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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그 사람-(31)
 
  
2007-10-24 08:48:55  |  조회 7478


오늘은 장쩌민이 부패로 군을 다스려 군부가 호화방탕한 생활로 무너지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장쩌민은 자신이 군부에서 위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노 장령들은 모두 실제 전투의 경험과 군부의 인맥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장쩌민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대군을 통솔한 경력이 있기에 군인들이 기꺼이 복종했지만 장쩌민만은 정치적인 배경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총도 한번 만져보지 못했을 정도로 군사에 관한 경험이 전무 했다.

정상적인 현대사회의 집권당은 민주 선거를 거쳐야 만이 비로소 정부를 구성할 수 있고 사회상의 서로 다른 이견 들은 집권당을 감독하기 위한 것이며 국가를 잘 운영하지 못하면 최고 지도자도 탄핵을 당할 수 있다.

그러한 국가들의 군대는 어느 한 집권당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국가에 속하며 국민의 이익과 국토를 수호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있으므로 당파 사이의 투쟁과 당 내부의 투쟁은 군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느 당파가 당선되든지 군대는 반드시 국가에 충성해야 하며, 헌법 규정에 따라 국가 최고 권력기구의 지시에 복종하므로 서방 민주국가들의 경우 당파간의 마찰이 치열하면서도 국가의 정세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중국에는 사실 당에 속하는 군대가 있을 뿐, 국가에는 군대가 없으며 군대는 한 당의 사욕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중공은 줄곧 “당 지부를 연대 위에 설립해야 한다” 고 주장했으며, 일찍이 마오쩌둥도 “당이 총을 지휘한다” 는 이론을 내세웠기 때문에 당내 정치투쟁의 승부는 누가 먼저 군사권을 장악하는 가에 달렸고 군사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면 미래를 보장하기 어려웠으므로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던 장쩌민은 다른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관직으로 군의 인심을 매수하는 것 이었다

군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광스러운 공로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시대에 원수(元帥)로 봉해진 장군들은 모두 생사를 넘나들며 세운 공훈으로 진급했으므로 그것을 매우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긍지를 느꼈다. 평화 시대의 군인들은 실력이나 우월한 조건이 없다면 장군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장쩌민이 정권을 잡은 후부터는 아첨이 군부에서 진급할 수 있는 지름길로 되었는데, 장완녠(張萬年)과, 궈보슝(郭伯雄) 그리고 유시구이(由喜貴)의 진급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47군 군장 궈보슝은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장쩌민이 낮잠을 잘 때 보초를 선 것 때문에 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자리에 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군부에서 군인 계급 제도를 회복한 1988년 이래, 중앙군사위에서는 총 96명의 고위급 장교들에게 상장(上將) 계급과 경찰관 직위를 수여했고 1988년 9월 14일 덩샤오핑은 17명의 고위급 장교에게 상장 계급을 수여했을 뿐이었지만 장쩌민은 1993년부터 2004년까지 상장 계급과 경찰관 직위를 무려 79개나 수여했으며 소장과 중장 계급은 더욱 무분별하게 수여 했는데, 1993년 6월 7일 장쩌민은 6명의 고위급 군관들에게 상장 계급을 수여했고 이듬해인 6월 8일에는 한 번에 19명을 상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한 1996년 1월 23일에는 4명을 진급 시켰는데 제2 포병부대 정치위원회 수이융쥐(隋永擧)가 바로 그날 중장에서 상장으로 되었다.

1997년 10월 24일 장쩌민은 단 하루 동안 152명의 장군을 진급시켰다. 고위급 간부 자제와 그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장쩌민이 군부의 인심을 매수하는 주요한 대상으로, 예를 들면 허룽(賀龍)의 아들 허펑페이(賀鵬飛)는 문혁 4인방이 제거된 후, 군에 입대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단번에 해군 중장 부사령이 되었고, 1997년까지 장쩌민이 직접 진급시킨 장군은 무려530명이나 되었다.

2002년 6월 2일 7명의 상장 진급 식을 생방송으로 본 군부의 노장들은 장쩌민이 한 손으로 증서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며 그의 상식 없고 엄숙하지 못한 모습에 분개했다. 퇴임하기 전야인 2004년 6월 20일, 장쩌민은 또 15명 장교들에게 상장 계급과 경찰직위를 수여했는데 그중에는 그의 측근인 유시구이(由喜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진급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것을 영예로 간주하지 않았고, 자신의 공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인심을 매수하기 위한 장쩌민의 수단임을 알고 있었기에 진급 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식에 임하는 태도 또한 엄숙하지 않았다.

