민들의 정신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전문적인 조직입니다.

몇십 년 동안 중공은 공산당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이데올로기 영역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중공은 중선부를 통해 전 중국의 여론방향을 장악하고
‘당’의 의지를 전달하며
국가선전기구를 통해 민중에 대한 반복 세뇌 선전을 진행해 왔으며
전 국민의 사상을 중공 중앙의 의도로 통일시켰습니다.

중국에 있는 2천여 개의 신문사, 만여 개의 정기간행물, 천개가 넘는 라디오와 TV 방송, 몇 십만 개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모두 중선부와 각급 선전부의 관리 하에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중선부는 자신의 의지가 없습니다.
그것은 중공 중앙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로 삼아
중공의 집단생존을 목표로 하며
공산당의 이익을 근본으로 합니다.

중선부에서 하는 일이란 한편으로는 진실을 봉쇄하고 말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허상을 날조해 진실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먼저 중선부가 어떻게 진실을 봉쇄하여 말살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2년 6월 중선부는 뉴스매체에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모두 36가지를 ‘불허(不許)’하였습니다.
그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농촌 세금 개혁을 마음대로 보도함을 불허한다.”
“중대한 돌림병 상황을 보도하거나 전재하는 것을 불허한다.”
“중대한 안전사고에 대해 함부로 보도하는 것을 불허한다.”
“사영기업주(私營企業主)의 입당을 보도함을 불허한다.”
“각급 당위원회를 고소한 사건을 보도, 전재함을 불허한다.”
“가난한 자와 부자의 이익배분을 지나치게 선전함을 불허한다.”
“희망공정에 존재하는 문제를 보도함을 불허한다.”
“매체에서 ‘봉쇄하여 없앤다’는 단어를 쓰는 것을 불허한다.”
“언론을 제4의 권력 혹은 힘이라고 제기함을 불허한다.”
“잘못된 언론과 부정확한 관점을 싣는 것을 불허한다.”
“비평성이고 부정적인 보도를 집중적으로 함을 불허한다.”
“민족, 종교 등 영역에서 함부로 보도함을 불허한다.”
…….

중선부는 매년 각 성시(省市) 지역에
최소한 백여 차례의 통지 혹은 금지령을 전달합니다.
성시(省市) 일급 선전부는 매년 평균 230여 차례에 걸쳐
매체에 통지 혹은 금지령을 보내는데,
그중 가장 많은 금지령을 내보내는 곳은
상하이, 광둥(廣東), 쓰촨(四川),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후난(湖南), 허난(河南) 등입니다.

또한 이들 성시의 선전부는 매년 310여 차례에 걸쳐
관할 지역의 각 매체에 각종 금지령과 통지를 보냅니다.
다시 말해 이들 지역의 매체는 거의 매일 한 가지씩 금지령을 전달받습니다.

매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선부는 뉴스열람평가협조소조(新聞閱評協調小組)를 만들어
중앙과 지방의 주요 매체의 동향을 감독하고 정기적으로 상부에 보고합니다.

중앙에서 지방까지, 각급 선전부 혹은 뉴스국은
대량의 ‘뉴스 검토원’을 고용해
매체의 문장, 음반이나 비디오 제품 등의 ‘정치문제’를
전문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합니다.
중선부 뉴스국이 심사와 검토를 담당하는 출판물은
신문만 해도 백여 개에 달합니다.

여기까지 청취한 후, 일부 청취자들은
“중국은 나라가 크기 때문에 이런 보도 금지된 사건들을 제외하고도
보도할 만한 사건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공은 “하나만 공격하고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음”에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아침에 포상하고 저녁에 고치며 끊임없이 강령을 만들어
당이 좋아하지 않는 모든 언론에
‘착오(錯誤)’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금지령들은, 예를 들어,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된다.”
“과도하게 부풀리면 안 된다.”,
“착오적인 언론과 부정확한 관점을 실으면 안 된다.” 등과 같이
내용이 모호하고 규칙이 없어
더욱 큰 위협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지뢰를 밟을까 두려워,
할 수 없이 스스로에게 범위를 설정하여 좌우를 살핍니다.
매 사람이 자신의 뉴스에 대한 검사원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겨우 검사를 통과한 뉴스들은
“정치가 정확”하여 읽을 만한 가치도 없게 됩니다.

중선부는 또한 ‘진실’을 날조하여
인민들에게 허구적인 만족감과 안정감을 줌으로써
당의 안정성을 수호하는데 온갖 힘을 다 기울입니다.
화목, 반부패, 애국, 덩샤오핑의 소강(小康), 5개1호 문건, 3개 대표, 후진타오의 8영8치, 학습, 강화, 성적, 고거(高舉), 이정표, 선진성, 힘찬 전진, 위대한 승리 등등이 그 예입니다.

천지를 뒤덮을 듯한 당문화의 거짓 선전은
민중들을 중국의 진정한 현실로부터 격리시켰습니다.
실직 노동자와 농촌에서 도시로 들어온 민공(民工)들의 비참한 처지,
집을 강제로 철거당한 도시민,
탐오와 부패, 정경유착, 생태환경의 심각한 악화, 빠르게 추락하는 도덕과
끊임없이 악화되는 인권상황, 민족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두려운 현실 등을
완전히 국민들의 시야 밖으로 밀어내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약화시켜서
“발전 중의 문제로 진일보로 발전하는 중에 해결될 것이다.”라고 호도합니다.

자유로운 뉴스는 자유로운 사상과 독립적인 판단의 근원입니다.
중공은 중선부의 각종 금지령과 제한으로
모든 뉴스를 완전히 여과합니다.
민중들은 그 속에서 진실한 뉴스를 얻을 수 없고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시시각각
중공 당문화 속에 잠겨버린 소식을 흡수해야 하고
당문화의 사로(思路)에 따라 반응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람들은 이런 주입에 물들고
자신이 이미 당문화에 세뇌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됩니다.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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