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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56) 제15장 반부패 운동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강경 발언으로 천수이볜을 등극시켜
 
  
2008-01-04 05:13:59  |  조회 7349

(반부패 운동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강경 발언으로 천수이볜을 등극시킨 장쩌민.  마지막 시간)
 
 
3. 대만 대선
2000년이 되자 세계 각지 중문 매체들의 초점은 3월에 진행될 대만 총통 대선에 맞춰졌다. 이번 대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일 3개 당파의 주요 후보는 각각 민진당(民進黨)의 천수이볜(陳水扁)과 친민당(親民黨)의 쑹추위(宋楚瑜) 그리고 국민당(國民黨)주석 롄잔이었는데, 당시 천수이볜과 쑹추위의 지지율은 거의 비슷했으며 롄잔은 이들보다 좀 낮았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번 대만 대선에 대해 장쩌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몰랐다. 오래 전부터  중앙 선전부에 지시하여 민진당을 과격한 대만 독립파로 선전하게 하고 끊임없이 여론을 동원해 공격함으로써 대만 민심에 영향을 주려고 했던 장쩌민은 천수이볜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하자 총통으로 당선될까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될 경우  무력 분쟁을 일으키려 해도 실제 군사경험이 없었고 군부 원로들이 그 기회로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 봐 그 방법을 쓸 수 없었던 장쩌민은 장기간 국내 민중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터라  군부와 민중들 앞에서 너무 나약하게 보이면 자신의 권력이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려워 진퇴양난에 빠졌다.
하지만 최고 집권자로서 장쩌민은 대만 대선에 반드시 입장을 밝혀야 했으므로 장쩌민은 결국 또 자신의 특기인 쇼를 하기 시작했다.
3월 4일, 장쩌민은 베이징에서 9기 전국인대 3차 회의에 참가한 대표들에게 발표한 연설에서  “만약 대만 당국이 평화 통일 담판을 무기한으로 거절한다면 일체 가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대표들에게 대만과 중미관계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호소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느 당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으므로 누가 당선되어도 ‘당국’이 될 수 있어 장쩌민은 사실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과 같았고 또한 중국 대륙의 언론들이 열을 띠고 선전했던 ‘대만 독립 결사반대’의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무기한’이라는 표현 역시 해석이 불가능한데, 무엇이 ‘무기한’인가, 몇 년을 말하는 것인가, 몇 십 년을 말하는 것인가?
총적으로 말해, 대만이 장쩌민이 물러나기 전까지 계속 해서 통일 담판을 거절한다 해도 ‘무기한’이라는 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장쩌민은 자신에게 넓은 퇴로를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월 1일, 미국 하원에서 ‘대만 안전강화 법안’을 통과시키자 장쩌민은 억지로 강경하게 나오려 해도 용기가 없었다. 1996년, 대만을 겨냥해 진행했던 군사 훈련에서 큰 좌절을 겪었던 기억이 아직 새롭기만 한 그에게 있어 미국의 관여는 설상가상이었다.
그러나 역시 연극을 꾸며대는 것이 특기인 장쩌민은 중국 CCTV에서 그 시기에 맞춰 연일 ‘중국 군대’라는 특집 프로를 방영하고 대만과 마주하고 있는 연해지역에 끊임없이 군인들을 집결시킴으로써 대만을 위협했다. 그리하여 천수이볜이 총통으로 당선되면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고 중국 국민들도 천수이볜의 당선에 반대해 시위행진을 요구하는 등불만이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베이징 몇몇 대학교 학생들이 가두행진을 신청했으나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으며 사전 준비 없이 형성된 자그마한 시위대열도 당국에 의해 해산되었는데 장쩌민은 일단 민중에게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주게 되면 민간에서 장기간 쌓여온 불만들이 폭발되어 중공 통치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 두려웠고 그럴 경우 그 자신 역시 거꾸러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더라도 무력분쟁으로 인한 전쟁을 원치 않았던  장쩌민은 난제에 부딪칠 때마다  질투의 대상이긴 하였으나 주룽지를 찾았는데 그의 우직한 성품을 문제 해결의 방패막이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점을 생각할 때면 장쩌민은 그에 대한 질투가 조금이나마 수그러들었으며 남몰래 웃곤 했다.
 
주룽지는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대만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는 사실 온건파였다.
그러나 총통 선거일을 3일 앞둔 3월 15일의 기자회견에서 장쩌민에게 떠밀려 앞에 나선 주룽지는  “중국 정부는 대만 독립을 외치는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경한 말투로 경고하고, “대만 민중들은 이 관건적인 역사 시기에 일시적인 충동에 이끌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때, 한 외신 기자가 “중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느 때, 대만에 대해 무슨 행동을 취할 예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나 주룽지는 “며칠 후 두고 보라!”는 불확실한 답변을 했을 뿐이었다.
주룽지의 담화가 발표된 후 대만 대통령 입후보자들의 반응은 각기 달랐는데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던 두 사람은 반대의 입장을 표시했다.
 