과거의 노장들은 모두 자신의 공훈과 능력에 따라 진급했기에 매우 높은 위망이 있었으며 군령을 하달하면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종 수단을 가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서로 승인하지 않고 헐뜯었으며 명령집행 시에도 협력하지 않고 서로 방해하거나 질투했다. 이런 인격을 가지고 어떻게 군대를 통솔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군대라면 아무리 현대화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해도 참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밀수, 부패에 대한 방임

군인들은 80년대 중반부터 경제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의 목적은 군부 경제를 살리기 위함이었으므로 중공 고위층에서도 많은 격려를 해주었고, 양상쿤과 왕전 등 군부 원로들도 군부 기업에 격려의 글을 자주 하달했다. 군사위 주석이 된 장쩌민은 군사권을 통제하기 위해 수중에 장악하고 있는 권력과 군부 경제활동의 허점을 충분히 이용했다. 그는 군부의 경제 활동을 방임하고 부패를 부추김으로써 군부 인심을 매수하려 했고 그들이 자신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는 과정에서 더욱 장쩌민에게 의지하도록 유도한 결과 동남 연해에서의 해군의 밀수는 해적보다도 더욱 기승을 부렸고, 북방 군인들의 밀수는 마적을 능가하는 등 군부 부패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졌다.

주룽지는 한 차례 반(反)밀수 회의에서 “1998년 상반기에서만도 군부가 총과 대포를 쏴서 해관 밀수검거 인원과 공안 무장경찰 및 사법 인원 450명을 사살하고 2,200명을 다치게 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또한 군부 기상대의 도움을 받고 총리의 서명을 도용했으며 군사위원회 부주석의 도장까지 마음대로 사용해 20억을 사취했음에도 장쩌민은 모두 용인했으므로 군부의 이러한 부패는 해적과 마적, 지방의 탐관오리들조차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1998년 7월 26일 북해함대인 군함 4척과 잠수정 2척 그리고 4천 톤급의 운반선이 7만 톤의 정유를 싣고 북유럽에서 출발한 4척의 밀수 유조선을 호위하며 중국으로 오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104년 전 갑오(甲午) 해상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등세창(鄧世昌 역주 - 청일전쟁 때 일본 제국주의 해군에 끝까지 대적한 북양[北洋]해군 제독)이 희생된 해역을 통과하다가 공안부와 전국 해관총부의 12척 밀수검거 경비정에 의해 발견되었다. 경비정은 스피커로 해군들에게 수사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해군들은 중앙 군사위원회와 해군사령부의 명령이 없이는 안 된다며 약 15분간 대치하면서 밀수 유조선을 호송한 해군이 상급에 이 긴급 상황을 보고했는데, 상급이 감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베이징 군부 고위층에 대책을 묻자 그들은 즉각 단호하게 발포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해군들의 군함 한 척이 신속하게 세관과 공안의 경비정을 향해 기관포를 발사했고 이와 동시에 운반선과 기타 군함 3척은 전력을 다해 경비정을 향해 돌진한 이 충돌은 59분 만에 해군의 승리로 끝났고 이번 황해 충돌에서 총 8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안타깝게도 억울하게 사망한 공안과 세관 밀수 검거팀 13명의 전사자들 중에 등세창의 손자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사건은 특별한 처벌 없이 종결되었다.

1998년 7월 13일에 열린 중공 중앙회의에서 주룽지는 통일전선부에서 자동차 1만 대를 밀수했고 정치 협상회 당 조직과 손잡고 23억 2천만 위안을 횡령한 사건을 폭로했다. 같은 해 9월, 전국 밀수 사업회의에서 그는 “최근 해마다 8,000억에 달하는 암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군부가 가장 큰 밀수 조직으로 적어도 5,000억 위안에 달하는 암거래를 하고 있다. 탈세를 거래액의 3분의 1로 계산한다 해도 1,600억 위안이지만 80% 이상이 군부가 아닌 고위급 장령 개인에게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군부가 밀수하는 상품에는 마약까지 있을 정도로 없는 것이 없었으며 영국 언론 BBC는 2001년 3월 28일, 필리핀 국가안전 보좌관 로일로 골레즈 국장이 “중국 동부 5개성의 일부 불법 마약 제조공장은 중국 군인들이 경영하고 있으며, 그들은 해마다 필리핀에 약 12억 달러에 달하는 필로폰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골레즈 국장은 중국이 이를 제지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중국의 마약 밀수가 50% 줄어든다면 필리핀의 마약 문제도 절반은 해결되는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나중에 필리핀 정부는 여러 번 베이징에 대표를 파견해 장쩌민 수하의 군부가 마약을 수출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군부 장령들이 돈을 끌어 모으는 수단으로는 밀수 외에 부대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는 방법이 있었다.

난징(南京)부대에는 미사일 부대가 있는데 이 부대의 한 상위(上尉)는 ‘이싱(宜興) 중국인민 창청(長城)회사’를 세우고 불법이득을 많이 주는 조건으로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은 결과 상위에 불과한 군인이 3억 위안의 거금을 탐오했고 군사위 사무실 둥량쥐(董良駒)는 전국 각 명승지에 호화로운 별장 9채를 지었으며 혼자서 고급 승용차 15대를 소유했고, 광저우(廣州) 부대 사령관은 군부 자금으로 정원이 딸린 별장 6채와 고급 승용차 4대를 샀다. 군사과학원 부원장은 개인주택의 인테리어 자재 12만 위안어치를 이탈리아에서 구입했으며, 제2포병부대 부사령관의 가족은 유럽에서 쇼핑하는데 25만 달러를 소비했고, 또 광저우 부대 고위급 장령 7명은 새 주택으로 옮기면서 인테리어에 거금을 쏟아 부었는데 화장실에만 120만 달러가 들었고 그 자재 전부를 이탈리아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1998년 11월, 시산(西山) 군사위, 군기율 검사위원회 회의에서 츠하오톈(遲浩田)은 “1994년부터 군부 자금과 수입의 80%를 고위급 간부들이 사취했고 군부 지원금 50%이상은 고위급 간부들의 연회, 해외여행, 호화 자택, 고급 승용차 등에 썼다”고 지적했다.

