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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75)- 제18장 호색한이라 처첩이 한 무리고, 소인배가 출세하니 친인척이 날뛰네.
 
  
2008-04-07 06:47:59  |  조회 10881



( 거느린 처첩이 한 무리였던 호색한 장쩌민, 네 번째 시간 )


중국 교육계통을 타락시켜

1998년, 장쩌민은 교육분야의  경험이 없는 천즈리를 교육부장으로 임명함으로서 중국 문화교육 사업에 손실을 끼쳤고 능력 부족으로 교육부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장쩌민은 그녀를 국무위원으로 승직시켜 전국과 군부 교육 사업을 맡겼다.

최근 천즈리는 내부에서 여러 차례 탄핵되었다. 그중 한 차례는, 80여개 대학 1200여 명의 교수들이 중앙에 공동으로 서명한 편지를 써서, 현재의 교육 체계에 대한 시급한 개혁을 호소했다. 칭화대(淸華大), 베이징대 등 십여개 대학 총장들은 해외 관광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천즈리에게 ‘구미순회대사(歐美巡廻大使)’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여러 차례 그녀의 해직을 강력히 요구했다.

교육계에서 천즈리에 대한 불만이 높아가는 가운데, 장쩌민은 이례적으로 천즈리를 교육부장에서 교육을 주관하는 국무위원으로 승직시켰다. 새로 지정된 국무원 지도자 명단 토론 당시 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32개 대표단 중 27개 대표단과 40여 개 대학이 천즈리가 국무위원이 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 했으나 장쩌민은 이러한 의견들을 무시한 채 군인들의 교육마저 그녀의 손에 맡겼다. 그리하여 중국의 교육 사업은 철저한 어둠의 깊은 골짜기로 떨어지게 되었다.

교육계는 국가의 기둥이 될 인재들을 양성하는 정토이어야 했지만 천즈리는 “장기적으로 경제적인 안광이 있어야 한다”며 중국 교육계를 더러운 교역 장소로 만들어 버렸다. 그 이후로 중국의 교육계는 졸업장을 위조, 판매하는 현상이 보편화 되면서 제 멋대로 학생들의 돈을 약탈하기 시작해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물가감독회의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각종 학교와 교육당국이 학생들에게서 불법으로 털어간 돈은 21억 위안에 달하며 일부 명문 대학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정부 측의 다른 한 통계에 따르면, 10년 동안 중국 교육계가 부당하게 벌어들인 수익은 2천억 위안에 달하며 교육계의 ‘잡부금’은 연속 3년 전국 소비자 신고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사항이라고 한다. 천즈리가 관할을 시작하면서부터 국가 교육부는 국민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교육은 국가 정책과 민생 뿐 아니라 민족의 미래에도 관련된 중요한 사업이다. 2001년 12월, 장쩌민의 매국 행위가 폭로된 후, 천즈리는 교육부에 명령을 내려 역사를 고치게 하고 신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요강에서 민족의 영웅인 악비(岳飛)와 문천상(文天祥) 대신 국가를 매국한 리훙장(李鴻章)을 애국자로 칭송하여 정쩌민의 매국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으나 사회 각계의 강력한 반대와 질책을 받았다.

이 중 가장 많은 질책을 받은 부분은 교육을 장쩌민의 통치를 공고히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세뇌 시켰다는 점이었다.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이 중공의 조작극이었음이 해외에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천즈리는 초, 중,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장쩌민의 박해 정책을 지지하게 했고 학생들에게 증오와 거짓을 선전했다.

