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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54)
 
  
2008-01-03 10:32:59  |  조회 7738




제15장 반부패 운동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강경 발언으로 천수이볜을 등극시켜

(반부패 운동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강경 발언으로 천수이볜을 등극시킨 장쩌민.  두 번째 시간)


(지펑페이와 류화칭을 제거)

한때 큰 파문을 일으킨 위안화 사건에서 사실 장쩌민이 제거하려 했던 사람은 바로 원로 외교관 지펑페이(姬鵬飛)의 아들 지성더(姬勝德)와 류화칭(劉華淸)의 딸, 그리고 며느리였다.

거슬리는 말을 듣게 되면 반드시 보복하고야 마는 장쩌민은 줄곧 지펑페이와 류화칭을 제거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나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인맥이 든든했으므로 장쩌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쩌민은 확실히 너무나 무능했으므로 그에 대한 이 두 원로의 태도는 사실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펑페이는 중공 외교부의 실권파로 홍콩 수뇌인물을 지내기도 했으며 국무원 부총리, 국무위원, 홍콩ㆍ마카오 사무실 주임, 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 중앙 고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줄곧 중공 요직에 있었고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하기도 전에 그의 손자는 외국에서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나다니면서 우쭐거렸으므로 그는 장쩌민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으며 지성더 역시 장쩌민에게 그리 공손하지 않아 이 모든 것은 장쩌민의 분노를 부추겼다. 지펑페이의 외독자인  총 참모부 정보부처 상무부 부부장이었던 지성더는 라이창싱과 개인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고 류화칭의 딸은 또 지성더의 수하로 있었으므로 장쩌민은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1999년 3월 중순, 주하이에 있었던 지성더는 베이징 위취안산(玉泉山)에서 열리는 군사위 확대회의에 참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지성더가 회의장에 도착해 보니 그와 인사하는 사람이 없고 분위가 이상했는데, 는 체포되었으며 당장이라도 처형될 것 같았다. 지성더가 체포되자, 아버지 지펑페이는 4차례나 장쩌민에게 너그럽게 처리하여 사형만은 말아달라고 사정 편지를 썼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지펑페이는 아들이 목숨을 건질 가망이 없는 것을 보고 절망에 빠져 2000년 2월 10일 13시 52분,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지펑페이의 죽음에 대해 중공 언론들은 그저 간단한 기사를 내보냈고 장쩌민은 추도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중앙군사위원회와 군부 4개 총부, 국방부에서도 화환을 보내지 않았으나 지성더의 어머니 쉬한빙(許寒氷)은 끝내 중공 원로들을 통해 아들의 사형 집행 유예를 허락받았다.



총참모부 감방에 감금되어 있던 지성더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가한 후, 절망에 빠졌다. 8월 13일, 그는 칫솔대로 동맥을 끊고 수면제 70여 개를 먹고 자살을 시도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쉬한빙은 아들의 고혈압을 이유로 보석을 요구하여 거절당하자 매주 3번 아들을 만나게 해 주고, 음식물 전달을 제한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 역시 거절당하자, 비분을 참지 못해 2001년 9월 14일,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301병원에 호송되어 목숨을 건졌다. 이처럼,  일생을 공산당에 바친 지펑페이 가족은 장쩌민에 의해 멸절될 위기에 처했다.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군사위 부주석인 류화칭 역시 오래 전부터 장쩌민의 제거 대상이었다. 류화칭은 6.4사건 이후,  총이라곤 만져보지 못한 장쩌민을 위해 덩샤오핑이 배치해 준 군사 ‘보모’였다. 제멋대로 고위급 장령들을 진급시켰던 장쩌민으로서는  그의 지휘권을 간섭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었다.



89년 6.4사건 이후,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중공 중앙총서기, 군사위 주석으로 발탁하면서 군사 방면에 경험이 없는 그를 걱정한 나머지 류화칭, 장전(張震)의 두 노장을 군사위 부주석으로 배치하여 장쩌민을 보좌함으로써 군부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러나 장쩌민은 점차 권력이 공고해 지자 군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자격이 없는 젊은 장교들을 등용하고 점차 직접 나서서 군부 사무를 처리하기 시작하자, 류화칭과 장전은 군사를 아는 사람이 군부를 이끌어야 한다며 장쩌민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심지어 류화칭은 정치국 회의에서 늘 장쩌민을 손가락질 하면서 훈계했다고 하니, 장쩌민의 좁은 속이 어떠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1999년, 정권 확립 50주년 기념 축제 때 장쩌민은 자신을 돋보일 생각으로 퇴직 장교들에게 군복을 입지 못하도록 했으나, 열병식 전, 당정군(黨政軍) 요원들을 만나러 천안문 성루에 올라간 장쩌민은 류화칭이 상장 군복을 차려입고 늠름하게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신과 맞선다고 생각한 장쩌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누르면서 “어떻게 된 겁니까? 군복을 입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라고 말하자 그는 “싸움 한 번 해보지 못한 당신도 군복을 입는데 내가 왜 입지 못한단 말이요!”하고 맞받아 쳤다.