1998년의 군부 지출은 1,311억 위안이었으므로 50%는 655억 5천만 위안이며 여기에 군부 자체 수입에서 횡령한 공금 1,863억 5천만 위안을 합치면 군 간부들의 그 해 탐오한 금액은 군비예산 940억의 2배에 달하는 셈이다. 1999년 3월말까지 군사 검찰기관에 검거된 공금 탐오, 유용, 해외 도피 사건은 큰 사건만 해도 2,170건에 달했고 소장급 혹은 그 이상 계급 장교들이 거금을 가지고 해외로 도피한 사건은 총 24건이나 되었다.

중앙군사위 장쩌민 주석의 지도하에 군부 장령들은 진급과 횡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는데 그것도 크고 살찐 토끼였다.

주룽지는 군부 경제활동이 시장을 엄중하게 교란하는 것을 보고 1996년 이를 중지할 것을 제기했으나 지지를 얻지 못했다. 1998년에 이르러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또 다시 장쩌민에게 군부 경제활동을 금지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리하여 그해 7월 장쩌민은 ‘전국 밀수타격 사업회의’에서 군대, 무장경찰, 법률과 공안계통에서 더 이상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선포했으며 연말 전까지 지방정부에 업무를 넘겨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군부를 부추겨 경제에 참여 한 사람도 장쩌민이고 참여를 금지시킨 사람도 장쩌민이어서 보기에는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맥상통한 것이었다. 쿤은‘장쩌민평전’에서 군부의 경제활동을 금지시킨 것을 장쩌민의 공로라고 기록해 완전히 흑백을 전도시키기도 했다.

장쩌민이 당시에 군부를 경제에 참여하게 한 것은 자신의 측근을 배양하기 위해서였고 정규화와 전투력을 제고하는데 있던 장령들의 주의력을 분산시킬 부패한 군부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군부의 이런 부패하고 혼란한 상태는 군 경력이 없는 군사위 주석 장쩌민이 군부 내에서 세력을 키우는데 가장 유리했다.

그러나 장쩌민은 또 군부의 경제활동이 더욱 큰 독립성을 가져다주어 군부를 통제하는데 불리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군부가 경제상에서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를 바랐다. 따라서 군부의 경제활동을 금지시킨 것은 장쩌민에게 있어서 한 가지 탈출구였으며 군부에게 자신의 권위를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몇 해 동안 군부에 배양한 세력은 장쩌민에게 자신감이 생기게 했다. 양씨 형제가 물러나고 덩샤오핑이 죽자 대권을 독점한 장쩌민은 주룽지의 강력한 요구로 개인 득실을 잘 계산한 뒤, 비로소 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혹시 모를 부작용을 생각한 장쩌민은 또 상습적인 방법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후진타오를 내세워 이 일을 처리하게 했다. 당시 후진타오는 군사위 부주석도, 군사위 위원도 부총리도 아니었지만 하는 수 없이‘위험’이 따르는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장쩌민은 덩샤오핑이 직접 지명한 제4세대 후계자 후진타오를 못 마땅히 생각했기에 궂은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를 내세웠다. 명목은 그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라고 했지만 만일 군부가 반발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 후진타오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상황 이었으므로 이번 기회에 제4세대 지도자의 명분을 가진 후진타오를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장쩌민은 여러 번 이 방법을 사용했지만 다행이 후진타오는 신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또 운이 좋아서인지 권력을 물려받을 때까지 큰 실수 없이 지나왔다.

그러나 연말이 되자 2만여 개 군부 기업 가운데 실제로 지방 정부에 인수과정을 마쳤거나 인수 중에 있는 기업은 불과 5천여 개 밖에 되지 않았다. 군부 기업은 독립 기업에 속했고 큰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 지방의 공상(工商), 세무 부문의 제약을 받지 않았으므로 자산, 분배, 영리 등 업무가 거의 제도화 된 것이 없었다. 때문에 일단 군부의 이익에 불리하면 여러 가지 수단으로 맞섰기에 조사에 큰 어려움이 따랐다. 진일보 조사를 펼치려면 ‘군사 기밀’을 건드린다는 위협을 받았으므로 대충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엄밀하게 말해서 서로에게 좋은 점이 없었으므로 나중에 겨우 조사해낸 사건이 있어도 흐지부지하게 처리되는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여러 유혈사태와 군부의 호화 방탕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기로 하자.



對중국 한국어 단파방송 - SOH 희망의소리
11750KHz, 중국시간 오후 5-6시, 한국시간 오후 6-7시

http://www.soundofhop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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