민진당의 입후보자 천수이볜은 핑둥(屛東 역주 - 대만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에서 진행한 입후보자 연설에서 “대만의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는 중공이 아닌 대만 국민들에게 있다”며 “대만 국민들이 대만 총통을 선거하는 것이지 중공이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독립적 입후보자인 쑹추위도 같은 날, 타이베이시 중정(中正)기념당 광장에서 “대만 국민들은 절대 위협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라는 연설을 했다.
또 다른  입후보자인 쉬신량(許信良)도 “주룽지의 발언에는 대만이 반드시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대만 국민들의 반발을 일으키는 부분도 있다”고 말하며. 대만 국민들에게 일시적인 감정으로 대응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한편 주룽지에게 통일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 이런 식으로 대만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쩌민의 예상과는 달리 주룽지의 연설 발표 후, 대만 국민들의 반발은 더 강렬해 졌고 특히 젊은이들의 분노를 샀으며 그 결과 대만 대선은 장쩌민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갔다. ‘통일’과 ‘독립’의 대립은 사실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으로  인심을 강제로 바꿀 수 없었다. 후에 천수이볜은 취임연설 중에서  “역사가 증명하다시피, 전쟁은 원한과 대치만 가져올 뿐, 관계 발전에 조금도 도움 되지 않는다. 중국에는 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어진 정치를 하면 주변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서도 찾아오게 하며’, ‘불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덕을 닦아 가까이 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중국인들의 지혜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진리다.” 라는 내용으로 6.4사건을 발판으로 최고 권력층에  올라가 오직 권력 하나만 믿고 강제와 협박을 일삼는 장쩌민을 신랄히 비판하기도 했다.
 
18일, 대만 국민들은 야당의 민진당인 지도자 천수이볜을 총통으로 당선시킴으로써 반세기 넘게 지속된 국민당 집권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총 82.7%의 투표율을 보였던 이번 대만 총선에서 천수이볜은 39%의 득표로 당선되었으며 쑹추위는 37%, 국민당의 롄잔 후보는 23%를 차지한 선거 결과는 대만 유권자들 및 민진당에 대한 중공의 위협과 공격이 오히려 천수이볜을 총통에 당선되도록 만들었음을  잘 보여 주었다.
대만 총통이 정해지자 베이징 중난하이의 등불은 밤이 깊도록 꺼질 줄 몰랐다. 국민당이 그처럼 쉽게 민진당에 정권을 빼앗길 줄 몰랐던 장쩌민은 안절부절 못하며 아래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은 책임을 모두 주룽지에게로 떠밀었고 대만 국민들에게 이미지가 좋았던 주룽지의 인기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주룽지는 장쩌민의 이번 꼭두각시극에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이 되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장쩌민 그리고 전체 중공 고위층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00년 3월 19일 저녁, 중공 CCTV 뉴스 프로그램 아나운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새로 당선된 민진당이 극단으로 가지 말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중공중앙 대만 사무실의 성명을 전하여 대선 결과에 대한 중공의 속수무책적인 입장과  대만 국민들의 민심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보여주었고 중국 외교부 쑨위시(孫玉瓕) 대변인은 기자 회견에서 중국 정부가 관망의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장쩌민은 선거 전에 비해 많이 누그러들었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주룽지를 총알받이로 내세웠던 일도 모두 잊어버렸다. 이번 사건으로 혼자 악역을  떠맡게 된 주룽지는 장쩌민에게 이용되어 연설을 발표했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뤼자핑(呂加平, 역주 - 베이징의 학자, 반체제인사)이 중공 지도자와 인대대표, 정협 위원들에게 편지를 써, 장쩌민이 대만 문제를 이용해 양다리를 걸친 내막을 폭로했다. 장쩌민은 군부의 신임을 얻기 위해 대만을 공격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친 동시에, 미국 대통령에게는 군사위 주석을 연임하도록 도와준다면 절대 대만을 진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담보했다.
장쩌민은 항상 대만을 공격할 것이라고 떠들면서 몇 번은 정말 당장이라도 싸울 듯한 기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실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권력에 위기가 올 때마다 꺼내 흔드는 카드로 이용하기 위한 쇼였던 것이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그는 이 카드를 뽑아 들고 군부를 흥분시킨 후 다음 번 위기를 대비해 도로 집어넣곤 했다.
 
中文:http://www.dajiyuan.com/gb/5/6/14/n954954.htm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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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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