말문이 막힌 장쩌민은 화가 나 얼굴이 검푸르게 되었으며 온 몸을 부르르 떨다가 열병식이 시작되어 승용차에 올라서서야 비로소 정상으로 돌아왔다. 열병식이 끝나자 장쩌민은 즉시 유시구이(由喜貴, 역주 - 중앙 경위국장, 장쩌민의 심복)에게 류화칭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중공 제15차 대표대회 이후, 장전은 퇴직을 선언했으며 덩샤오핑도 사망했다. 이 시기, 장쩌민은 한 동안 갖은 수단을 동원한 결과, 군대 내에서 세력이 강해지고 있었으므로 류화칭을 제거할 시기가 성숙되었다고 생각했다. 류화칭 본인에게는 그렇다 할만한 약점이 없었지만 당시 그의 딸 류차오잉(劉超英 총 참모부 제5 정보국 상교, 부국장)이 마침 미국 정치헌금 스캔들에 말려들어 있었다. 류차오잉의 상급이자 라이창싱과 친구 사이던 지성더의 입장은 장쩌민에게 지펑페이와 류화칭을 타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라이창싱은 ‘위안화 사건 흑막’의 저자 성쉐와 지성더를 이야기하면서 “베이징, 선전, 샤먼, 홍콩 그 어디든지 막론하고 우리는 같은 곳에 있기만 하면 만났습니다.”라고 말했다. 류화칭은 평소 가장 끔찍하게 아꼈던 작은 딸 류차오잉과 둘째 며느리 정리(鄭莉, 총 정치부 군관)가 체포되자 침식을 잊었다. 쩡칭훙은 일찍이 류화칭에게 “당신이 장쩌민 주석을 반대하는데 대해 우리는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의 며느리, 부인과 자녀들을 붙잡아 가둘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므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다른 수가 없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쩌민에게 전화를 하여 사정을 봐 달라고 빌었으나 장쩌민은 냉소를 띤 채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류화칭의 며느리 정리는 체포된 후,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허난으로 도망갔으며 거기서 류화칭에게 전화를 했다. 류화칭이 체포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자 정리는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 자수했다.

류화칭의 딸 류차오잉은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체포될 때에만 해도 매우 거만하게 “나는 류화칭의 딸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10여 명 군인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그녀를 공항 밖으로 끌고 갔다. 류차오잉이 계속 거만하게 나오면서 자백을 거절하자 중앙 기율검사위원회 수사원이 다가가 그녀의 뺨을 후려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제껏 그런 수모를 당해본 적이 없었던 류차오잉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깨닫고 죄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전반 수사 과정을 장쩌민은 직접 나서서 지휘하고 수하들을 지지해 주었다. 류화칭의 가족들이 체포된 후, 장쩌민의 한 측근이 장쩌민을 보좌했던 류화칭의 공로를 생각하여“은인(恩人)의 자녀들을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말라”고 권고하자, 장쩌민은 즉시 노발대발하면서 그에게 입을 다물게 했다고 한다.



(위안화사건, 자칭린까지 연루돼)

위안화 사건에 관련된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은 바로 장쩌민의 측근 자칭린이었다.

1999년에 적발된 샤먼 위안화 사건은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은 이래 700억 위안의 불법 자금이 적발되었고 250명 이상의 지방 및 고위층 관리들이 관련된. 중국 최대의 밀수 사건으로 그들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고 가치가 수억 달러에 달하는 자동차, 연료, 원자재, 중형기계와 사치품 등을 샤먼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수하게 했다. 그런데 1994년부터 1996년 사이에 푸젠성 당서기와 푸젠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직을 맡은 사람이 바로 자칭린이었으므로 이것이 장쩌민이 위안화 사건에 대한 수사를 중단시킨 원인이었다.



자칭린은 1940년 3월에 태어났으며 허베이 보터우(泊頭)사람이다. 그는 장쩌민과 함께 가장 기계 공업부에서 일한 적이 있었기에 장쩌민의 신임을 얻었고 장쩌민의 관직이 높아짐에 따라 함께 그 행운을 누렸고,  장쩌민은 베이징시 당서기 천시퉁을 제거한 후, 푸젠성 당서기였던 자칭린을 베이징시 시장으로 임명했으며 나중에는 베이징시 당서기와 정치국 위원도 겸임하게 했다.

자칭린은 1962년 허베이 이공대학 전력학부를 졸업하고 제1 기계공업부 사무실 정책 연구실에서 일하다 1978년 중국 기계장비 수출입회사 사장직을 맡았으며 1985년에는 푸젠성으로 가서 정부 사업을 하다 1993년 초 푸젠성 성장으로 승진했으며 그해 연말 푸젠성 당서기로 되었다.

中文:http://www.dajiyuan.com/gb/5/6/14/n954954.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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