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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74)- 제18장 호색한이라 처첩이 한 무리고, 소인배가 출세하니 친인척이 날뛰네.
 
  
2008-04-07 06:39:55  |  조회 12566


( 거느린 처첩이 한 무리였던 호색한 장쩌민, 세 번째 시간 )

2.리루이잉(李瑞英)

장쩌민과 은밀한 관계를 가진 여인은 쑹쭈잉 한 사람 뿐이 아니었다. 쑹쭈잉은 요염한 외모로 좀더 주의력을 끌었을 뿐이었다. 민간에서는 “집에는 부엉이를 두고 출국할 때는 리루이잉을 데리고 가며 노래는 쑹쭈잉의 노래만 듣는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었는데 이는 장쩌민과 그의 여인들 사이의 관계를 풍자한 말이었다.

‘부엉이’는 장쩌민의 부인 왕예핑(王冶坪)을 가리켰는데 나이가 많고 병도 많아 얻은 별명이었다. 장쩌민이 출국할 때 그녀를 동행시킨 것은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자신의 과시를 위한 것일 뿐, 속으로는 사실 그녀를 매우 싫어했다. 2002년, 미국 텍사스 주 농장에서 부시 대통령 부부가 미국을 방문한 장쩌민 부부를 환영했을 당시 장쩌민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내를 한쪽에 남겨둔 채 혼자 연회장으로 걸어 들어갔고 부시 부부가 남편에게 냉대를 당한 왕예핑을 위로하는 장면이 외신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혀 공개되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예절의 나라로 불렸지만 장쩌민의 이와 같은 행동은 국제사회에서 중국 사람들의 체면을 떨어뜨려 놓았다.

쑹쭈잉과 리루이잉의 중난하이 대결

쑹쭈잉과 간통하기 전에 장쩌민은 한 유부녀를 내연녀로 두고 있었는데 바로 CCTV 아나운서인 리루이잉(李瑞英)이었다. 리루이잉은 외모는 평범했지만 뛰어난 애교 술로 매년 정협회의에 빠진 적이 없었다. 그녀는 또 몇 해 동안 장쩌민이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CCTV 기자 신분으로 수행하곤 했는데, 낮에는 TV에 나와 장의 나팔수가 되었고 밤에는 장쩌민의 ‘쓸쓸함’을 달래주었다. 장쩌민을 따라 외국에 간 리루이잉이 현장에서 전해온 보도 화면을 보고 중국의 시청자들은 그녀가 장쩌민 앞에서 애교를 떨던 말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같다며 비난했다.

리루이잉은 1986년부터 CCTV에서 중견 아나운서로 일 해왔다. 6.4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초기에, 여론이 학생들을 지지하자 리루이잉도 민주를 지지하고 정의로운 입장에 섰으나 계엄령이 선포되자 그녀는 즉시 태도를 바꿔 학생운동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당시 CCTV의 두시안(杜憲)과 쉐페이(薛飛) 두 아나운서는 독재정권이 학생들을 학살하는데 동조하는 것을 거절하여 모두 아나운서 자격을 박탈당했다. 특히 두시안 아나운서는 뉴스를 진행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양심을 저버린 리루이잉은 계속해서 중공의 나팔수가 되었다.

장쩌민이 “일이 있으면 오빠를 찾아라”는 쪽지를 건네주면서부터 쑹쭈잉은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이 방자한 행동을 시작했다. 한 번은 장쩌민이 동남아 국가를 방문하기 직전, 쑹쭈잉과 리루이잉은 중난하이에서 차량 충돌 사고가 났는데, 쑹쭈잉은 장쩌민에게 리루이잉을 중난하이에 오지 못하게 할 것과 왕래도 하지 말며 심지어 출국할 때 기자로도 데려가지 말것을 막무가내로 요구했고 심지어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선택하라”고 장쩌민을 협박했다. 소문에 의하면, 장쩌민이 당시 쑹쭈잉의 협박 조건에 ‘묵인’하면서 리루이잉은 크게 패했다고 한다. 그 뒤로 장쩌민이 외국을 방문할 때면 다시는 리루이잉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CCTV는 아예 아나운서가 국가주석을 따라 출국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2003년, 정협 지도자를 선거할 당시 정협 위원들 중 누군가가 쑹쭈잉의 이름을 ‘정협부주석, 비서장’ 후보 명단에 써넣었다. 결과를 선포하는 관리가 “쑹쭈잉 한 표”라고 선포하자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쑹쭈잉 바로 뒤에 선포된 것은 “리루이잉 한표”라는 결과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마주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주고받았는데 그들은 사실 그 선거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장쩌민을 향해 장난을 친 것이었다.