천즈리는 교육부를 주관한 7년 동안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미 매우 취약했던, 중국 교육계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청소년들을 독해(毒害)시켰다. 교육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서 학교의 기풍은 점차 타락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대학졸업장과 학위증서가 엄격한 절차 없이 마구 발급되는 현상이 보편화 되었고 도시 적령기 청소년 중 20%이상이 법적으로 규정된 9년의 의무교육을 받지 못했다. 또한 대학생들의 도덕은 점점 타락하여 매매춘과 도박, 강도 등의 추악한 행위로 캠퍼스와 중국 사회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천즈리는 교육을 하나의 큰 사업으로 생각했으므로 ‘교육산업화’를 실시하면서 9년 의무교육제도는 보편화가 되기도 전에 기능을 상실했으며 대학들은 거액의 학비를 벌어들이기 위해 학생 수를 무제한으로 늘여 적지 않은 농민들이 자녀들의 학비를 위해 그들의 혈액까지 팔았으나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었다.또한 천즈리는 교수들에게 학생보다는 연구 과제를 통해 돈벌이를 하도록 권장하여 학생들의 소질은 현저히 떨어졌다. 게다다 전국적인 불경기로 실업자가 급증하자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취업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교육계의 부패와 학술부패가 갈수록 심각해짐에 따라 힘들게 거액의 학비를 내고 대학에 들어가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며 졸업 후 취업난에 허덕이는 것이 중국 교육계의 현주소이므로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천즈리, 이 여자를 죽이지 않고서는 민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어렵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민들은 교육계 현황을 통책하고 있다.

2003년 장쩌민은, 측근들을 대량 군사위에 배치하여 자신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천즈리를 군사위원회와 국방과학기술 그리고 교육 관련 사무에 참여시킬 것을 제안했지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토론에서 크게 분쟁이 일어나 성사되지 못했고 중앙정치국에서도 대부분의 반대로 실패했다. 군부의 고급 장령들은 모두 천즈리를 무시했으며 뒤에서는 심지어 그녀를 두고‘창녀’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4.황리만(黃麗滿)

장쩌민이 가장 총애하는 여자들 중에는 황리만도 있었다.

사무실의 원앙새

헤이룽장성 치치하얼 출신인 황리만은 하얼빈 군사공정대학을 졸업했다. 그녀는 재학 당시,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남자들을 유혹하는 재간만은 뛰어났다. 동창생의 말에 따르면 “동북 지역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남녀학생들이 함께 춤추는 것을 허락했는데, 황리만은 그때부터 많은 남학생들이 그녀를 위해 서로 질투하고 싸우게 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모 교수와의 염문으로 그의 아내가 학교에 찾아와 싸우는 바람에 그 교수는 대학 당국의 처벌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황리만과 장쩌민이 만난 것은 80년대 초였다. 당시 장쩌민은 전자공업부 부장으로 임명되었고 황리만도 마침 전자공업부 사무실에 배치되었다. 당시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던 동료의 말에 따르면, 황리만은 매일 짙은 화장에 화려한 옷을 입었으며 굽 높은 하이힐에 요란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다녀 선천적 호색한인 장쩌민을 즐겁게 했다고 한다.

중공 기관에는 점심 식사 후 수면시간을 주었는데 이 시간이 되면 황리만은 몰래 장쩌민의 사무실로 들어가곤 했다.

한번은 중앙에서 장쩌민에게 긴급 통보문을 보내왔다. 편지를 전달하는 직원은 장쩌민과 황리만이 함께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차마 노크를 하지 못한 채 휴식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황리만이 옷매무새를 추스리며 부장실을 나오고서야 비로소 장쩌민에게 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통보문의 내용은 장쩌민을 상하이 시장으로 임명한다는 것이었다. 왕다오한(汪道涵)의 도움으로 승진하게 된 장쩌민은 전자공업부를 떠나면서 황리만을 전자공업부 사무실의 부실장으로 승진시켰고 장쩌민이 상하이에 가자 황리만은 즉시 베이징과 상하이간 직통 전화를 설치했다.

당시 중국에서 고급 관리들의 전화비는 국가에서 부담했지만 황리만의 전화비가 터무니없이 많이 나오자 전자공업부 재무부서는 이 일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고 전화국의 조사 결과, 사용한 대부분의 전화는 매번 2시간 이상상하이에 한 것이었다. 얼마 후 황리만은 장쩌민과의 관계를 끝내 남편에게 들켰고 그녀의 남편 다쑤이(大隨)가 법정에서의 이혼을 요구하자 장쩌민은 베이징으로 가 황리만의 남편을 진정시키고 나중에 그를 선전(深圳)에 있는 전자제품 업체에서 사업을 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베이징에 혼자 남게된 황리만은 장쩌민이  베이징을 방문할 때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중문 : http://www.dajiyuan.com/gb/5/6/17/n957853.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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