3. 천즈리(陳至立)

장쩌민의 내연녀들 중에서 관직이 가장 높았던 천즈리는 장쩌민에게 가장 충성했는데 이는 그녀가 상하이 ‘세계경제도보(導報)’ 편집국장인 친번리(欽本立) 등의 사람들을 박해한 것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장쩌민과 몇 십 년 동안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 온 천즈리의 충성심은 남녀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아닌, 정치상에서 장쩌민에 대한 지지에서 표현되었다. 천즈리는 장쩌민이 박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심하게 탄압을 했고 장쩌민이 좋아한다면 반드시 심혈을 기울여 보호하곤 했다.

추악한 남녀

천즈리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장쩌민의 맏아들 장몐헝(江綿恒)과 함께 중국과학원 상하이 규산염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장쩌민이 상하이 당서기로 승진한 뒤, 장몐헝의 소개로 만난 장쩌민과 천즈리는 서로 첫눈에 반했는데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장쩌민은 1998년, 천즈리를 상하이 당 선전부장에 임명하였고 그때부터 천즈리는 상하이에서 실권을 누리게 되었으나 상하이 당국 관리들은 그녀와 장쩌민과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세계경제도보’ 사건은 1989년 상하이 학생 민주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중공 원로들 중 6.4학생운동 탄압을 주장했던 몇 사람이 장쩌민을 중공 고위층에 발탁시킨 것도 모두 장쩌민이 도보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그들과 입장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도보 사건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바로 천즈리였지만 6.4 학생운동의 계기가 된 그 사건은 전국 지식인들의 항의를 불러일으키며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1989년 5월, 장쩌민은 베이징에서 총서기 자오쯔양에게 도보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했다고 심한 비판을 받았다. 장쩌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본 천즈리는 “저 혼자 모든 책임을 감당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장쩌민을 위로했다.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르는 상하이 도보 사건을 놓고 대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것으로도 장쩌민에 대한 천즈리의 확고한 충성심을 알 수 있다. 6.4 탄압이 끝난 뒤, 천즈리는 도보 직원들을 해산시켰고 도보 기자들이 다시는 기자직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있는 도보 총 편집국장인 친번리를 찾아가 그에게 당원 자격을 박탈한다는 통보문을 전달함으로서 그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없게 하기도 했다.

상하이 당국에서 천즈리와 장쩌민의 비도덕적인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자공업부에 있었던 황리만(黃麗滿)과의 스캔들에서부터 쑹쭈잉과의 관계 그리고 외신 기자들에게 순간 포착된, 미녀들의 모습에 넋이 나간 장쩌민의 표정은 그가 얼마나 음란하며 저질스러운 인간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평범한 외모를 가진 천즈리는 지극한 충성심 때문이었는지 수 십 년 동안 장쩌민의 버림을 받지 않았으나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손을 잡은 추악한 남녀에 불과했다.
 
장쩌민은 중난하이 입성에 성공하자 즉시 천즈리를 베이징으로 불러 중요한 직책을 맡기려 했으나 전 중앙조직 부장 쑹핑(宋平) 등 원로들의 반대로 줄곧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1997년, 덩샤오핑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장쩌민은 대권을 독차지 하게 됐고 천즈리도 베이징의 국가교육위원회 주임직을 맡게 되었는데, 자신과 장쩌민과의 소문에 몹시 신경이 쓰였던 그녀는 자신이 사회를 맡은 베이징 교육위원회 관리들과의 첫 회의에서, 교육과 관련된 국가 사무가 아닌 자신의 행복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여 많은 관리들의 빈축을 샀다.


중문 : http://www.dajiyuan.com/gb/5/6/17/n957853.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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